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힐링의 사회

아이루다 2013. 4. 3. 12:17

 

지난번 글에도 언급했었던 책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책들은 내가 그리 읽어보고 싶지는 않는 분야의 책이어서 솔직히 비슷한 다른 책들의 이름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두권의 책이름만 들어도 어떤 종류의 책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책은 바로 '멈춰서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 두 권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사회는 국제적으로 보면 다른 국가의 사회에 비해 스트레스가 좀 심한 편이다. 땅은 좁고 사람이 많은 나라의 특성인 셈이다.(자원은 한정되는데 그것을 원하는 사람이 많을 때 경쟁은 심화된다) 물론 내가 외국에서 장시간 살아본 적이 없으니 내가 직접 체험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냥 주어 들은 내용들을 짜집기 해보면 상식선으로 판단이 된다.

 

'경쟁' 이 심한 사회는 어쩔수 없이 그 경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를 주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경쟁이라면 반드시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으며 승자는 그것에 대한 댓가로 많은 이득을 보지만 반대로 패자는 끝없는 나락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쟁에 참가한 사람이 모두 승자가 되고 싶어하느냐? 아니다. 실제로 따져보면 꽤 많은 사람들은 승자가 목표가 아닌 단지 패자가 되고 싶이 않아 할 뿐이다. 가늘고 길게 산다는 말.. 바로 그것이 그 뜻을 의미한다. 하지만 승지가 될 욕심이 없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가? 그것도 절대 아니다. 차라리 승자를 목표로 한 사람보다 더 스트레스 받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이다.

 

승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매우 목표 지향적이다. 그래서 실제로 스트레스를 엄청 받더라도 그것을 잘 승화시켜 자신의 경쟁력으로 환산시킨다. 즉, 힘들수록 그것을 달성했을 때 받을 성과가 훨씬 커진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경쟁자와 그리고 그 자신과의 싸움에 최선을 다 할 이유가 생겨 더욱 자신을 몰아붙일 수 있다. 반대로 승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닌 패자가 되고 싶지 않는 이들은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가 없다. 즉, 이기고자 하는게 아니라 꼴찌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늘 꼴찌가 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의해 앞으로 나간다. 이 둘의 차이는 매우 커서 실제로 매우 다른 양상의 정신적 패턴이 나타난다.

 

이 차이점에서 나는 우리 사회가 왜 '힐링' 이란 주제에 빠져드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힐링은 승자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아닌 패자가 되고 싶이 않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행동이다. 즉, 꼴지가 되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종의 정신 유희이다. 내가 왜 유희라는 단어을 썼냐고 묻는다면 실제로 힐링은 또 꼴찌가 안된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진짜 꼴찌가 된 사람은 힐링을 받을 엄두도 못내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이다.

 

'힐링'을 실제 치료에 대입해서 설명해보면, 힐링은 환자를 치료하는 행위여야 하지만 (진짜로 아픈 사람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보통 우리가 하는 힐링은 아플지도 모르거나 약간 피곤함을 느끼거나 혹은 요즘 몸이 부쩍 안좋아 진 사람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정말 아픈 사람은 그런 것을 볼 여유도 없고 정신도 없고 심지어 의식도 없기 때문이다.

 

얼마전 통계에 우리나라에서 월 100만원 이하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수백만명이 된다는 기사가 나왔다. 물론 월 백만원이 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어느정도 인간답게 영위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으로는 좀 많이 부족하다. 실제로 이들이 진정한 인생의 경쟁 패자라고 나는 말한다. 물론 경제적인 면에서만 판단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돈빼면 어떤 가치가 있는가?

 

하지만 이런 계층 사람들은 내가 미리 말한 책을 읽을 시간도 돈도 없다. 그리고 아플지도 모르는 중간계층의 이들이 이 힐링에 열광을 한다. 왜냐하면..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돈이 있기에 책도 사고 책을 읽고 혹은 그들이 하는 힐링 콘서트에 가서 대화를 할 수 있다. 과연 이것이 '힐링'이라고 부를만한 것일까?

 

심지어 TV에서도 '힐링'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 같다. 지난 대선에 대선 후보들이 차례로 나와 유명해졌던 그 프로그램에 매우 유명한 이들이 차례로 나오고 가끔 그것에 대한 기사가 몇일간 언론을 통해 언급되기도 한다. 물론 사람은 손가락을 베어도 매우 아프고 배가 찢어져 창자가 튀어나와도 매우 아프다. 그 고통은 절대 수치화 되지  않으며 또한 순위를 매길 수 없으니 내 어찌 그들의 상처를 정말 아픈 이들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매도할 수 있으랴. 하지만.. 그냥 상식선으로 묻고 싶다. 손가락을 베인 상처가 그리 정말 아프냐고. 아무리 아파도 밥은 먹고 잘곳은 있지 않냐고 말이다.

 

지금까지 말한 사람들 계층을 경제학적 용어로 따지면 상위층, 중산층, 하위층으로 말해서 구분해 볼 수 있다. 상위층은 솔직히 부모를 잘 타고 났거나,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거나, 재수가 좋거나,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잘 알거나, 도덕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의 판단을 하는 정도의 사람들이다. 총체적으로 말하면 순위에서 앞에 설 환경이나 능력을 가진 이들인 것이다. 앞서서 출발하거나 잘뛰거나 중간에 새치기 잘하는 능력을 가져야 앞설 수 있다.

 

중산층은 하위층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물론 상위층에 가고 싶으나 가진 능력이 부족하여 거기에 머무른 사람들도 꽤 있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리고 마지막 하위층은 이젠 뭔가 되돌릴 기회조차 없어진 사람들을 말하는데 원래 하위층인 사람들도 있고 중산층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도 꽤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IMF이후 중산층이 몰락해오고 있어서 더욱 그 숫자가 늘었다.

 

비율로 보자면 상류층 20% , 중산층 60% , 하위층 20% 정도로 나눠볼 수 있는데,우린 실제로 이렇게 나누고 있다. 상류층 10%, 중산층 30%, 하위층 70%이다. 이것이 바로 상대적 박탈감으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이러니 중산층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위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끝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자신은 분명히 중산층이어야 하는데 왜 좋은 집과 좋은 차가 없는지, 왜 내 자녀는 저 돈많은 집 자식들이 받는다는 월에 몇백만원씩 하는 과외를 해주지 못하는지 불만이 가득하다. 물론 그래도 어느정도 먹고 살 돈은 있으니 외식이나 유흥은 어느정도 즐기긴 하다. 그래도 스트레스는 잘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쌓여 병이 되어간다.

 

여기에서 틈새를 노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는 분야가 바로 힐링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은 주말농장, 전원생활, 친교, 취미생활 등등 많은 다른 노력들을 통해서 극복하려고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힐링을 주제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며 상처를 치료한다. 그래서 이것이 참 좋은 마케팅 타겟이 된다.

 

아마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힐링의 주제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시장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경쟁과 비교가 없이지지 않는 한 영원할 주제이기도 하다. 슬프지만.. 그게 현실이다.

 

최근에 스타강사라고 불린 한 여자의 석사 논문표절 사건이 일어났다. 제법 잘나가는 기업 대상 강사였던 것 같은데 잠시 기사를 보니 매우 공격적인 강의를 했던 모양이다. 즉 앉아서 울지말고 칼을 들고 일어나 적을 죽여야 내가 산다 라고 말해주는 사람. 일명 보듬어 안아주는 힐링이 아닌 다구치고 꾸짖어 싸움꾼을 만드는 힐링법을 강의했던 모양이다.

 

이 힐링법의 특징은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사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바로 승자가 되어야 진정한 완성이니 여기에서 우는소리 하지말고 용감히 일어서서 승리를 위해 나아가라 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여겨야하는 마음의 갈등을 분연히 뿌리치고 양심이나 수단의 정당성 따위는 개나줘버려라 라고 말한다. 왜냐면 승자의 경쟁은 모두들 최선을 다해 반칙을 하는데 왜 혼자서 고리타분하게 양심이나 챙기고 있냐고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자기 합리화를 위한 매우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 어떤 이들은 이런 강의를 듣고 나면 찜찜했던 자신의 양심이 매우 깔끔히 정리됨을 경험할 수 있다.

 

내 개인적으로 가장 더럽게 여기는 힐링 장사 기법이긴 하지만 또 필요한 이들에겐 매우 좋고 특히 기업에서 직원들을 강하게 단련시키 위해서(경쟁사를 사정없이 뭉게고, 협력사를 쥐어짤 양심 없음을 키워주기 위해) 매우 좋은 강연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또한 몸값도 높았고.

 

그런데 너무 잘나갔나보다. 대충 먹고 살면 되는데 더 높을 곳을 바라보다가 대중의 눈에 거슬러버렸다. 석사 논문표절은 아마도 그녀 스스로 주장했던 수단의 정당화로 보면 매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임이 분명했을 것이다. 단지 문제는 그럴 경우라면 조용히 해야 하는데 너무 나댔다는 것이 그녀의 패착인것 같다.

 

나는 여기에서 근거도 없는 권선징악을 얘기하고 싶지 않다. 실제로 이런 사람은 승자그룹에서 보면 매우 소수이고 대부분은 큰 문제 없이 잘 산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은 정치인(정부관료 포함)보다 연예인에게 더욱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고 할까? (최근에 보면 김미화씨나 김혜수씨 같은 연예인은 석사논문에 대한 그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거기에 합당한 자신의 처신을 보인 반면, 청문회에 나온 정치인들은 매우 당당하게 그것을 용서해달라고 말한다.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으면서 말이다)

 

인간 사회는 절대로 선이 승리하는 사회가 아니다. 경쟁은 자연이 우리에게 준 환경이다. 정글의 세계는 냉혹하고 사정이 없다. 내가 죽지 않으려면 상대를 죽여야 하는 것이 바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갖은 운명인 셈이다. 그러니 우리가 경쟁사회에서 살고 또 그 경쟁을 통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비겁하고 꼼수를 부리는 이들이 승리자의 명단에 끼는 것도 모두 자연적인 결과로 받아드릴 수 있다.

 

단지 사회가 좀 더 잘 되고 사람들이 좀 덜 스트레스 받으려면 운영의 묘가 필요한데 우린 그것이 없다. 공정하고 누구나 동일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고 패자에 대한 배려가 있는 사회라면 좀 덜 힘들게 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되면 우리가 이 '힐링' 에 대한 필요를 많이 느끼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경쟁이 힐링을 부르고 또 힐링을 통해 장사를 잘 한 사람은 경쟁에서 이긴다. '부자아빠, 가난한아빠' 를 쓴 일본의 작가는 그 스스로는 진짜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책이 많이 팔렸으니. 하지만 그 책을 읽은 독자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말로 부자가 되었을까? 다시 보면 참으로 재미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