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우린 과연 도덕적인가?

아이루다 2013. 6. 3. 10:44

 

인간이 저지른 행동 중 가장 중대한 범죄가 무엇일까? 살인? 성폭행? 아동유괴? 연쇄살인? 토막살인? 무차별 학살? 아니면 이것들을 합한 아동 유괴 후 성폭행하고 살인 후 토막내어 유기를 연쇄적으로 무차별하게?

 

내가 가장 마지막에 예를 든 범죄는 아마도 이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라면 전 국민적 지탄이 있을법한 사건이며 아동보호에 매우 열심인 미국같은 나라라면 이 죄를 짓고 잡힌 범죄자가 혹시나 사형을 면해 교도소에 수감되었더라도 다른 수감자들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을지도 모를 사건일 정도로 인간들 사이에서는 매우 치명적인 비도덕적 사건으로 분류될 것이다. (범죄자들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원론적인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다른이의 범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그 범죄에 대한 죄질을 무겁게 보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간접적 척도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인류 최초의 성문법으로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 이후 인간은 끊임없이 공동 사회 생활을 위한 규칙을 만들어왔는데 실제로 이 규칙의 가장 큰 힘은 그 규칙 자체보다는 그것의 지배를 받는 개개인의 도덕심과 규칙을 집행하는 기관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후로 몇 천년의 시간이 흐른 현대사회에서도 이 오래된 규칙은 그대로 적용되고 있으며 지금은 국가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도덕적 양심과 이를 벗어난 범죄자를 엄벌하는 좀 더 발전된 기술의 힘으로 무장된 사법기관의 능력으로 법은 그 가치를 수호하고 있다.

 

글 내용은 벗어나지만 잠깐 법의 분류를 내 마음대로 해보면, 일단 제일 먼저 눈에 띠는 항목들이 인간의 삶에 대한 매우 보편적인 가치기준을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우리나라 고조선시대의 팔조법이나 성경에 나오는 십계명과 같이 우리 인간이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가장 근간이 되는 것들에 대한 내용이다. 예를 들어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 음란한 짓을 하지 말라 등등 우리 인간 사회를 인간답게 유지시켜 주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가치관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 오래된 우리의 조상들의 약육강식의 삶을 현대 문명인의 삶으로 변모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을 것이다.

 

두번째로 분류를 하자면 특수목적의 법이 있다. 그것은 각 국가마다 고유의 가치관에 따라 정의되거나 혹은 종교적 목적으로 정의되어진 것들이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법들은 매우 국소적이면서 지역적이어서 잘못 다뤄질 경우 매우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위험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국보법' 같은 특수 목적의 법이 있는데 그 취지는 나쁜것은 아니지만 그 법을 잘못 오용했을땐 정말 참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또한 그런 사례가 과거 군사독재정권 당시 숱하게 일어났었다. 또한 외국쪽 사례를 보면 알라신을 믿는 이슬람계열의 나라에서 여자들의 인권을 아예 바닥으로 쳐 내리는 남성 우월주의의 목적으로 오용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세번째로 별도의 우수운 법들도 있다. 이것은 매우 시대적이고 지역적인 법들인데 실제로 사문서된 법들이 많다. 우리나라 예를 들자면 과거에 있었던 통금이나 미니스커트, 장발 단속 같은 법이 있고 현재에도 여가부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 각종 게임, 여성, 아동보호를 위한 규제들이 그런 일들을 하고 있다. 미국 같은 경우는 주별로 법이 다르게 적용되고 있어서 매우 어처구니 없는 법도 있다. 예를 들어 오하이주 같은 경우는 '다섯 명 이상의 여자가 한 집에 사는 것은 위법' 이라고 한다. 확실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프랑스에서는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인가는 남자가 서서 오줌을 싸면 안되는 법도 있다고 한다. 그 요란한 소리 때문에..

 

아무튼 법에 대한 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법을 그냥 정의하자면, 법은 인간의 시비비비를 가리는 가장 근본적인 기준점이다.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타인들과 어떤 갈등을 겪을 때 자신도 모르게 그 기준으로 삼는 두가지 기본 배경은 바로 어떤 행동이나 주장이 합법적인 것이냐와 또한 그것이 인간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의 통속적 가치관을 벗어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두번째에 대해서는 물론 원래 법 자체가 인간의 통속적 가치관을 기준으로 하기에 어쩌면 이런 내용이 나온 것 자체가 법이 아직도 인간의 모든 가치관을 대변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어떤 일이나 주장에 대해 합법의 유무는 매우 중요한 관점이다. 사람들은 보통 어떤 잘 이해가지 않는 상황이라고 해도 이것이 합법적인 일이라고 하면 대부분 어느 선까지는 수긍을 한다. 물론 법의 취약점은 존재하기에 교묘하게 법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 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은 이들은 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억울해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를 위한 법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헌법 재판소도 있다.

 

그렇다면 우린 온전히 법의 테두리에서 살아가는 존재일까? 무슨 말이냐면 법이 규제한 대로 우린 거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즉 법으로 이것이 나쁘다 라고 말하면 그것이 나쁜 것이라고 인식을 하고, 실제로 하지 않게 되느냐를 묻고 있다. 에를 들어 도로에서 신호를 지키는 것이 법에서 하면 안된다고 정의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그 법을 어겼을 때 혹시나 발각되어서 받게될 자신의 불이익 때문일까?

 

이것을 좀 더 설명해보면, 만약 자신이 법에서 정의해서 하면 안된다고 했기에 안했다면 그 사람은 매우 준법정신이 뛰어난 사람이다 라고 말해질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로 지켜야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현명하지만 언제고 상황이 주어지면 법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세번째로 불이익이 두려워서 지키는 사람은 매우 소극적이며 기회주의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 개개인은 과연 어떤 기준에서 법을 지킬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살아가면서 어떤 이유로 인해 타인과의 갈등이 생기고 그것으로 인해 폭력이나 심지어 살인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을 경험을 갖게 된다. 물론 살인까지 가는 것은 흔한 예는 아니지만 아무튼 싸움은 늘 일어나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런 싸움이 일어나면 누구나 그 싸움에서 이기고 싶어한다. 아마 평생 살면서 타인과 단 한번의 갈등도 겪지 못한 사람은 아마도 혼자 사는 사람 뿐일 것이다.

 

결국 이 갈등은 때론 폭력이 수반되기도 하고 심지어 서로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히거나 육체적으로는 아무런 영향이 없지만 폭언과 갖은 모욕적 언사를 통해 상대의 정신적 상처를 심각하게 입히기도 한다. 물론 이런 경우엔 녹음을 하지 못하면 법적 효력이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방법이며, 육체적 약자가 강자와 다툴 수 있는 어떤 부가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때 과연 우린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아 자신이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서 법이 보장하는 테두리를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폭언과 욕을 하긴 해도 육체적으로 상대를 상해입히는 행동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나마 약자들이(여자, 아이, 노인) 남자들의 폭력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좀 더 상황을 좀 더 극대화 시켜 우리 자신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우리가 지킬 마지막 인간으로서의 가치에 대해 생각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예를 들어 내가 죽느냐 상대를 죽이느냐의 기로에 섰을 때 과연 우린 얼마나 보편적 도덕심에 근거해서 판단을 할지 고민해보자.

 

이런 상황은 보통의 경우 경험하기가 매우 어렵다. 혹시나 전쟁에 참가했거나 집에 강도가 들어서 칼로 가족을 협박하고 나를 죽이려 할 때 정도가 이런 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상황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고민없이 상대를 죽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내가 살기 위해서는 죄 없는 다른 이를 죽여야 할 경우라면? 여기에는 조금 고민이 따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잘 생각해야 할 점은 우리가 실제로는 살인 그 자체를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우린 살인을 상황에 따라 판단하고 있으며 그 상황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법적인 허용의 범위에서 고려되고 있다. 즉 전쟁과 같은 상황이나 정당방위 차원에서의 살인은 언제고 양심적 가책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준법적인 살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특히나 이것은 매우 국가 귀속적인 판단이 된다. 즉 내가 속한 나라의 군인인 경우 자국의 병사를 죽이면 살인, 타국의 병사를 죽이면 영웅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상황을 보면, 죄 없는 다른 이를 죽여서 내가 살아날 때라도 역시나 쥐꼬리만큼이라도 내가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타인을 죽이고 그것에 따른 양심적 가책을 생각보다 쉽게 극복될 수 있게 된다. 내가 부양하는 가족이나 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개나 고양이도 그런 이유가 될 수 있다. 단지 그땐 그럴 이유가 필요할 뿐인 것이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우린 상대가 나보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길 바래야 한다. 그래야 상대를 죽이고도 조금 덜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왜 우린 양심의 가책을 느낄까?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우리 고유의 심성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린 자연의 일부이고 약육강식과 먹이 사슬이 연결되어 있는 자연에서는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존재의 삶을 없애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생명체가 자신의 삶을 버리는 순간은 그 후대를 남기기 위한 결정을 할 때 밖에 없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우리의 삶은 오직 자신의 생명 유지가 최고의 목표가 된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매우 별난 존재일까? 우린 이성을 가지고 있고 또한 지능이 높아서 상황 판단을 잘 할 수 있으니까?

 

나는 결론적으로 그것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가진 거의 모든 종류의 가치관은 대부분 사회로부터 교육받은 것이다. 과거 문명화되지 못한 아프리카의 식인종이나 중세유럽의 잔인하고 참혹한 인권유린의 사례가 바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린 그저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정한 범위내에서 그 도덕심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법이 중요해진다. 처음에도 말했듯 법은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말에 대한 합법성을 부여해주는 거의 유일한 가치이다. 물론 그 법을 악용해서 나쁜짓을 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 자체가 무의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각 나라의 법은 실제로 그 나라의 사회를 유지시시켜주는 근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법의 기준에서 살아간다. 우린 법을 지정하는 입법부와 그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의 역할 내에서 존재하고 있다. 만약 나라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관들이 한 달만 없어져도 이 나라는 무법 천지가 될 것이다. 누가 살인, 성폭행, 아동유괴 같은 범죄를 막아내 줄 것인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의 도덕심을 그리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도덕심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에 대한 고민없이 혹시라도 그 도덕심을 넘어서는 비도적적 행위를 했더라도 그것을 매우 열심히 합리화하여 양심적 가책을 줄이거나 없앤다. 그땐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매우 크다.

 

법은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법은 우리들의 본성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린 오늘도 법이 정의한 우리 인간의 본질적 규정을 마치 내 자신이 원래 그런 것인냥 착각한다. 이점을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우리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라면 뭐하러 법으로 만들었겠는가? 마치 음식은 입으로 먹여야 한다든가, 아니면 걸을 땐 두다리를 써야 한다든가 하는 것에 대한 성문화 된 법이 없는 이유를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는 결론이다.

 

그런데 왜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원래 비도적인것과 우리의 삶의 관계는?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는데 말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점은, 나와 우리 자신이 내가 판단한 내 자신보다 훨씬 비도덕적인 존재란 것을 인정하면.. 우린 다른 의미의 도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여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사는 삶이 내가 믿는 내 자신의 삶보다 훨씬 비도덕적인 것이란 깨달음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내가 믿는 인간의 도덕적인 삶에 대해 끝없는 추구를 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론과 비슷하기도 한데.. 중요한 것은 그것을 신으로 부터 용서받아서도 안되고 누군가 다른 존재가 용서될 수도 없는 것이란 점이다.

 

이것은 단지 자기 합리화 행위이다. 그리고 이런 절차를 밟음으로서 우린 오늘도 자신의 도덕적 양심을 속이는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것이다. 이것을 하고 나서 양심조차 편해지려고 하는 것은 반칙이다. 나쁜 일을 해서 이득을 얻었다면 그게 합당한 죄를 스스로 받으면 된다. 물론 그런 양심의 기준도 사람마다 많이 달라서 동일한 일을 했어도 훨씬 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개개인의 몫이다.

 

사자는 새로운 무리의 리더가 생겼을 때 전임 사자 우두머리를 통해 낳은 새끼를 모두 물어 죽인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암사자들은 빠르게 발정기에 들어가고 그때 새로운 우두머리는 확실한 자신의 DNA를 남길 수 있게 된다. 우린 이것을 처음 들었을 땐 놀라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런 자연의 원리를 이해할 수도 있게 된다. 남자들 역시 자신의 자식이 자신의 DNA를 물려받았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은 존재한다. 그것은 아이를 사랑하느냐 마느냐와는 좀 차원이 다른 원초적인 두려움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들의 외도를 성적인 것으로 구별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인간은 교육받고 문명화되며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매우 오랫동안 교육을 받는다. 이런 종류의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평생 교육받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가치관은 그 자신은 스스로 만들어 내거나 혹은 신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모두 외부의 교육으로부터 얻어진 것이 것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누가 자신의 신념이나 믿음, 정치적 입장 같은 것들을 외부의 자극과 교육, 주입에 의해 생성한 것이라고 인정하겠는가? 그것은 마치 내가 도적적인 인간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고 해서 실제로 내가 도덕적이고 내가 내 스스로 만들어 낸 신념을 가진 인간일 수 있는가? 그것은 마치 절대적 창조를 했다고 우기는 꼴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우린 모방 없는 창조를 절대로 할 수 없는 존재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