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유머 이야기

아이루다 2020. 8. 19. 08:29

 

사람을 재미있고 즐겁게 해주는 것들은 많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행복해진다. 그러니 사람들이 매일 가능하면 최대한 재미있고 즐거운 것을 경험하고 싶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보통 재미있고 즐거운 것들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 여행을 가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놀이공원에 가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골프나 탁구를 치는 것도 돈이 든다.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행복들은 돈과 교환을 해야만 가능해진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돈은 한정적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재미와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것을 해야 그럴 수 있을까? 생각보다 그런 것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다행히도 너무도 좋은 것이 하나가 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 즐기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농담, 유머, 코미디, 개그 등등으로 불리는 것이다. 딱히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재미있고 즐거운 것들이다. 물론 의도한다고 해서 다 그런 재미있고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센스 있게 한 한 마디 말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을 크게 웃게 만들어 준다.

 

말을 하는 것은 거의 돈이 들지 않기 때문에 이것들은 돈 안들이고 행복해지는 방법 중에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조건은 있다. 자기 자신이 재미있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거나 혹은 그런 친구를 알고 지내야 한다는 점이다. 다행인 점은 이 세상 사람들 중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재치 있는 농담과 나름대로 괜찮은 개그 코드를 가지고 있는 편이며, 여러 명 중에서 단 한 명만 그런 사람이 있어도 전체가 즐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정말로 가격이나 조건대비 효율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남을 재미있게 해줄 수 있는 성격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적 요소 중 하나가 된다.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연락이 오게 되는 이유가 된다. 반대로 재미가 없고 지루한 사람은 점점 잊혀지게 된다.

 

이쯤에서 뻔하지만 한 가지 의문을 품어보자. 우리 인간은 왜 유머나 농담을 즐기고 개그 프로그램 등을 보면서 재미있다고 느끼게 될까? 도대체 이런 것들이 왜 재미있고 즐거운 것일까?

 

상대방 허를 찔러서 살짝 당황하게 만드는 상황, 비슷한 발음을 연결해서 상대방의 말을 엉뚱하게 해석하게 만드는 상황, 발음을 잘못해서 평소 입에 담지 않는 단어를 언급하게 된 상황, 오타를 쳐서 엉뚱한 단어가 되는 상황, 상대방의 감정을 실제로 느끼는 감정보다 좀 더 강하게 해석해서 상대방을 당황시키는 상황, 자신에 대한 자학을 해서 웃기는 상황 등등 수 많은 재미있는 상황들이 있다.

 

말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아침에 출근길에 누군가 턱에 걸려 넘어질뻔한 후 챙피해 하면서 재빨리 사라지는 광경을 보았을 때, 벌레에 물려서 얼굴 어딘가가 퉁퉁 부었을 때, 머리를 잘못 잘라서 좀 이상해 보일 때 등등 외모나 행동으로 인해서 웃기는 경우도 많다.

 

도대체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왜 같은 말이라도 하나는 지루하고 하나는 재미있으며, 같은 행동이라도 하나는 뻔하고 하나는 흥미로울까?

 

예전에 가족 모임에서 윷놀이를 한 적이 있었다. 가족 전체가 하는 놀이가 끝나고 난 후 여흥이 남은 어린 조카 애들 세 명은 각자 편을 먹고 한 판을 더 했다. 그런데 그때 가장 나이가 어린 조카 아이가(초등학생) 꼴등을 하자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봐줄 리 없는 조카 애들 두 명은 막내를 더 놀렸고, 옆에 있던 어른들은 그 아이를 별 일 아니라고 달래줬다.

 

하지만 결국 꼴등을 하게 된 조카 아이는 세상이 무너진 듯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억울하고, 서럽고, 분하고, 약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런 조카의 모습과 상관없이 그 방에 있던 모든 사람이 엄청나게 웃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빵 터진 상황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 나를 포함한 가족들은 왜 웃었을까? 조카 아이는 분명히 서럽게 울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세상 떠나갈 듯 웃게 되었을까?

 

여기에 유머나 개그에 관한 심각한 비밀 하나가 숨겨져 있다. 이것이 심각한 비밀인 이유는, 우리가 믿는 것과 달리 유머나 개그 같은 것들이 재미있는 이유가 우리가 평소에 믿는 것처럼 순수하지도 그리고 긍정적인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우는 아이와 달리 웃고 있는 사람들이 웃겼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승부 자체의 무가치성 때문이었다. 윷놀이에서 이고 지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졌다고 해서 그리 서럽게 우는 것인지,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가 가질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아이의 모습에서 웃음이 난 것이다. 조금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바보의 모습인 것이다. 전혀 중요하지 않는 일에 집착하는 모습은 어리석음의 표본이다. 물론 아이를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감정은 아니다. 그저 살짝 낮게 내려다 보는 것이다.

 

사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즐거운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점이다. 아이들은 세상에 대해 잘 모르기에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서툴고, 그래서 어른들 눈에는 별 것도 아닌 것으로 크게 감정적으로 반응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동물들과 함께 있어도 재미있는 이유도 비슷하다. 개나 고양이도 보고 있으면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좋아하고 싫어하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재미가 있다.

 

우리는 아이나 동물들과 같은 서투른 존재들이 보여주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중요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바로 우월감이다. 대놓고 내가 많이 잘났다고 생각해서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어리석은 너의 모습을 보면서 순간적으로나마 내가 살짝 잘난 듯 느껴지기에 느끼는 수준의 감정이다. 그럼에도 우월감은 우월감이다.

 

심각하지 않은 누군가의 불행을 보고 느끼는 상대적 만족감, 이것이 유머와 개그의 본질이다. 그러다 보니 심각해지면 금세 그 감정을 사라져버리고 만다. 누군가 벌에 쏘였는데 퉁퉁 부어 있는 모습은 웃기지만, 그로 인해서 생명이 위독하다 싶으면 걱정이 앞서기에 우월감은 금세 자취를 감추고 만다.

 

하지만 심각하지만 않다면, 누군가가 곤란해하는 모습, 누군가가 화는 나지만 화를 낼 수는 없는 모습, 누군가가 잘난 척 하다가 한방 맞는 모습, 누군가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다가 구박을 받는 모습 등을 보면서 착각이긴 해도 순간적으로나마 상대적 우월감을 느낀다. 혹은 상대적으로 상태가 좋은 자신에 대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심리는 이미 그것이 연기라는 것을 아는 개그나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발생하게 된다. 뻔히 연기를 하고 있지만 우리들 감정은 춤을 춘다.

 

결국 농담, 유머, 코미디, 개그와 같은 것들을 정의해야 한다면, 그것은 누군가 약간 곤란한 상황에 놓이지만 그리 심각하지 않는 상태에 있는 모습을 보고 상대적으로 자신의 우월한 상태에 있음을 느끼면서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리 순수한 것도 아니고, 그리 인간적인 것도 아니며, 그리 긍정적인 감정도 아니다. 단지 그 정도가 매우 약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아닐 뿐이다.

 

그래서 어떤 유머들은 경계가 매우 애매하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뭔가 좀 불편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재미있게 웃지만 놀림감이 된 당사자는 대놓고 따질 수는 없지만 기분이 나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재미있던 상황에서 갑자기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모든 유머나 개그엔 기본적으로 당하는 존재가 필요하다. 순간적으로나마 설령 가짜라도 어리석은 사람이 되거나 곤란한 지경에 놓이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들이 어리석으면 상대적으로 우월감을, 곤란한 지경에 놓이면 상대적으로 안도감을 느끼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그런 당사자가 그것을 즐기면 최고의 상황이 놓인다. 반대로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면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놀림을 잘 당하면서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냥 웃으며 가만히 있으면 재미가 없다. 당하기에 억울한 티를 확실히 내면서도 화는 내지 않는 수준의 반응이 좋다.

 

가벼운 분노, 이것이 바로 당하는 사람이 취해야 할 가장 좋은 자세이다.

 

당하고도 늘 실없이 웃거나, 당한다 싶으면 어떻게든 보복을 하려는 유형은 재미를 떨어뜨리면서 분위기를 망치는 주범이 되고 만다. 그야말로 재미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머나 개그엔 호흡이 잘 맞는 쌍이 필요하다. 한쪽은 계속 약을 올리고, 한쪽은 그것에 억울해 하면서 반박을 하지만 결코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는, 그런 환상 조합은 전체를 즐겁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조합을 이루는 일이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 사이엔 분명히 '유머 코드' 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래서 코드가 잘 맞지 않으면 재미있기가 쉽지가 않다.

 

기본적으로 사람들 사이에서는 재미있는 사람이 인기가 많다. 그리고 재미가 있는 사람은 주로 유머 감각이 풍부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을 잘 놀리거나, 잘 놀림을 당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이 둘은 쌍으로 필요하지만 둘 중에서는 잘 놀리는 것이 더 어렵다.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아야 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여자들이 남자들을 판단할 때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유머 능력이다. 재미도 있지만 그 능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상대방의 지적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어서 그렇다. 더군다나 유머 능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사람들 사이에서 적응을 잘하기에 성공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니 유머 능력은 정말로 중요한 판단 기준점이 된다.

 

반면에 잘 놀림을 당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매우 쉽다. 머리가 좋은 것과는 상관이 없다. 그래서 잘 놀리는 능력을 타고 나지 못했다면 잘 놀림을 당하기만 해도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 세상에 잘 놀림을 당하는 사람이 그리 많이 않다. 왜 그럴까?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것이 싫어서 그런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여기에서도 결국 유머나 개그의 본질이 우월감이란 증거가 나온다. 사람들은 잘 놀림을 당하는 사람을 실제로도 약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농담과 유머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현실에서도 적용이 되고 만다. 개그나 코미디를 직업으로 삼고 사는 분들이 평소 당하는 일이다.

 

농담이나 유머를 통해 얻은 우월감을 여전히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본능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그래서 결국 많은 사람들이 놀림을 당하는 일을 그만 두려고 한다. 한번 놀림을 당하기 시작하면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할 뿐 결코 멈추지 않는다. 결국엔 크게 화를 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때 그만 둔다. 이런 식으로 잘 놀림을 당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간다.

 

결국 이 세상엔 잘 놀리는 사람보다 잘 놀림을 당하는 사람이 훨씬 더 귀하게 되고 만다. 그로 인해서 잘놀리는 사람도 자신과 잘 맞는 유머 코드를 지닌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유머 코드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정해지게 되는 것일까?

 

사람을 웃기는 개그나 코미디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행동으로 하는 것이 있고 다른 하나는 말로 하는 것이 있다. 행동으로 하는 것은 주로 슬랩스틱 코미디라고 부른다. 그리고 말로 하는 것들은 주로 말장난이나 상황 설정에 의해서 이뤄진다. 과장된 몸짓이거나 과장된 상황설정에 따른 말투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에 따라서 선호하는 분야가 따로 있다. 일단 말장난을 좋아하지만 슬랩스틱 코미디는 재미는 있지만 좀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말장난을 하는 것은 별로이고 주로 몸으로 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둘 모두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차이점에서 유머 코드가 정해진다.

 

슬랩스틱 코미디와 말장난 개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얼마나 확실하게 어리석음을 보여주느냐, 얼마나 명확하게 곤란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느냐에 따라 구분이 된다.

 

우리 인간은 말보다는 행동에 의해서 훨씬 더 강하게 자극이 되는데, 그로 인해서 행동으로 보여주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말로 하는 개그보다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지게 된다.

 

앞에서 언급을 했다시피 유머의 조건엔 '가벼운 곤란함' 이란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거워지는 순간 그때부터는 유머가 아닌 현실적 문제가 되기에 그렇다.

 

그런데 자극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것은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한쪽 다리가 없는 사람이 자신이 한쪽 다리만 있다는 것을 소재로 농담을 했을 때 가볍게 자극이 되면 단순하게 재미가 있지만 강하게 자극이 되면 재미있으면서도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의 유머 코드는 같은 상황에서 얼마나 더 강하게 자극되느냐 여부로 인해서 정해지게 된다. , 둔한 사람일수록 강한 자극이 좋고 그래서 말장난 보다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더 재미있다고 느끼게 되고, 반대로 예민한 사람일수록 자극이 적은 말장난을 통해 훨씬 더 큰 재미를 느끼게 된다.

 

다르게 표현하면, 슬랩스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적을 우월감을 덜 느끼는 사람이며,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감정적으로 둔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강한 자극을 통해서 상대방과 자신간의 차이가 느껴질 때 비로소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대신 이들은 열등감도 작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유머 코드가 다르기에 남들이 다 웃을 때 덜 웃거나, 남들을 별로 안 웃는데 혼자 크게 웃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웃을 일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엔 행동으로 웃기는 경우보다는 말로 웃기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말장난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우월감을 쉽게 느끼는 사람이며,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이 된다. 감정 센서가 보통이거나 혹은 매우 민감해서 조금만 심해져도 재미나 즐거움보다 다른 나쁜 감정들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 심한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 등에도 과하게 몰입이 되어서 주인공이 조금만 힘든 일을 겪어도 그것을 참지 못하고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만약 스킵을 할 수 있으면 스킵을 해서 보곤 한다.

 

대신 열등감도 많이 느낄 수 밖에 없다. 자주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에 삶이 좀 괴롭기도 하다. 그럼에도 쉽게 웃고, 쉽게 즐거워하며, 쉽게 행복해질 수 있기에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좋다. 사람들을 기본적으로 밝은 사람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잘 웃는 것과 유머 능력이 있는 것은 서로 다르다. 열등감이 없어서 질투심을 잘 안 느끼는 사람은 착하고 잘 웃는다. 하지만 언제나 웃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 관객으로는 훌륭하지만 배우가 되지는 못한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사람은 잘 웃기면서도 잘 웃는 사람이다. 결국 열등감을 가졌지만 그것을 잘 소화해 낸 사람이 가장 유리하다는 뜻이다. 오히려 열등감이 너무 없으면 우월감을 잘 느끼기 못하기에 착하고 잘 웃긴 하지만 참 재미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감정이 둔한 것이다.

 

각자가 가진 감정 민감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에 존재하는 두려움의 크기로 결정이 된다.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조금 더 민감한 사람이 되는데, 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해서 세상 경험이 부족하기에 상대적으로 훨씬 더 두려움이 크다. 그래서 아이들은 매우 감정적으로 굴고, 쉽게 행복해지고 쉽게 불행해진다. 또한 드라마나 영화 등에 엄청나게 몰입을 할 수도 있다.

 

같은 어른들 중에서는 살아온 환경에 따라서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여자가 남자에 비해서 두려움이 크고, 그래서 훨씬 더 감정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훨씬 더 잘 웃고 훨씬 더 재미도 있다. 또한 아이들과 비슷하게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몰입도 훨씬 더 잘 한다.

 

하지만 그러게 단순하게 볼 문제만은 아니다. 감정 민감성에는 분명히 두 가지 영역이 존재하기 그렇다. 하나는 센서 그 자체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들어온 신호를 해석하는 능력이다.

 

기본적으로 센서가 민감해도 해석을 못하면 둔하게 보이고, 센서가 둔하면 아무리 해석을 잘해도 둔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 두 유형은 모두 둔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다.

 

아이들은 대부분 센서가 민감하지만 경험부족으로 인해서 해석 능력이 딸린다. 그래서 분명히 두려움이 커서 감정 민감성이 높아 슬랩스틱 코미디 보다 말장난을 더 좋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반대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당연한 일이다. 말장난 자체를 잘 이해하기도 힘들기에 딱히 재미를 느끼기도 힘들다.

 

하지만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게 되면 어느 순간 폭발하면서 갑자기 변하게 된다. 대부분 사춘기 시절에 뒤집어 진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그 동안 잘 느끼지 못했던 수 많은 열등감과 우월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말장난을 더 선호하는 쪽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어른이 된다.

 

반대로 사춘기를 거의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열등감과 우월감을 덜 느끼며 살게 되지만, 유머 코드가 다른 사람들과 잘 맞지 않는 문제를 평생 동안 간직한 채 살아가야 한다. 성격은 좋지만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한결같고, 성실하며, 착하지만 재미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유머나 개그는 우리가 믿는 것만큼 순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본질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된다. 남의 불행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마음이기에 결코 그것이 선한 것이거나 좋은 의도가 아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감정을 덜 느끼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사람은 좋지만 재미없는 사람' 이 되고 만다.

 

이것이 가진 의미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 사람의 존재적 이해가 한층 깊어질 수 있다. 운이 좋다면 말이다.

 

 

 

'인간과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유로움의 세 단계  (0) 2020.09.26
노자  (0) 2020.06.26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  (0) 2020.04.13
자유의지와 도덕  (0) 2020.03.25
존재의 근원, 두려움  (2) 2019.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