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 사라져 버린 사회
20세기 초반, 미국의 자동차 왕이라고 불린 포드는 획기적인 생산체제를 자신의 회사에 적용함으로서 그 전의 세계와 그 후의 세계를 완전히 뒤바꿔버렸다. 물론 세상을 획기적으로 바뀐 변화는 그 전에도 많이 있었다. 전기의 보급, 전화, TV, 비행기 등등 사람들의 삶 패턴 자체를 변화시켜 준 것들은 꾸준히 발명되어 왔었따. 그래서 어쩌면 포드가 도입한 대량생산 체제가 그리 커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아예 인식도 안되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요즘 사는 대부분의 제품들은 - 전자제품, 자동차, 가구, 채소나 과일까지 모두 - 매우 싸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것이 왜 싸냐고 되묻겠지만.. 한 10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누가 겨울에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사치를 누렸으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편리한 제품들은 그 가격에 비하면 정말 엄청난 일을 해주고 있다. 쉽게 예를 들어 냉장고 같은 제품은 그 가격이 비록 100만원이라고 해도 우리가 얻는 그 제품의 편의는 정말 수천만원 어치가 될 수 있다. 난 예전에 자취를 할 때 세탁기가 없는 집에서 살아 본 적이 있는데.. 정말로 세탁기는 엄청나게 편리한 물건이다. 그런 빨래를 모두 손으로 빨아야 했다면?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도면을 주고 세탁기를 완전히 혼자 힘으로 만들라고 했다면.. 부품까지 모두. 나는 아마 평생을 걸려서 만들어도 못 만들 것이다. 이런 예는 많다. 쉽게 집에 쓰는 부엌칼 하나도 제대로 만들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내가 그것을 직접 만들려면 나는 우선 철광석을 캐고 거기에서 철을 뽑아내어 제련할 용광로가 있어야 하고 그 후에도 담금질도 하고 두둘기기도 하고 결국 내가 원하는 모양의 칼을 만들려면 아마도 수십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과거 포드가 자동차 생산라인에 적용한 대량생산 체제는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부품 단가를 낮추고, 숙련된 노동자의 생산성 효율 또한 올라가면서 제품의 가격은 싸질 수 있었고 또 싸진 제품은 많은 사람들이 그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그럼으로서 많이 팔린 제품은 결국 추가적으로 더 생산을 할 수 있는 시장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 선순환은 바로 전반적인 시장 확대와 경제 활성화를 불러와 결국 경제 발전을 이룩해 낸 것이다. 그리고 이 생산원리는 농식품에도 적용되어 현재는 식량의 대량 생산체제 역시 확보되어 있다.
지금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제품은 이런 원리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다못해 그 흔한 비닐봉지도 우리가 스스로 만들려면 평생 걸릴 수 있는 반면 이런 대량 생산체제를 통해 만들어진 비닐봉지는 겨우 10원의 가격도 안되는 것이다. 아마도 조선시대에 비닐봉지를 들고가면 그 편의성으로 인해 비닐봉지 하나와 조선백자 하나를 바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이 대량생산 체제가 바꾼 것은 바로 과거에 돈이 많거나 귀족들이었든 사람들만 소유했던 고가의 제품들을 일반인들이 쓸 수 있는 수준까지 떨어뜨려 준 것이다. 아무튼 그 후 일명 보통사람들은 과거 100년 전에 비하면 정말로 어마어마한 수준의 제품을 그리 어렵지 않게 쓰고 있다. 단지 우린 그것을 경험해보지 못했고 거기에 더해 인간의 망각과 적응력으로 인해 과거를 쉽게 잊었기 떄문에 생각을 못할 뿐이다.
지금 누구나 쓰는 스마트폰은 80년전만 해도 그만한 성능을 내는 제품은 수억을 들여도 못만들던 제품이고 짧게는 20년 전만해도 수퍼 컴퓨터로 불릴만한 제품의 성능을 낸다. 하지만 우린 그것을 느끼는가? 아니다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그냥 과거에 그 분야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추억에서나 남아 있는 일이다.
장황하게 늘어놨는데, 그렇다면 대량생산 체제는 매우 좋은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 것이다. 좋은 물건들을 싸게 사서 쓸 수 있는것은 정말 행운이 아닌가?
그런데 슬프게도 그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원리는 너무도 많이 들어 본 말인 '동전의 양면성' 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양면의 한쪽은 반드시 장점, 단점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냥 양면성이다. 나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대량생산 체제의 장점은 생산성 증가에 의한 싼 가격. 이 한마디로 표현될 수 있다. 대량의 제품을 만듬으로서 단가를 낮추고 노동자들의 숙련도를 높이고 제품 불량에 대한 검사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서 매우 튼튼하고 기능이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소비자들은 가격대비 매우 좋은 효율을 얻어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지갑을 연다.
하지만 반대적으로 쉽고 싸게 얻어진 물건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보자. 수백만원 하는 옷과 길거리에서 오천원 주고 산 옷을 빨 때 사람들은 둘 다 드라이를 하지 않는다. 비싼 고가의 옷은 매번 세탁소에 맡겨 드라이를 한다. 하지만 싼 옷은 그냥 세탁기에 빨아 탈수 후 빨랫줄에 넌다. 만약 그것을 드라이를 맡겨 3천원을 줘야 한다면 아마도.. 그냥 버릴 지도 모른다.
이것은 매우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싸게 산 물건은 쉽게 버려질 수 있다는 원리이다. 이것은 그리고 다음 과정으로 확대된다. 결국 가격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전체적으로 이것을 아우를 표현을 하자면, 쉽게 얻은 가치는 쉽게 잃어버릴 수 있다.
이제 '가치' 라는 용어가 나왔다. 그리고 이 '가치' 는 생각보다 삶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과거에 쓴 나의 글에서 나는 사람들의 삶을 바로 이 가치에서 찾았던 적도 몇번 있었고, 당연히 이것은 삶에 있어서 정말 많이 중요한 요소이다. 우린 결국 전체 삶의 과정을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만 하다. 그리고 이 가치가 바로 사람의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런데.. 쉽게 얻은 가치라면?
결국 쉽게 버려진다. 즉 내가 오늘 산 중국산 싼 머그컵은 언젠가 쉽게 깨져서 버려도 조금 귀찮을 뿐 언제고 마트에 가면 쉽게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다. 단지 이것은 약간의 귀찮음과 또 약간의 돈이 불필요하게 쓰이기 때문에 나를 좀 성가시게 할 뿐이다. 하지만 반대로 어느날 도자기 체험실습을 갔다가 만들어 온 생긴 것은 매우 투박하지만 내가 직접 만든 컵이라면? 이것도 역시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까?
일단 당연히 다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컵은 공장의 대량생산에 의해 만든 것이 아니니.. 우선 그 존재 자체가 유일하다. 그리고 내가 노동과 시간을 들여서 했으니 내게 주는 의미도 다르다. 따라서 나에게 이 컵의 가치는 마트에서 사온 머그컵과는 완전히 다르게 인식된다. 그래서 만약 그것이 깨지면.. 어쩔줄 몰라 하거나, 매우 안타까워 하거나, 슬퍼할 수도 있다. 아니 그것이 심한 경우엔 화를 낼 수도 있다.
물론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에도 이런 경우가 있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쓰는 스마트폰 같은 경우도 그렇다. 액정이 깨진 스마트폰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은 거의 같은 것 같다. 다들 얼마나 안타까워 하는지.. 나 역시 얼마전에 내 폰의 액정을 깨먹은 적이 있어서 매우 공감가게 느낀다.
그래서 이것을 단순히 대량생산 제품과 자작제품으로 나눌 수는 없다. 어쩌면 이 시점에는 가격이 더 큰 요소일 수 있다. 비싼 가격을 가진 제품은 사람들에게 그 제품이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여기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 제품이 망가지거나 분실을 하게 될 때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불행감은 이 제품을 다시 구매하기 위해 또다른 지출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까 말한 도자기 컵은 그런 심리가 아니다. 그 도자기 제품은 다시 만들 수 없는 제품이다. 만약 다시 도자기 체험에 가서 만들어 올 지라도 그 제품은 원래 그 사람이 쓰던 그 제품은 아니다.
그리고 이럴 경우 사람들은 그 제품을 새로 만드는 노력과 비용이 아까워서 마음이 아픈게 아니다. 그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소중함 가치가 파괴되어 마음이 아픈 것이다. 솔직히 아무리 잘 만들어도 어찌 공장에서 기계가 만든 제품을 따라갈 수 있으랴. 제품 디자인도, 그것을 만드는데 필요한 비용도.
나 역시 요즘 시골에 집을 짓고 거기에 텃밭을 가꾸면서 드는 생각은 도대체 내가 상추를 재배해서 먹는 것이 비용적인 측면만 보면 사서 먹는것 보다 싸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내가 가꾼 상추는 먹을 수 있는 시기가 딱 정해져 있는 반면, 마트의 상추는 사시사철 구매할 수 있다. 이것은 차이가 나도 너무 큰 차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상추가 훨씬 가치가 있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나만이 느끼는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린 대량생산 체제의 사회가 주는 헤택을 듬뿍 받고 있다. 싸고 질 좋은 물건을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이다. 그리고 미래는 더욱 그렇게 변해갈 것이다. 한 10년만 지나도 지금 백만원 가까이 하는 스마트폰과 동일한 성능을 가진 제품은 단돈 만원이면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쓰지도 않겠지만.
반대로 우린 이런 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탓에 원래 가지고 있던 '가치'를 상실하고 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우리가 구매한 제품의 비싼 '가격' 만이 남아 있다. 이것은 바로 가치 = 돈 이 되어버리는 현상으로 연결된다. 제품 자체가 갖는 가치가 줄어들고 거기에 언제라도 대체 가능한 상품이란 점에서 우린 돈만 있으면 언제든 동일하거나 더욱 뛰어난 성능을 가진 제품으로 현재 가지고 있는 제품을 교체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강력한 편의성이기도 하지만 또한 매우 슬픈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물건은 그 고유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을 얻는 수고와 노력과 시간과 비용이 있다면 그것은 가치있어진다. 실제로 내가 지은 시골집은 그 집 자체엔 가치가 별로 없다. 아 물론 돈 자체가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 집을 지을 돈을 벌기 위해서 내가 오랜시간 노동을 했으니 돈은 가치가 있다. 하지만 돈이 가치가 있는것이지 이 돈으로 지은 집이 그만큼의 가치를 가진것은 아니다. 일단 시작은 그렇게 된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진정한 가치들은 내가 그 집을 짓기 위해 노력한 시간과 그 집 내부를 채우가 위해 나와 나의 지인들이 직접 만든 가구들이 되어준다. 혹시나 집이 화재가 나서 타더라도 난 내가 들어 놓은 화재보험을 통해 다시 그 집을 지을 수 있겠지만.. 그 안을 채운 꾸준히 만들어 온 것들은 과연 어떻게 다시 채울 것인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부모가 아이에게 느끼는 가치도 완전히 동일하다. 10달을 배에 넣고 키운 엄마의 자연스러운 모성애나 아이를 먹여 키우기 위해 노력한 아빠의 노력 역시 모두 가치로 환산이 된다. 그래서 모든 가정의 아이들은 대부분 가치있고 그만한 대접을 받는다. 그 누구도 그 아이를 어떤 사고로 잃게 되었을때 단순히 돈을 주고 다른 아이를 사다가 키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바로 물건들의 가치이다. 이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또한 알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방법도 없이 그렇데 되어가고 있다.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우린 그것을 그냥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가치는 바로 '돈' 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돈이면 내가 필요한 모든 물건을 살 수 있다.
그나마 우린 아직은 가족의 가치, 사랑이 가치, 친구의 가치, 신념의 가치등은 지켜내고 있다. 즉 물질적인 것에 대한 가치는 거의 다 잃었더라도 정신적인 것에 대한 가치는 아직은 잃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이것들도 위협하고 있다. 이젠 밖에 전혀 나가지 않고도 세상과 교류 할 수 있으며 어린 시절 꼭 놀 친구가 필요했던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 이젠 나만의 세계에서만 살아도 충분히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것이 지나친 생각이라고 따지고 싶은가?
미래의 어느날 분명히 가상체험 기술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뇌는 그 구조적으로 원리적으로 완전히 파악되어서 우린 단지 두뇌에 전기를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가상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로봇 친구가 생길것이고 로봇 여자친구, 로봇 남자친구가 생길 것이다. 친절하고 착하고 내말을 잘 들어주고 거기에 하드웨어적으로도 완벽한 연인. 정말로 이런날이 안올 것 같은가?
그럼 우린 이제 정신적인 가치들조차 잃어가게 될 것이 분명하다. 친구를 백만원에 살 수 있다면 누가 친구를 만들기 위해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겠는가? 이것은 누가 5천원이면 컵을 살 수 있는데 그 컵을 만들기 위해 그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하겠는가? 와 정확히 일치한다.
지금은 21세기 초반이다. 그리고 21세기 후반엔 어떤 기술들이 나와 우릴 행복하게 해줄지 예상도 힘들다. 하지만 내가 확신한 것은 기술문명의 발전은 분명히 현재의 우리가 느끼고 있는 '가치'를 돈으로 바꿔줄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인류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점점 더 심화될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아이는 부모에게 감동을 준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들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정리해서 표현하면 내가 느끼는 모든 '가치'는 나에게 감동을 준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고 내 마음을 채워주고 내 삶을 의미있는 것으로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지금 세상은 그런 감동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점차로 줄어들고 있는 슬픈 현실이 지배하고 있다.
오늘도 돈을 벌어서 또 다른 제품을 살 생각이 매우 자연스러운 우리들은.. 결국 이것으로 인해 우리가 느낄 내면적 부재감을 그 스스로 인식을 못하고 그것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또다른 자극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내가 가진 불안하고 비어있는 그 자리를 인식할 시간을 못갖게 하려고 늘 어떤 정보들을 머리속에 밀어 넣는 일을 하게된다.
돈만 벌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에 돈을 버는데만 집중하고 그래서 남아도는 시간은 주체할 수 없어 스스로 고민하기도 하지만.. 결국 내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조차 잃어버렸기에 시도조차 못하게 된다. 그것은 결국 우리 생활환경을 오직 편리함과 효율적인 면에만 집중하도록 하고 그럼으로서 우리가 더욱 잃어가는 가치는 우리를 더욱 황폐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대량생산이 만들어 낸 세상은.. 어쩌면 우리를 정말로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