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남은 미안함
지난 주말에 우연히 이요원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나서 갑자기 그녀가 출연했던 또 다른 영화 한편이 기억에 떠올랐다. 그래서 유진이에게 물어보니 못보았다고 한다. 후다닥 검색을 해서 이 영화를 받았다.
'화려한 휴가',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했던 공수부대의 작전명의 이름을 딴 영화였다.
아마 처음 이 영화를 봤던 때가 6년 전쯤 같은데 기억이 희미하다.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그때 볼때도 참 많이 울면서 봤었고 이번에 볼때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는 그나마 간간히 울면서 봤는데 유진이는 거의 영화 보는 내내 운다. 참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왜 우냐고 물어보니 그녀가 말한다. 미안하다고. 그때 그 사람들 한테 미안하다고 한다. 얼마전 4.19의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알게된 16세 아이의 마지막 편지를 읽고도 그렇게 말했고 이 영화를 보고도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지난 수 십년의 시간이 그렇게 미안함속에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89학번이다. 89년도는 87년 6.29를 통해 국민 직선제를 얻어낸 후 첫번째 치른 선거에서 김영삼, 김대중의 분열로 인해 노태우에게 다시금 정권을 바친 후 88년도 서울 올림픽을 치루고 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분열, 올림픽을 통한 민족의 봉기, 군사 정권 연장에 따른 전국적 시위..
나는 87년도 6월 항쟁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젊은 혈기 하나만으로 데모에 참가했었으며 동네 성당에서 상영하는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찍힌 흐릿한 영상을 보기도 했다. 뭐 데모에 참가했다는 수준이 아주 미약했지만, 실제 그 당시 내가 살던 군산시내는 거의 무법화 수준이었다. 도로엔 보도블록 부서진 잔해가 사방에 널렸고 전화박스가 통채로 뜯어져서 도로 한가운데를 막아 바리케이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도심 전체가 어두워지고 사람 통행이 거의 없었다.
이 거대한 민주화의 흐름이었던 87년 6월 항쟁과 그 결과인 6.29 선언에 앞서서 일어난 중요한 두개의 사건이 있었다. 바로 박종철 열사 고문 치사사건과 직사포에 맞아 죽은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다.
이 사건은 전국적으로 매우 큰 분노를 일으켰으며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또 이때는 학생들 뿐만 아니라 직장인들까지 합류하여 전국적인 규모의 시위를 불러 일으켰다. 아마도 4.19이후 가장 큰 규모의 민주화 시위가 아니였나 싶다. 하지만 4.19가 5.16 쿠테타에 의해 짚밟혔듯 6월항쟁 역시 양김의 분열로 인해 성과 없이 끝나긴 했다. 하지만 나의 가슴엔 그 날의 시간들이 가슴 깊이 박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아무튼 이런저런 사연으로 싹튼 나의 의식은 대학생활을 할 때에도 이어졌다. 뭐 그렇다고 열혈 청년은 아니고 적어도 의식있는 청년들이 밖으로 나설때 같이 힘을 보내주는 수준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5월이 되면 대학교 교정은 최루탄으로 가득차는 날이 많았고 학교앞에는 늘 전경들이 타고온 버스가 가득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내가 군대에 갔다온 후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학생 운동이란 것 자체가 사라진 듯 대학교 교정에 전경이 진입하는 일도 없어졌고 새로 들어온 새내기들도 등록금 인상 투쟁은 해도 민주화 관련 투쟁은 관심이 없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무래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일소된 상황때문이었으리라. 그렇게 대학교와 학생운동은 점점 과거속으로 묻혀갔다.
하지만 그렇게 수십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나의 마음속엔 그때 그들이 남아 있다. 내가 비록 보지는 못했지만 4.19의거 당시 죽음을 맞이한 많은 분들, 유신철폐를 외치면서 부마민주항쟁 당시 의로운 죽음을 맞이하신 분들,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돌아가신 이름 모를 수많은 분들, 그 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10년이 넘은 시간동안 각종 시위 현장에서 또는 남산의 이름모를 공간에서 고통과 치욕의 고문속에서 죽음과 같은 시간을 보내셨어야 하는 분들..
혹은 전태일 열사처럼 노동운동 현장에서 자신을 불사르면서 노동법을 지키라고 말하고 또 그들을 위해 위장취업까지 무릅쓰면서 노동자를 계몽하고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자신의 미래를 모두 투자한 분들 역시 나의 마음 한구석에 온전히 남아 있다.
개인의 삶보다는 공동체의 미래를 그리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의로운 피로서 정의를 위해 혹은 신념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받쳐 얻으려고 했던 가치들.. 그것은 의도했던 아니면 정말로 살고자 했던 자들의 의로운 죽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미안한다. 누구의 표현처럼 나와 우리는 그분들에게 빚이 있다. 그것도 아주 커다란. 그것은 바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며 또한 비겁한 자의 운명이다.
우리는 살아남아 이렇게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속에서 살아가지만 이미 과거에 삶의 연속성이 깨진 분들은 지금 차디찬 무덤속에서 시간이 멈춘채 존재하고 있다. 삶과 죽음이 큰 차이가 아닐지는 몰라도 지금 살아 있는 나는 결국 그분들의 죽음으로 인해 지금의 세상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평생을 함께 해 온 마음의 빚이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이 바뀌길 바라고 또 내 자신이 그분들이 죽음으로 일궈낸 열매를 그냥 흥청망청 쓰고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행복하면 다라는 생각보다는 그분들로 인해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정말 소중하게 아끼고 아껴서 사용하려고 애써왔다. 물론 미약하고 또 나 혼자만의 의미란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미안해서..
나는 화려한 휴가를 보며 펑펑 울던 유진의 모습에서 그것을 느낀다. 우리가 정말 미안해하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번 2012년 대선의 결과를 보고서는 솔직히 많은 실망이 있었다. 그게 어떤 희생으로 얻어진 것인데 부동산 가격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빨갱이라는 거짓말에, 믿음직하다는 말에, 여자라는 말에, 내 동네사람이란 말에 유신의 주축이었던 세력을 다시 우리 역사의 전면에 배치시켜줬다. 역사가 30년 만큼 되돌아가버렸고 그 사이 그것을 없애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의 희생을 모두 헛되게 해버렸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도 신뢰해 마지않는 외신은 독재자의 딸이 인권 변호사를 이겼다고 기사를 썼다.
그래서 나도 내려놓을까 한다. 이제 나도 할 만큼 한것 같아서.. 나도 이제 좀 마음 좀 비우고 머리 비우고 내 행복을 위해 살아갈까 한다. 지쳤기도 했고 실제로 희망도 없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노인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고 평균수명은 계속 높아만 가는데 그분들 머리엔 '빨갱이' 세글자밖에 없다. 월 백만원 받는 비정규직 청소부 아줌마가 월 몇십억을 버는 사람들이 못살까봐 걱정하는 아주 대단한 공리주의식 사고방식을 가진 대한민국의 국민들이다.
누구와 같이 잘 살고 더불어 행복하려는 나의 작은 희망은 이제 희망으로만 남겨두고 마음속으로 침잔시키고 나는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해 살아가련다.
아듀 2012년. 아듀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