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

아이루다 2020. 4. 13. 08:29

 

 

 

한 남자가 있다외모도 괜찮은 편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회사에서 일도 잘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평가를 받을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평판도 좋다. 그런데 이 남자에게는 한 가지 비밀스러운 취미가 있다. 그것은 바로 깨끗하게 씻은 생닭을 이용해서 자위를 하는 것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 사실은 오직 본인만이 안다.

 

이 남자에 대한 느낌은 어떨까어떤 사람은 변태라고 느낄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개인적 취향이라고 너그럽게 넘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평생 모른다면 결혼을 해서 사는 것도 아주 이상한 것 같지는 않다.

 

또 다른 남자가 있다. 이 사람도 앞에 말한 사람과 똑같은 조건이다. 그리고 이 남자 역시도 은밀한 취미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좀 더 심하다. 그것은 바로 여자들 치마 속 사진을 찍는 취미이기에 그렇다. 사실 취미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고, 누가 봐도 변태적 행위이며 실제로 범죄이다. 물론 이 남자도 당연히 아무도 몰래 혼자서 한다. 그리고 찍은 사진을 절대로 유포하지 않고 오직 혼자만 본다.

 

이 남자에 대한 느낌은 어떨까? 앞의 경우와는 달리 아마도 이 사람의 특이한 성향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자분들이 이런 남자와 결혼을 하는 것은 끔찍하게 여길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둘 모두 평생 들키지 않았다고 가정하고 또한 이 두 사람이 각자 즐기는 취미로 인해서 누군가가 명시적으로 피해를 입지도 않았다면(몰카는 당연히 피해자가 있겠지만, 평생 자신이 몰카에 찍힌 것을 모르고 살았다면 실제적인 피해는 없었다는 가정하에) 왜 이 두 사람은 다르게 느껴질까?

 

그냥 쉽게 생각하면 단순히 그냥 변태이냐 범죄인 변태이냐의 차이로 구분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몰카를 찍는 것이 범죄가 된 이유는,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몹시 끔찍한 경험이 되기에 범죄가 된 것이다. , 행위 그 자체가 범죄가 아니라 그 행위가 남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기에 범죄로 규정된 것이다.

 

그래서 만약 닭을 이용해 자위를 하는 것이 매우 끔찍한 일이었다면 그것도 범죄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범죄이냐의 여부로 인해서 이 둘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제대로 된 판단은 아니다.

 

그래도 분명히 차이는 있어 보인다. 왜 이 두 남자의 행동은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그 차이점을 알아내기 위해서 먼저 이 두 남자가 왜 그런 행동들을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스스로 변태이고 싶어서 그럴까? 아니다. 오히려 그런 취향을 가진 자신에 대한 모멸감으로 괴로워할 수도 있다그러니 그 답은 하나다. 그런 행동을 할 때 자신에 대한 모멸감을 넘어설 만큼 강한 쾌감을 얻을 수 있기에 그렇다. ,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니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사실 사람을 죽이는 연쇄 살인마도 살인을 할 때 행복하기에 한다.

 

사람의 행동의 모든 원인은 하나뿐이다. 바로 '행복'이다. 누군가 강압적으로 시켜서 했더라도 결국 그것도 더 심각한 불행보다 덜한 불행을 선택한 것뿐이다. , 더 불행한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행복한 일이다.

 

자살조차도 사는 불행에 비해서 죽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 들어서 한다. 그러니 인간의 행동 중에서 행복이 아닌 것은 없다. 남을 돕는 것도 결국 본인이 행복해서 하니까 말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모든 행동의 본질이 행복이지만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은 정말로 다양하다. 누군가는 도둑질을 할 때, 누군가는 도박을 할 때, 누군가는 남을 도울 때, 누군가는 돈을 벌 때, 누군가는 인정을 받을 때, 누군가는 출세를 할 때, 누군가는 이길 때, 누군가는 친구를 만날 때, 누군가는 섹스를 할 때, 누군가는 밥을 먹을 때, 누군가는 여행을 할 때, 누군가는 자전거를 탈 때, 누군가는 쇼핑을 할 때 행복하다.

 

이런 행복의 종류는 너무도 다양해서 다 열거하려면 책 한 권이 넘게 나올 것이다. 시대에 따라서, 문화권에 따라서, 소속된 국가에 따라서, 집안 내력에 따라서, 유전자에 따라서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이 특별히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한 그것을 평생 추구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앞에 두 남자 역시 평생 들키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보면 단순하게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두 사람에 대해서 그 변태성 여부와 행위 자체에 대한 기분 나쁨의 강도를 제외하고 나면 실제로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이 동일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럴까?

 

별 것 아닌 질문이지만 사실 이 질문의 답에는 행복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진실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바로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가? 강렬한가?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 남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가? 이득인가? 등이 아니라 그저 '그것이 얼마나 안정적인가' 여부라는 점이다. 어떤 것을 통해서 행복한가?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자주 경험이 가능한가? 얼마나 공공의 이득에 부합 한가? 등도 나름 중요하긴 하지만 모두 본질이 될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몰카는 찍는 것은 생닭으로 자위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기에 하면 안 되는 것이다운 나쁘게 걸렸을 경우 생닭은 좀 기분 나쁘고 변태 같은 취미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이지만 몰카는 범죄이며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 있는 행위이기에 그렇다.

 

이것을 좀 더 확장해서 보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서 판단을 할 때 늘 '안정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쾌감 강도를 순위로 매긴 자료에 의하면 (신빙성 있는 자료는 아니다) 최상위권에 마약/도박/섹스가 위치에 있다. 그리고 그 외에 좋아하는 이성과 교제에 성공하는 순간, 여행, 위대한 발견에 대한 성취감 등이 있다. 객관적으로 증명된 자료는 아니지만 보면 나름대로 그럴싸하다.

 

 

아무튼 이 자료를 보면 행복 그 자체로만 보면 마약/도박이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마약과 도박은 범죄이기도 하고 매우 터부시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만약에 아는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마약을 하거나 도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 좀 더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분명히 행복 그 자체로는 최고인데도 왜 사람들은 그것을 기피하려고 할까?

 

안정적이지 못하니까 그렇다. 분명히 행복 강도 그 자체는 대단히 높지만 마약과 도박은 매우 불안한 행복이다. 마약과 도박은 몸을 망치고 정신을 망치고 결국엔 삶을 망친다.

 

그것에 반해서 하위권에 위치한 운동/독서와 같은 것들은 강도는 약해도 훨씬 더 안정적이다. 마약이나 도박과 다르게 오히려 하면 할수록 더욱 도움이 된다. 그러니 안정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혼자 사는 것보다 결혼을 해서 사는 것이 더 안정적이라고 믿기게 그렇다. 아이를 낳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이 없이 사는 것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좀 더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은 것도, 권력을 가지는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도 모두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어지는 것들이다.

 

그것들이 특별이 어떤 의미가 있거나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다. 인간이라면 해야 할 일들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저 안정적인 것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안정적이라서 그것들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가치가 있거나 의미가 있으니 해야 한다고 한다. 결혼, 아이, 성공, 권력, 명예, 공헌, 봉사 등이 각자마다 어떤 가치가 있어서 하는 것이지 단순히 안정적이라서 하는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을 일명 '행복관' 이라고 할 수도 있고 좀 더 범용적으로 표현하면 '가치관' 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사람들마다 무척 크게 차이가 난다. 그래서 누군가는 돈, 누군가는 여행, 누군가는 출세, 누군가는 어울림, 누군가는 성공, 누군가는 업적, 누군가는 평범함, 누군가는 가족 등등 수 많은 종류로 나뉜다.

 

그런데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들 한가지 이상한 행동들을 하기에 그렇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누리고 있는 행복에 대해서 타인에게 광고를 하는 짓이다. 돈을 벌길 권하고, 여행을 하라고 권하고, 출세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고 하고, 성공해야 한다고 하고, 업적을 이뤄야 한다고 하고,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고, 남을 도와야 한다고 하고, 사회에 공헌을 해야 한다고 하고, 가족을 이뤄야 한다고 하고, 심지어 포기하고 사는 것이 좋다고도 한다.

 

매일 우리 사회에서 메아리 치는 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에 대한 자랑, 권유, 강요, 제안, 조언 등이 이뤄지고 있다. 그것은 말이나 글로 직접적으로도, 사는 모습이나 행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뤄진다. 매일 보는 TV 속에서, 영화 속에서, 책 속에서, 지인들의 대화 속에서 매 순간 쉬지 않고 전달되어 오고 있다심지어 그렇지 않아 보이는, 너무 돈만 밝히지 말아라, 너무 사람들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아라, 너를 소중히 여겨라, 이런 말들 조차도 일종의 부드러운 조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조언과 권유 그리고 강요 뒤에는 바로 자신만의 고유한 '행복 안정성'에 대한 신뢰가 숨겨져 있다. , 돈이 많은 것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믿는 사람은 돈을, 경험이 많은 것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믿는 사람은 여행을, 높은 사회적 지위가 가장 안정적이라고 믿는 사람을 출세를, 지식이 많은 것을 가장 안정적이라고 믿는 사람은 책을 추천한다.

 

하지만 안정적이라고 믿기에 그런 것들을 추천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각자마다 자신이 믿고 있는 행복 방법론이 삶을 가치 있게 해준다고 믿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들이 각자 머리 속에서 어떻게 가치화되었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그리고 실제로 그것들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그저 안정성 여부 기준점 하나만으로 구분될 뿐이다.

 

, 마약과 독서는 전혀 다른 점이 없다. 단지 마약은 돈이 많이 들고 몸이 망가지며 결국 정신이 망가지는 매우 위험한 행복이고, 독서는 도서관에 가면 공짜로 책을 읽을 수 있으니 돈도 안 들고 정신도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책도 너무 많이 읽으면 건강이 상한다. 그래도 독서는 마약에 비해서 훨씬 더 안정적이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이다. 독서가 마약보다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국 행복의 본질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믿는 행복에 대한 가치관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주말에 어디를 갔는데 너도 가라고, 주말에 뭘 했는데 너도 하라고, 주말에 어떤 영화/책을 봤는데 너도 보라고 한다. 물론 그런 추천들이 도움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에게 불필요한 자극이 될 수 있다. 갈 필요가 없는 여행을 가게 만들고, 볼 필요가 없는 책을 읽게 만들고, 살 필요가 없는 제품을 사게 만들고,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심한 경우 그렇게 주변에서 추천된 것들을 하지 못하면 마치 삶을 제대로 산 것이 아닌 것처럼 만들어서 우울하게 만들고 만다. 다들 하고 사는데 나만 못하니까 내 삶이 비참해지고 우울해지는 것이다. 정말로 그것을 하고 싶은지 여부에 상관없이 그냥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울해진다.

 

매일 참견을 당한 사람들마다 머리 속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이 반복적으로 말해서 심어 놓은 욕망이 생겨나버리고 만다. 그것들은 그저 그들의 안정성에 대한 판단일 뿐인데 말이다. 심지어 그들이 느낀 안정성 여부조차도 또 다른 타인들로부터 왔을 것이 분명한데도 그렇다.

 

그렇게 이 세상엔 내가 가장 안정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자랑하고 강요하고 줄 세우고 우기는 사람들로 채워져 간다. 그리고 그조차 어떤 확신도 없는 사람들은 그런 소수의 말에 휘둘린다. 어제는 토마토가 완전 식품이고, 내일은 매실이 완전 식품이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냉장고에 사고 나서 먹지 않은 토마토와 구석에 박혀 있는 매실액기스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을 매우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한다. 사람들이 하는 말들, 내가 하고 있는 말들, 별 것 아닌 듯이 스쳐 지나가는 조언들, 참견들, 오지랖들이 존재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정보를 준다고 해도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아니 모르는 것이 더 나은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좋은 것은 나에게 좋은 것이다. 남이 좋은 것은 남에게 좋은 것이다.

 

이것을 주의 깊게 들여다 보지 못하면 결국 휩쓸려가게 된다. 누군가의 의도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토마토 업자의 의도대로 살고, 매실액기스 업자의 의도대로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가장 안정적인 행복은 무엇일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만약에 집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충분히 만족스러울만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최고 행복이 될 것이다. 타인과 엮여 있지 않기에 불확실성도 적고, 밖은 아무리 안전하게 다녀도 집보다는 위험하고, 또한 무엇을 하든 돈이 든다. 그러니 집 안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행복인 셈이다.

 

하지만 누가 그럴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행복을 추천한다면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이미 넘치도록 가치화 된 행복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그런 행복은 가장 말단의 자리조차 차지 하기 힘들며 오히려 불행한 삶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평가되기 십상이다.

 

인간은 누구나 한정적인 시간, ,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무한정의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있다면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지극히 한정적이기에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선택이 타인의 안정성으로부터 왔다면 거기부터 문제가 된다. 선택을 잘못하고 나면 거기에 시간, , 에너지를 투자할수록 덜 행복해질 수 밖에 없다.

 

물론 하라고 하는 것을 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행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소중한 자원을 다른 곳에 썼다면 그보다 백배는 더 행복해졌을 수도 있다.

 

누군가 했던, 여행을 하는 행복이 그토록 컸던 이유가, 계산을 해보니 하루에 백만 원씩 쓰고 살아서 그런 것이라고 했던 말을 한번쯤 깊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어디를 가든 하루에 백만 원씩 쓰고 산다면 행복하지 않기도 힘들기에 그렇다.

 

내가 오늘 느끼고 있는 행복의 안정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리고 나는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보다 훨씬 더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답을 찾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평생 잊지 말고 스스로에게 던질 질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삶은 두 번 살 수 없기에 비교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 나은 삶, 더 행복한 삶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가 힘들다. 인간은 적응의 존재이기에 더욱 더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스스로에게 행복에 관한 질문을 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행복에 관한 유일한 길이지도 모른다.

 

 

 

 

 

'인간과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머 이야기  (0) 2020.08.19
노자  (0) 2020.06.26
자유의지와 도덕  (0) 2020.03.25
존재의 근원, 두려움  (2) 2019.12.04
사람들의 계산법 - 2  (0) 2019.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