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가을하늘 아침의 사색
가을이 왔다. 요즘 일주일 넘게 하늘이 너무 파랗고 맑아서 마음 한구석에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이다. 천문에 관심을 가진 후로 맑은 하늘은 늘 별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파란 하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아침 출근길에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정말 두서없이 또는 관련없는 생각들이지만 적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써본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옳으면 다른 사람들이 틀리게 된다는 생각이다. 뭐 처음 든 생각도 아니고 또 지금 까지 써온 글 중에 몇번 언급했던 내용이기도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어느 교회 앞에 적힌 10줄에 가까운 예배 시간 목록을 본 이후였다. 특히 매일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새벽기도. 아마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많은 할머니들은 아마도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이 새벽기도회에 나갈 것이다. 무엇을 기대하고 또 무엇을 위해 기도를 하러 새벽부터 일어나 그곳을 향할지는 모두 개개인의 판단할 몫이겠지만 결국은 자신과 자신과 관련된 가족에 대한 안위 그리고 사후 자신에게 주어질 천국이라는 이름의 장미빛 미래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확신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 믿음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들은 틀린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스스로가 천국에 갈 가능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다수의 다른 사람들은 지옥에 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 분들이 믿는 예수라는 존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그런데 결국은 내가 천국으로 가기위해 타인들을 지옥을 보내고 만다. 뭐 물론 이런 생각까지 하는 분은 없겠지만 말이다.
내가 옳으면 나와 다른 생각하는 남이 틀리게 된다는 말은 천천히 곰씹어서 생각해볼만 한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믿고 싸웠던 혹은 주장해왔던 그런 것들이 과연 정말로 옳은 것일까? 나 역시 오늘도 새벽기도를 나가고 있는 그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전혀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의 , 옳음, 진실 과 같은 단어들의 진정한 실체적 의미는 무엇일까? 많은 책? 많은 사람들의 의견? 과학적 사실이나 혹은 증명된 이론? 나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인간의 삶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을까? 호불호를 정하고 내가 보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를 내리며 관계를 유지시키거나 혹은 단절시키는 행위를 하는 나는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일까?
세상일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다. 그 유명한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맛있게 먹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와 함께 "일체유심조" 라는 말로 정의가 된다. 이 말은 틀림은 없다. 세상은 원래 실체가 없다. 아니 실체가 있지만 내가 느끼는 세상은 모두 나를 통한 세상이다. 나는 나의 다섯가지의 감각기관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만약 내가 눈이 안보이고 또 귀가 안들린다면 나에게 세상은 오직 냄새와 맛과 촉각을 통해 느껴질 뿐일 것이다. 특히 여기에서 촉각마져 없어진다면.. 나는 과연 살아 있는 것이고 또 세상을 인식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의 신체기관 중 가장 발달하고 또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 바로 눈이다. 눈은 아주 높은 레벨의 주파수를 감지하여 형상화 시킬 수 있는 고감도 센서이다. 또한 매우 빠르고 정확히 물체를 인식하여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커다란 도움을 준다. 그런데 결국 우린 우리 시력에 의해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 단점이 생긴다. 만약 눈이 붉은색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인식한다면 그 사람에게 붉은 색은 타인의 붉은색과 아주 다른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우린 고작 다섯개의 감각기관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면서 그것이 절대적인 세상이라도 믿는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맡고 맛보는 이 다섯가지 감각이 우리가 느끼는 세상 전체인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인식하는 세상은 실제 세상이 아닌 나의 감각기관이 보내준 신호를 해석하는 뇌의 판단이다. 누군가에게 바퀴벌레는 혐오스러운 곤충이지만 누군가에는 맛있는 먹꺼리라고 인식되는 것이다. 그 둘 모두와 상관없이 바퀴벌레는 그냥 바퀴벌레일 뿐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의 절대성. 태양, 달, 별, 하늘, 바다, 바위, 산, 호수 와 같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존재들은 무한한 존재인 듯 싶으나 이미 그 만들어진 근원들이 많이 밝혀졌고 또한 그 예상이 크게 틀리지 않음이 과학계에서 증명되고 있다.
인식하는 세상 자체가 절대적이지 못하고 또한 내가 생각하는 사고자체가 절대적이지 못하다면 과연 나의 존재와 생각하는 나의 실체는 어디에서 그 정당성을 찾을 수 있을까? 참 어려운 질문이지만..
매일매일 의심없이 계단을 오르고 걸으며 먹고 마시고 잠을 잔다. 매일매일 보던 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또 대화를 하며 교감을 한다. 내가 행동하는 그 모든 것에는 이 땅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절대적 믿음과 내가 쓰고 읽고 또는 먹고 마시는 그 모든 일들이 실체라고 믿는 강한 확신이 있다. 이 세상은 절대 매트릭스속에서 만들어진 정교한 가상세계가 아닌 그 실체가 절대적으로 인정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다. 이 거의 모든 믿음엔 단 한점의 의구심도 없이 매일 출퇴근 하기 위해 이용하 차가 어느날 고장나 달릴 수 없게 되기 전까지는 의심없이 키를 꽂고 돌려 시동을 걸게 되는 것이다.
물론 계단을 하나 내려갈때 마다 이 계단이 사라질까 의심하는 것은 생명체로서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우린 살기 위해 많은 것들을 그냥 인정해야 한다. 내 손에 들린 총이 제대로 발사될지 의심하는 순간 사냥꾼에게 사냥감에 대한 확신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어느날 총은 고장이 나기 마련이며 그 순이 곰이 나에게 달려도는 순간이 아니기만 빌 뿐이다.
회의적인 것일까? 아니면 철학적인 것일까? 물론 그 두 단어 역시 매우 애매하고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