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맞춤형 생활환경, 적응과 번성

아이루다 2013. 5. 28. 17:17

 

여러가지 종류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본 자연속 생명체들은 그 각각의 독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자기만의 노하우를 보여주면서 그것을 보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어떻게 저렇게 딱 맞춰서 살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해준다. 자기가 먹을 수 있는 먹이를 위해 매우 적절한 모양을 가진  새 부리나 사냥감을 잡기 위해 특정한 능력들이 발달된 육식동물들의 다양한 능력들도 그런 예중에 하나이다. 이것은 비단 자연계의 생물만의 특징이 아니다. 우리 인간 역시 그들 중 일부로서 정말 다양한 환경 적응력을 보여주면서 특별한 생존능력과 다양한 형태의 적응을 하고 있다.

 

새이면서도 날지 못하는 남극 펭귄의 통통한 모습도 그렇고 북극에서 살아가기 위해 적응한 북극곰의 거대한 몸과 그 온 몸 내부를 가득채우고 있는 지방의 존재는 그들이 그 추운 곳에서도 변함없는 체온을 유지시켜 줘 얼어 죽지 않게끔 해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런 특징은 동물과 같은 나름 상위권에 있는 생명체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곤충류중에서도 특히 군집생활을 하고 있는 개미나 꿀벌과 같은 개체들은 정말로 대단해 보일 정도의 사회성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많이 연구된 개미 같은 경우는 아예 인간들처럼 진드기를 사육을 하기도 하고 곰팡이 포자 농사를 짓기도 한다.

 

아무튼 수많은 예에서 보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물들 그리고 식물들까지 모두 각자가 살아가는 환경에 참 잘 적용하고 있는데 어떨때 보면 누군가 이것들을 잘 설계해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래서 과학을 통해 자연을 알아가면 갈수록 어쩌면 신의 존재를 느끼기도 하는가 보다.

 

하지만 여기엔 정말 단순한 착각 하나가 숨어 있다. 그것은 실로 나 역시 착각을 많이 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진화 자체가 좀 엉뚱한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진화 방향의 랜덤성인데 우리말로 하면 무작위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진화에 대해 오해하는 가장 큰 부분이다. 이 착각을 통해 보면 우리는 모든 동식물들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 맞게 적응하면서 진화해 온 것이라고 믿게 된다. 실제로 그래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앞에서 언급한 북극곰의 경우 몸의 두꺼운 지방층으로 인해 추위를 안타니 북극에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론적 해석이다. 지방층이 두꺼워서 거기에 살 수 있는것이 아니고 거기에 적응하다보니 두꺼워진 지방층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북극곰은 실제로 뚱뚱한 놈, 덜 뚱뚱한 놈 형태로 아주 다양하게 태어날 것이다. 하지만 결국 뚱뚱한 놈이 더 추위에 잘 버텨서 생존을 잘 할 수 있었겠지만 또한 뚱뚱하다는 것은 둔한 몸으로서 먹이를 잡는데 실패할 확률이 높아져 결국엔 그 둘 사이의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결과가 현재의 북극곰으로 보면 된다.

 

이런 적응을 우린 진화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는 진화의 긍정적 의미와는 다르게 생명체 의 진화는 그리 똑똑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진화를 주도하는 있는 각 생명체의 유전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야 옳다. 하지만 유전자는 정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대책을 내어 놓으므로서 그 역할을 한다. 그것은 바로 다양한 형태의 개체를 만들어 내는 전략이다.

 

각 생명체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잘 적용하는 개체가 가장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솔직히 환경이 어떻게 변화해 갈지 누가 알겠는가? 이렇게 문명을 발전시킨 인간조차도 지진의 가능성이나 앞으로 지구의 대기 환경에 대해 예측만 할 뿐 최종 모습에 대해서는 걱정만 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런 지적 능력이 없는 유전자가 어떻게 그것을 예측하겠냐 말이다. 그래서 유전자는 그냥 다양하게 섞어 댄다. 일단 암/수로 구분지어서 최소한 두개의 다른 개체가 가진 유전자가 섞이게 만들며, 그 섞이는 것도 매우 다양하게 매번 다르게 한다. 식물조차도 꽃들은 동시에 많이 피어 이웃의 유전자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자신의 유전자로도 다른 꽃끼리 섞이도록 유도한다.

 

이 유전자 섞기야 말로 우리의 고유성을 유지시키는 유전자가 가진 최고의 전략이다.

 

이때 어떤 결과가 나올까? 바로 이때 소위 돌연변이나 나타난다. 우린 돌연변이를 X맨 같이 우리와 완전 동떨어진 존재로 인식하기 쉽지만 실제로 우린 모두 돌연변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존재에 있어서 정상이나 중심이 되는 유전자라고 판단 할 기준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얼마나 전체 평균 값에 근접했느냐에 따를 뿐 실제로 우리에겐 정상이란 것에 대한 잣대가 없다. 기준이 없는데 어떻게 내가 정상이라고 판단하고 나와 다른 남이 돌연변이라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또한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가르는 우리의 오랜 전통적 가치관의 어리석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좀 더 전개시켜서 이렇게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돌연변이들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따라가보자.

 

실제로 있었던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예전에 빙하기때만 해도 북유럽에는 금발머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금발머리가 돌연변이로 나타났다. 그런데 오늘날 보면 북유럽쪽에 금발은 매우 흔한 머리가 되었다. 그것은 바로 금발머리가 남자의 선택 기준에서 우월성을 가진 가치라고 판단되어서 후손을 많이 남긴 결과이다. 이것이 세대를 넘기면서 이젠 다수의 사람들이 금발이 된 것이다. 처음에 금발은 분명히 돌연변이다. 하지만 이제는 금발이 아닌 것이 돌연변이가 될 수 있는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돌연변이 유전자는 유전이 된다. 그래서 아버지의 돌연변이성 형질은 그 자식에게 전달이 되는데 우연히 그 변형된 형질이 현재 상황에 잘 맞게 되면 그 자손은 많이 번식을 해서 그 수를 늘린다. 그래서 결국 그 돌연변이로 얻어진 형질은 대대손손 많이 늘어나 결국 그 개체의 중요 특성이 되는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획득형질은 유전이 되지 않는다. 즉 아버지가 잘 훈련된 피아노 연주자라고 해서 아들이 태어나서 바로 피아노를 칠 수 있는것은 아니란 말이다. 이것은 물론 기본적으로 손가락이 가늘고 길어서 피아노를 잘 칠 자질을 타고 날 순 있어도 배우지도 않고 피아노를 칠 수 있을 순 없다. 그리고 아버지가 피아노를 잘 칠 수 있었던 긴 손가락은 피아노를 잘쳐도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에 놓였기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것이다. 만약 예술에 전혀 관심없는 사회에 태어났다면 그는 피아노를 치다가 평생 굶고 결혼도 못하고 죽었을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이 진화의 핵심이다.

 

유전자는 오늘도 유전자 섞기를 한다. 특히 암/수 구분을 하기 시작한 우리의 오래된 조상은 정말로 진화 역사에 있어서 기념비적 사건을 일으켜 낸 것이다. 자웅동체나 단성생식을 하지 않고 암/수로 나뉘어 양성생식을 하는 개체가 대다수 고등생물인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을 통해 유전자는 더욱 활발히 유전자 섞기를 하고 또한 암/수가 그 짝을 고를때 가장 유전적으로 우월한 개체를 선택하게 만듬으로서 후대를 더 강하고 환경 적응력이 강한 존재로 유지시켜 준 것이다.

 

인간사회에 등장에 요즘도 많이 시끄러운 동성애를 또다른 상황적 예로 들어보자. 동성애를 싫어하는 사람들 중에 이성애를 마치 자연의 섭리인량 정의하고 이들을 심하게 비난한다. 물론 자연에서 이성애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유전자 입장에서 보면 단지 잘한 선택 중 하나일 뿐이다. 즉 과거에 어떤 유전자가 특별한 계기로 인해 유전자 섞기 중 암/수를 구분해 내었는데 이것이 탁월한 선택이 되어 그 후대가 지금까지 전달되어 온 것이다. 거기에 자연계에서도 동성애는 그리 특이한 현상이 아니란 것이 생물학자들의 연구 결과이다. 즉 동성애에 대한 비판적인 부분은 실제로 그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이나 혹은 관념적으로 그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의 반응으로 보여진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자연의 규칙이나 섭리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개체에서 정상이나 중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이다. 단지 우린 그안에서 선택을 할 뿐이다. 결국 동성애를 선택한 사람은 자신의 유전자를 미래에 남기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단종되고 반대의 이성애를 선택한 사람들 중에 많은 후손을 남긴 이들의 자손이 미래로 향해 연결되어 진다. 이것은 단지 유전적인 선택 사항일 뿐인 것이다.

 

지금은 동성애가 유전자적 선택을 받지 못해서 단종되지만 인간의 기술이 발전해 동성애자들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기술이 발명된다면 언젠가는 반대 입장으로 바뀌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부부나 결혼 자체를 하지 못하거나 안하거나 해서 평생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다. 단지 그들은 유전자적으로 단종되는 개체의 종말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멸망해 갈까?

 

혹자들은 우리의 사회가 출산률이 주어서 미래가 불투명하고 어려워질것이라고 걱정하는데 그것이 기본적으로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환경적 요소가 너무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들조차 포기하는 형편이고 그에 앞서 결혼조차 포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유전자의 선택이다. 자녀를 키울 환경이 되지 않으니 그것으로 인해 벌어진 엄청난 강도의 양육절차를 생략해버리는 것이다. 물론 유전자는 포기를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자극하겠지만 인간의 사고력은 그것을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자연계에서는 암컷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숫컷의 비율이 10%도 안된다고 한다. 그나마 인간의 남자는 여기에서 조금 나아진 모습이다.

 

이 모든것을 정리하면 진화란 정말 우연한 결과의 산물이다. 유전자는 끝임없는 섞기를 통해 최대한의 다양성을 확보하려고 하고 그 결과로 태어난 후손들 중에 변화된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가 더 많은 후손을 남기면서 그 개체의 미래를 책임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커다란 흐름을 보지 못한채 지금 이 순간만 보고 모든 동식물이 어떻게 저렇게 잘 맞춰서 살아가는지를 보면서 신의 존재를 찾거나 동성애자를 비난하거나 결혼하고도 애를 낳지 않는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비난을 한다. 내 생각이라면 그럴 비난을 할 정도로 투철하게 인간족에 대해 애정이 깊다면 그 스스로 아이를 하나 더 낳거나 그것이 힘들다면 매년 엄청나게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 하나를 입양해다가 키울 생각을 하는 것이 좋으리라.

 

우린 정말 생각보다 수억년의 시간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지금 몇천년의 시간동안 눈에 띄는 진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해서 진화 자체를 무시한다. 우리가 어찌 수천만년 수억만년의 시간을 상상할 수 있으랴.. 겨우 백년 사는것도 정말 길게 느껴지는 세월인데 말이다.

 

세상은 정말 끊임없이 변해가는 진정한 활동적인 공간이다. 진공이란 아무것도 없다고 정의된 우주 공간에서도 양자적인 영역에서는 뭔가가 만들어지고 금새 사라지곤 한다. 이것은 정말로 우리가 모를 뿐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또한 거시적으로도 우린 거대한 진화의 흐름속에 속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늘 바뀌어 간다. 인간의 몸조차 7년이면 뼈 세포까지 모두 바뀌어서 원래 몸하고는 완전히 다른 세포로 구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린 그것을 느낄 수 있을까?

 

불교에서 말하는 공즉시색, 색즉시공 이란 말이 정말로 우리 우주를 표현하는 진정한 의미가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 정지된 것은 개개인의 고착화된 사고방식 뿐이다. 세상은 늘 변화하고 있는데 우린 젊은 시절 혹은 중년의 나이에 얻어들은 지식과 그 좁은 범위의 쥐꼬리만한 경험으로 자신의 사고를 완전히 고정시키고 그것에 맞지 않는 이들을 무조건적인 비난을 해댄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그 비난에서 근거가 되는 경험적 사고란 것이 도대체 어디에서 인정해 준 것일까?

 

내가 죽은 이후에도 지구는 변해갈 것이고 또 거기에 적응하는 다양한 동물군이 나타날 것이다. 지금도 세계에는 수많은 동식물이 적응에 실패해 멸종을 맞고 있으며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이다. 우리 인간은 너무도 빨리 자연환경을 변화시켜서 오랜 기간 동안 천천히 변화해왔던 진화의 질서를 깨뜨리고 있다. 그래서 멸종은 더욱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간 자체로 인해 이미 멸종한 동식물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고 - 우리나라엔 예전에 호랑이가 있었다고 한다 - 자원개발로 인해 간접적으로 멸종해가는 개체도 파악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인간이 지구에 이득이 되는 존재일까? 피해를 주는 존재일까?

 

더 넓게 말해서 우리 인간의 번성이 과연 옳은 일일까도 생각해 봐야 한다. 물론 유전자는 강한놈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강함이 반칙인건 아닐까? 두뇌를 이용한 지능적 행동은 우리 인간을 최고의 강한 존재로 만들어줬는데 이것으로 인해 우리가 너무나 쉽게 다른 개체들을 파괴시켜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생존은 그리고 지배는 생명체의 본능인 것은 맞다. 누구나 자신의 종족이 최대한 잘 살아남아야 한다. 여기엔 나도 어떤 의견을 쉽게 낼 수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에서 우리 인간의 미래만을 모든 것을 우선한 진리인냥 여기면서 주장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그것은 너무 편협한 시각이고 또한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나는 믿는다.

 

P.S 강한놈이 살아남는다는 말에는 살아남은 놈이 강한 것이다라는 반대 문장도 있다. 어쩌면 유전자 정책이 그것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어떻게든 살아남을 놈을 조합해 내서 종족의 영생을 추구하면 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