내 마음속의 분노
며칠전부터 마음 속 한구석이 참 많이 묵직하다. 일종의 울화증 같은 느낌인데 그 이유는 다른게 아니고 우리나라 정치집단들 때문이다. 이 내용을 자세히 적자면 그것만으로도 글 하나가 넘게 나올 듯 한데.. 아무튼 그래서 이 내용은 그냥 넘어간다. 대략이라도 말하자면 최근에 우리나라 최고 정보기관이라는 '국정원' 에서 해댄 짓꺼리와 또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또 다시 저지른 사건 때문이다.
나는 작년 대선이 끝나고 개인적으로 마음을 비우기 위해 나름 노력해왔다. 이 노력은 단지 내가 평점심을 갖기 위해 혹은 무관심해지기 위해 노력한 것을 넘어서서, 나 나름대로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또 인간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하는 과정으로서 접근한 것이다. 좀 더 세밀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제 세상에 대한 이해를 기존에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좀 더 커다란 규모의 생각으로 그리고 더 높은 곳에서 삶을 바라보고자 한 일종의 생각의 초기화 혹은 밑바닥 다지기를 위한 시도였다.
물론 큰 기대를 가지거나 좋은 결과를 예상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냥 이런저런 많은 잡다구리한 것들을 정리하고 내가 가진 많은 생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곁가지를 쳐가면서 혹시나 내가 혼자 착각을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의구심과 그리고 생각만 하면서 확신을 갖지 못한 세상에 대한 많은 일과 그에 따른 내 생각을 재정립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중 한 부분을 차지한 것이 바로 정치에 대한 생각이었다.
아마도 내가 이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내 블로그의 글에는 정치관련 글들이 다수가 쓰여졌을 것이다. 내 성향상 아마도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이런 접근에 의해 정치관련 글은 아주 소수로 제한되어졌고 나는 이것에 대해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는 인간이 인간의 공동체를 이끄는 방법을 제시하는 절차라고 생각한다. 즉 인간이 다수가 모여 있기에 정치가 필요한 것이지 정치를 위해 인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란 뜻이다. 그것은 사람마다 모두 다른 요구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거기에서 최대한의 공통점을 뽑아 범용적 수단으로 우리가 다 같이 인간종족의 이득을 얻고자 하는 방법이 필요함을 자연스러운 접근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하는데, 우숩게도 우리나라엔 많은 이들이 이것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다.
물론 대선 투표율이 70%가 넘게 나오고 있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국민의 70%가 정말 정치라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실제로 제대로 된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20%도 안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유는 실제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서 많은 이들이 오직 자신의 이득이나 혹은 어려서부터 주입받은 어리석은 사고의 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정치란 아까도 말했듯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다같이 현명하게 잘 살아볼까에 대한 탐구생활인데 그것을 이미 정해진 규칙에 혹은 사상의 틀에 끼워서 원래 목적을 상실해버린 이가 다수를 구성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래서 난 솔직히 말해서 이 부분에 대해 포기를 했다. 물론 20%의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리고 이 나라를 조금이라도 정상적으로 만들려고 했던 많은 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하고 숭구스럽지만 그냥 마음을 비우고자 했다. 그리고 이후 내 삶은 오직 내 자신에 집중하여 나를 끌어올리는 힘든 과정을 그리고 진정한 내 삶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 것이다. 이 노력은 때론 철부지 없을지도 모르고 결론적으로는 어리석은 짓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대책없는 인간세상에 같이 매몰대서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면서 평생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한 동안 나름 평온하게 지내왔다. 대선의 결과에도 나름대로의 이유로 인해 아쉬움은 남지만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이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어쩌면 이 시대에 정권을 잡은 이들의 불운함은 어찌하겠는가?) 그래서 내가 영월에 지은 집이나 혹은 내 개인적인 취미 등에 집중하면서 몇년을 지내왔다.
그런데 며칠전 들려온 뉴스에서 그 모든 평정심이 한꺼번에 무너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의미에서 무관심을 보였던 것이 결국 그런 척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생겼다. 아니 실제로 그랬다.
내가 느낀 가슴이 묵직한 분노. 이것은 아직 내가 세상에 대해 완전히 버리지 못한 찌꺼기 같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왜 아직도 이런 분노를 느끼는 것일까? 정말로 왜 나는 이것들에 대해 미련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내 스스로를 파괴하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일까?
내가 왜 분노를 느꼈는지에 대한 이유에 상관없이 이번 기회에 내가 느낀 이 분노에 대해 많이 생각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좀 더 제대로 된 버림을 해보고 싶다. 물론 지금 잘 안되고 있긴 한데 이 글을 쓰는 목적도 그것을 하기 위한 일종의 노력이다. 그리고 이렇게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인간인 이상 나는 인간이 만든 시스템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물론 영월집처럼 사람들과 어느 정도 단절된 공간에 살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생필품을 모두 스스로 생산해서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인터넷도 써야하고 각종 전자제품을 써야하고 그러기 위해 전기도 필요하다. 물론 이것들을 쓰는데 비용이 발생하지만 실제로 돈 보다 그것을 통해 인간 세상이 주는 값싼 이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더 크다. 즉 전기를 나혼자 만들고 전자제품을 나 혼자 만들어 쓰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나는 죽는 그날까지 인간들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하면서 살다가 죽을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공동체속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작게는 내가 사랑하는 이, 좀 더 그 범위가 커지면 나의 가족들, 그리고 지인들까지 거기에 내가 모르는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에다가 결국 세계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까지 확대되어서 나는 그들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내가 마음을 비우지 못한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계속 연결이 되기에 그렇다. 이 연결은 내 스스로 벗어나기엔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인정한 상태에서 이해를 해야한다. 참 많이 힘든 문제이다. 길을 가다가도 늘 상황은 벌어지고 내 생각과 다른 사람들,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들, 피해를 주는 사람들까지 다양하고 가지각색으로 연결이 이어진다. 물론 집에 꼼짝도 않고 있으면 그나마 조금 끊어지지만 거기서도 연결은 계획 된다. 단지 잠시 멈춘 것일뿐.
그래도 희망은 있다.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록 사람간의 관계에 대한 그리고 그런 관계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내가 느낀 분노의 대상에 대해 좀 더 관대해질 수 있으리가고 믿는다. 그것이 관대함일지 무신경일지는 모르지만 무신경은 아마도 힘들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내가 세상에 대해 좀 더 관대해진다면 나는 아마도 오늘의 분노를 한때의 추억으로 느끼면서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날이 왔으면 정말로 좋겠다. 내가 꿈꾸는 나의 노년의 모습은 정말로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그런 여유로움을 가진 늙은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