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후회와 걱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아이루다 2020. 12. 3. 09:01


사람들을 붙잡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라고 물으면 아마도 꽤나 다양한 답들이 나올 것이다. 돈이라는 사람도 있고, 가족, 관계, 취미, 직업, 경험 등등 각자마다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답을 할 것 같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그런 답들이 행복의 필수 조건인 것은 맞다그런데 그런 조건들 말고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후회와 걱정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다.

 

후회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되돌아 봄으로써 생겨나는 나쁜 감정이다. 걱정은 미래에 일어날 일이 부정적일 것이라고 미리 예측함으로써 생겨나는 나쁜 감정이다.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를 바라 봄으로써 생겨나는 감정들이다.

 

그러다 보니 행복에 관한 조언 중에서 가장 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현재를 살아라' 가 된다. 이 말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이미 지나가서 고정되어 버린 과거를 후회하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아서 어떻게 될지 모를 미래를 걱정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몰입하라는 뜻이다.

 

후회와 걱정은 그 몰입을 방해하는데 일등 공신이다. 그래서 만약에 후회나 걱정만 없어도 삶은 그냥 저절로 행복해지게 되어 있다.

 

물론 현재에도 문제는 끝없이 일어난다. 돈이 부족하기도 하고, 건강이 나빠지기도 한다. 뭔가 하려는 것이 제대로 안 될 때도 많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 순간에 일어나고 만다. 그럼에도 우리는 뭔가가 나빠지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그것을 통해 후회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후회의 경험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걱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평소에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고 다니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단 한번도 집에 도둑이 들어오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그런 생활 습관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는다. 평소에 가스밸브를 잘 잠그지 않는 사람도 그것으로 인해 화재가 나기 전까지는 그런 생활 습관에 대해서 후회를 하지 않는다. 평소에 택배를 문 앞으로 해서 받던 사람은 그 택배가 분실이 되기 전까지는 후회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둑이 들거나, 화재가 나건, 택배를 분실하면 후회가 일어난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단 한번이라도 사고가 나면 이후로는 매번 문단속을 잘하고 나왔는지, 가스밸브를 제대로 잠갔는지, 또 택배를 잃어 버릴지를 계속 걱정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과거에 대한 후회는 반드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후회의 가장 큰 문제는 후회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후회라는 감정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에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데, 미래에 또 후회를 할까 봐 미리 겁을 먹는다. 그 겁이 바로 걱정의 정체이다. 그래서 결국 문단속을 하는 일에, 가스밸브에, 택배가 제대로 도착하는 것에 집착을 하게 된다.

 

하지만 늘 신경 쓸 수 없기 때문에 문득문득 문단속을 재대로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으면 불안하고, 가스밸브를 제대로 잠갔는지 걱정되고, 혹시 택배를 또 잃어 버릴까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런 일들은 이 세 가지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종류의 일들을 통해서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니 삶이 행복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니 그저 그런 후회의 경험을 최소화 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그래야 걱정도 생겨나질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 그런 후회의 경험이 실제적으로 일어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후회를 듣게 되면 동일한 상황에 놓인다는 점이다. 내 친구가 문단속을 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에 대해 듣게 되면 그때부터는 나도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후회를 듣게 되면 바로 내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아무리 운이 좋아도 후회를 하지 않고 살 방법은 없다. 혼자서도 하고, 남들에게 들어서도 하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방법이 없는 것일까?

 

다행히 있다. 그것도 확실한 방법이 몇 가지가 있다. 그저 그것을 하기가 힘들다는 점만이 문제다.

 

후회를 안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 것이다. 언제나 문단속을 신경 쓰고, 언제나 가스밸브를 신경 쓰며, 언제나 택배를 직접 받는 방법을 쓰면 된다. 하지만 당연히 쉽지가 않다. 사람은 자주 깜빡깜빡하고 늘 집에만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능하면 최선을 다함으로써 스스로 '나는 더 이상 못해' 라는 수준으로 살면 후회할 일이 없다. 설령 의도한 것들이 제대로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문제는 이런 삶을 살게 되면 최선을 다하는 일이 몰입이나 집중이라는 좋은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집착이나 중독과 같은 나쁜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방법은 아예 마음가짐을 달리하는 것이다.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든지 간에 상관없이 그냥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이나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냥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집착이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후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다.

 

하지만 그런 단계에 오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랜 시간 스스로에 대한 공부를 통해서 그런 위치로 올라간 분들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만약 그래 보이거나,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평소에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특정한 조건이 맞아서 그렇기 때문이다.

 

좁은 길에 차를 몰고 가다가 반대편에서 오는 차를 만나게 되면 상황에 따라 후진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 그런데 누가 후진을 할 것인가? 느낌을 보니 상대가 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내가 후진을 한다. 그렇게 상대 차를 보내고 나서 나중에 후진을 하다가 차를 긁어 먹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어떤 후회들이 일어날까? 왜 나는 버티지 못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운전에 서투를까? 나는 왜 후진을 할 때 좀 더 신경을 쓰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들이 일어난다. 여기에 왜 차를 몰고 나갔을까? 왜 차를 몰고 나오라고 했을까? 와 같은 것들도 더해진다. 결국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기가 힘들다. 사실 그런 일들은 그냥 그저 운이 없었던 것뿐이다. 그러니 후회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후회를 한다고 해서 차를 수리해야 하는 일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그냥 받아들이고 차 수리나 잘하도록 하는 편이 훨씬 낫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은 그저 원래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후회로부터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엔 아주 큰 잘못된 가정이 숨겨져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은 딱히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라고 했을 때 그 일이 자신의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이라고 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 일이 차가 긁히는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팔다리 하나쯤이 잘려나가는 일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돈이 충분히 많다면 차가 긁히는 사소한 손해를 입는 것에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설령 고가의 제품을 잘못 선택했더라면 그냥 버리면 끝이다. 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작은 사소한 것 하나가 매우 크다. 그래서 오죽하면 소비에 실패할 자유를 가지고 싶다는 말이 나왔을까?

 

실패의 자유는 처음부터 돈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잘못 골랐을 때 감당해야 할 고통이 크다면 절대로 후회나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특정한 조건을 잘 갖춰서 그렇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마치 정말로 자신이 후회로부터 자유롭다고 믿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을 타인에게 그럴 듯 하게 말한다.

 

그저 조건부일 뿐이다. 정말로 조건 없이 지나간 일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고 지금을 살아가는 일은 정말로 힘든 일이다.  그래서 돈도 많이 없고 평범한 우리들에게는 이제 세 번째 방법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게으르고, 부주의하고, 어리석고, 한심해 보이는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며 집에서 떠나지 말라고 절규하는 장면 - 인터스텔라>

 

골목길에서 다른 차와 마주했을 때 나는 상대처럼 버틸 성격이 못 됐던 것이다. 차에서 내려서 삿대질을 하면서 싸울 성향이 아닌 것이다. 그럴 바에는 그냥 조용히 뒤로 물러서는 성격인 것이다. 겁쟁일 수도 있고, 따질 것도 제대로 따지지 못하는 못난이 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그러니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았을 것이다. 물론 차가 긁힌 것을 알았다면 그 순간 화가 나서 싸웠을 수도 없었지만, 나는 차가 긁히는 것조차 감지 하지 못한 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과거에 내가 한 일들은 내 기준에서는 최선이었다. 잘난 남의 기준에서 봤을 때나 게으른 것이고, 무능력한 것이고, 어리석은 것이지, 내 기준에서는 정말로 최고의 선택을 한 것이었다. 단지 나는 그 정도의 선택을 할 수준의 사람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방법이다. 물론 속은 쓰리다. 기분도 많이 나쁘다. 하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이렇게 태어난 것을.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는 일이 다 개판인 것은 아니다. 분명히 잘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지금껏 목숨 부지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살아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최고의 결과다. 그러니 그냥 대충 공평하다.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조금만 늦게 나와도 난리를 치며 식당 전체를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실수로 주문이 빠져서 재확인을 해야 비로소 음식이 준비되기 시작해도 큰소리를 못 내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둘 모두를 다 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성향들은 그저 타고난 성격이기 때문에 내가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런 성향을 스스로 비난해봐야 나아질 것은 하나도 없다. 설령 억지로 화내고 따져봐야 나중에 또 후회를 한다.

 

화도 낼 수 있는 사람들이나 내는 것이다. 살인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 하지 못할 일을 실수로 해서 하면 그 뒤로 밤에 잠을 못잔다. 그래서 더 불행해지고 만다.

 

후회는 과거의 선택을 현재의 나로 판단하는 행위이다. 과거보다 경험이 쌓였고, 과거와 달리 결과를 알고 있는 내가 과거에 경험이 부족하고 미래도 알 수 없는 나를 꾸짖는 행위이다.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내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은 마치 부모가 자식을 못생겼거나, 공부를 못하거나, 운동을 못하는다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과 같다. 만약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다면 우리는 어떤 기분이  들까? 그런 이유로 나를 싫어한다면 그것으로 인해 어떤 상처를 받게 될까?

 

사실 나는 많이 못 났을수도 있다. 많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런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바로 나 밖에 없다. 마치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사랑해주는 부모님들처럼 말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부모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따뜻하게 바라봐 줘야 한다. 그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며 유일한 길이다.

 

이제 정리 좀 해보자.

 

후회하지 않고 살고 싶으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타고난 성격이다. 지금부터 내가 최선을 다해 살고자 한다고 해도 될 턱이 없다.

 

마음을 비우고 현재를 사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저 특정 조건이 되면 그렇게 사는 척 하면서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어떤 일이 그 조건을 넘어가는 순간 그 즉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그러니 혹시나 그럴 수 있다고 믿고 있다면 우선 착각에서 빠져 나오자.

 

그나마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이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다. 내가 가진 능력, 내가 가진 성향, 내가 가진 그 모든 것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내 수준에서는 당연히 일어난 일이다.

 

이것을 자기 비하나 자괴감이나 열등감 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나는 그저 우연히 이렇게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엔 어떤 문제도 없다. 단지 운 나쁘게 내가 타고난 항목들이 요즘 시대에 잘 맞지 않는 것뿐이다.

 

중국의 삼국시대에 태어났으면 관우처럼 삼국지에 그 이름을 남길 장군일 수 있었지만 지금 시대에 태어난 것이 문제다. 마이클 조던도 200년 전에 태어났으면 그저 노예로 그 삶이 끝났을 것이다. 방탄 소년단도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광대놀이패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이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나를 좀 더 잘난 존재로 여기고 과거를 끝없이 후회하며 살든가 아니면 나를 인정하는 씁쓸함을 감당해야 하지만 덜 후회를 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서 살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몸부림이란 생각만큼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