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정의하는 것들
어제 한동안 보지 않던 미드 '닥터 하우스' 를 봤다. 시즌 8. 듣기로는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이 미드를 본지가 몇년은 된 듯 하니.. 이제 끝날때도 되었다. 한명의 천재 의사를 소재로 한 의학드라마 인데 꽤나 재미있다.
어제 본 두 편에 우연이 다루어진 소재인지 몰라도 한편은 3년 전 남자의 중요 부위를 가격 당한 매우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남자가 그 후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줄어들면서 몇년 사이에 일종의 여성화가 진행이 된다. 물론 당사자는 모른고 지난 시간이다. 그 사이 남자는 원래 기업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주로 하던 사람인데 강조하던 것이 바로 '싸워서 이겨라. 승리만이 최선의 결과다. 지면 루저이고 낙오자이다' 라고 강연하곤 했다. 그런데 남성 호르몬의 분비량이 급격히 줄어들자 성향이 바뀌면서 '남자들이여 여자처럼 살자. 현 시대는 남자가 꼭 남자의 역할을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의무감이며 남자를 힘들게 한다' 라고 주장하는 강사로 변모한다.
이 남자는 강연 중 근육 무력증에 의해 쓰러지고 최초 진단이 바로 테스토르테론 호르몬 부족으로 인한 현상으로 판명되어 이 호르몬 주사 처방을 받는다. 물론 늘 그렇듯 첫번째 처방은 틀린 것이다. 아무튼 이 호르몬을 맞은 남자는 얼마 후 3년 전 모습으로 되돌아 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즉 더 공격적이고 더 모험적인 성향을 보인다. 그리고 그 변했던 3년 사이에 만난 부인은 이런 남자의 급격한 변화에 매우 혼란스러워 한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보길 바란다~
또 다른 한편은 수녀가 되고자 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그녀는 확신이 있어서 수녀가 되려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해 스스로 처벌을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신의 부름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병원 의사인 체이스와 관계가 깊어진다. 그러던 중 병이 찾아오고 입원을 하고 생사의 위기를 넘긴다. 그리고 심장이 거의 멈춘 가사 상태에서 그녀는 환각을 본다. 자신이 과거에 실수로 죽였던 아이가 나타나 손짓을 하는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자신에 대한 용서로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을 다시 고쳐먹고 수녀의 삶을 살기로 한다.
체이스는 그녀에게 애정을 느꼈기에 그런 그녀의 환각이 바로 가사상태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작용(이름이.. 익숙치 않아서 기억이 안난다;;)에 의한 것이라고 말해주려고 하고 그것과 관련된 연구 논문를 인쇄하여 그녀에게 가져간다. 하지만 전달 직전 그녀가 손에 묵주를 쥐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쇄물을 쓰레기통에 넣어버린다. 진실이 중요한 순간이 아니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여기까지 두편의 스토리이다.
그냥 생각해보면 나 역시 나를 정의하는 어떤 명확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신념이나 철학하고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의 성, 나이, 사는 곳, 문화적 환경, 가정 환경 이런 항목들이 어우러져 나를 정의하도록 해준다. 내가 지금과 똑 같은 상황이라도 단지 성만 여성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나에겐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사는 곳이 한국이 아니고 일본이나 미국이라고 해도 그럴 것이다. 부모님이 현재의 부모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도 또한 내가 자란곳이 지방의 소도시가 아닌 서울이라고 해도 또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정의 된다. 그런데 말이다 드라마 첫번째 것처럼 내가 느끼는 나를 정의하는 것이 실제로 내 몸안에 분비되는 호르몬의 영향이 더 크다면 과연 나는 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내가 남들에게 친절하거나 불친절하거나 혹은 세상에 불만이 많거나 없거나 별 생각없이 살거나 많은 생각을 하고 살거나 남들과 더불어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정치적인 성향이 좌측 깜빡이를 켜고 있거나 혹은 세상은 잘난데로 자기 능력대로 살아야 한다며 우측 깜빡이를 켜고 있는 것이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아온 지식과 지혜의 결과가 아닌 나의 내분비계의 호르몬 영향에 의해 내 방향성이 결정되고 그것에 따라 선별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면서 정의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이것은 마치 성적 소수자라고 일컬어지는 게이나 레즈비언 같은 동성애자나 혹은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여성적 아름다움에 더 심취되어 화장을 좋아하고 예쁜 옷을 좋아하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처럼 스스로는 아름다움을 좋아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신체 내부적으로 에스트로겐 분비가 활발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앞서 말한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가 자신의 성향이 남성적에서 여성적으로 바뀐것에 지극히 만족하면서 3년을 살아왔는데 이제와 그것이 단지 몇년 전 싸움에서 호르몬 분비기관이 망가져 발생한 연쇄효과란 것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가 말이다.
또 다른 드라마의 주제인 산소 결핍에 따른 환각을 자신에 대한 믿음의 증거로 믿고 수녀의 길을 가는 여자의 이야기에서도 이런 문제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뇌는 매우 이기적인 기관이며 또한 우리를 농락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우리에게 호르몬을 분비하여 매우 강렬한 환각을 보여줘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해준다. 이것이 소위 임사현상이며 어떤 이는 이것을 영적인 체험으로 믿기도 한다. 그렇지만 과연 정말 진실은 그것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이런 체험 후 자신의 믿는 종교에 심취해 삶 자체를 변화시키고 그것이 평생 죽는 그날까지 자신을 지탱하는 신념과 믿음이 된다면 과연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믿는 나는 상당히 명확하다. 물론 생각과 실천의 차이에 있어서 괴리가 있기에 그것으로 인해 고민하기도 하지만 나는 나를 오랜시간 단련된 인격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이것조차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내 몸을 좌지우지 하는 호르몬 성향 (이것은 유전적, 환경적 영향일 수 있다)에 의해 내가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왔다면 정말 이것은 착각도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니다.
나는 나를 확신하는데 그 확신이 바로 근거없는 호르몬 성향이라니.. 물론 완전히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다른 남자들 보다 덜 공격적이고 덜 탐욕적인 것이 내가 그렇게 살아온 삶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 몸에 분비되는 호르몬 양에 의해 정의된다면.. 우리 인간에게 과연 의지적 성향이란 것이 또한 철학이나 신념 같은 것이 존재할 수나 있을 것인가? 그냥 단순한 스스로 존재감에 대한 의지로 인해 만들어진 착각일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