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김두삼씨 이야기 - 9

아이루다 2020. 1. 31. 08:47

 

 

9. 승부

 

10일이란 날짜는 길면서도 짧게 지나갔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와중에 길게 느껴진 것은, 내가 주문한 제품 중에서 소형 카메라가 세관에서 통관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탓이었다. 수입대행사의 설명에 의하면 예전엔 문제 없었는데 요즘 몰래 카메라에 대한 사회적 관심으로 인해서 세관에서 고성능 소형 카메라의 수입에 대해서 세밀한 통관 절차를 거치는 모양이었다. 세관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였다. 제품을 수입해서 어떤 용도로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말을 듣는 순간 어떻게 사용처를 밝힐 것이며, 또한 내가 밝힌다고 해서 그들이 그것을 확인할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야말로 요식행위가 아닌가? 하지만 결국 아쉬운 것은 나였다. 그러니 설령 지어내더라도 그들이 납득할만한 용도를 밝혀야 했다. 하지만 바둑 사기를 치려고 해당 제품을 구매했다는 말을 하면 세관 측에서 믿지도 않을 것이고, 설령 믿는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문제가 것이다. 그러니 솔직하게 털어 놓은 것은 처음부터 말도 되는 소리였다. 결국 나는 다른 적당한 이유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적당한 핑계거리가 없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주 특별한 목적이 없는 그런 고가의 카메라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결국 나는 다시 오사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오사장은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하루도 걸리지 않아서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원래 예정보다 하루만 늦어진 상태에서 내가 주문한 제품을 받아볼 있게 되었다. 단지 추가된 하루 동안이 무척 길게 느껴졌을 뿐이다.

 

초소형 카메라가 장착된 안경, 속에 들어가서 전혀 보이지 않는 무선 이어폰, 제품이 도착한 나와 장씨 아저씨는 즉시 실전 연습에 돌입했다. 그러자 불안정한 스마트 화면으로 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나아졌다. 장씨 아저씨는 여전히 가끔 실수를 하긴 했지만, 매일 연습이 쌓이고 쌓일수록 나아졌다. 그리고 승부를 하루 앞둔 날엔 스스로도 자신감을 보일 만큼 거의 완벽해졌다. 하지만 그런 아저씨의 긍정적인 변화와 달리 나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점점 불안해졌다. 다른 것도 아닌 요즘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너무 술술 풀려가는 것이 오히려 불안했던 것이다. 그런 일들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일어나는 일상 하나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어색한 행운들이었다.

사실 나에게 있어서 지난 5년간은 운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남들이 원하는 행운은 당연히 없었고 심지어 남들이 싫어하는 불운조차도 없었다. 내가 그나마 기억나는 행운은 TV 켰다가 이름도 들어 적이 없었던 영화를 재미나게 정도였다. 몸의 냄새로 인해서 영화관에 생각조차 못했던 나는 어떤 영화들이 스크린에 걸렸었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니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좋게 얻어걸린 영화를 보게 되면 더욱 재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이 겪은 불운은 설거지를 하다가 접시를 깨트리거나 주문한 음식이 늦게 오는 정도였다.

 

행운이나 불운, 모두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엮일 때나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아예 자체가 없었다.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요즘 반복되고 있는, 입장에서는 분에 넘치게 과도한 행운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런 행운들이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중에 얼마나 불운이 일어나려고 이러는 것일까 하는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삶이란 것이 원래부터 행운과 불운이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는, 그런 합리적인 구조라고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삶은 이미 너무 크게 불운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겪은 불운을 상쇄할만한 행운이 찾아오려면 아마도 엄청난 것이어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 이런 불안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나와 달리 장씨 아저씨의 자신감은 매일 높아지더니 이제는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장씨 아저씨 그런 모습을 보면서 다른 종류의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그사이 나는 간병인으로써의 역할도 조금 했다. 그래 봐야 김회장의 세끼 식사를 챙기는 일이랑 약을 준비하는 일이었지만, 뭔가를 하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기분은 꽤나 좋았다. 아마도 덕에 매일 나를 옥좨는 불안감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버틸 수도 있었던 같다. 남들이 보면 것은 아니지만 역할을 하게 되면서,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만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있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필요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세상에서 필요하지 않은 자는 이유를 찾는 것이 너무도 힘든 일이다. 아마도 지난 시간 동안 내가 좌절감과 자기 혐오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들의 부재로 인해서 그랬을 것이다. 세상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 그래서 누구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는 , 그런 존재로 낙인이 찍힌 현실 속에서 나는 어떤 관점에서도 존재의 이유를 설명할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저 매일 먹고 싸는 식충이였다. 그런 면에서 내가 해야 일이 생긴 것은 정말로 선물과 같았다.

 

잠시 짬이 났을 때는 양평 읍내도 다녀왔었다. 일주일에 하루는 공식적으로 휴무 날이 주어지기에 그날 장씨 아저씨의 강력한 권유로 오일장 구경을 하고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도 샀다. 당장 필요한 속옷부터 시작해서 양말, 겨울에 입고 지낼 옷들, 그리고 심심할 읽을 만한 책도 샀다. 통장에 오백만 원이란 돈이 들어와 있으니 쓰는 것도 그리 마음 졸이지 않을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일단 이곳에 계속 있게 될지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자신감이 충만한 장씨 아저씨가 이미 있기로 결정된 행동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날 하루만큼은 나도 아주 잠깐 동안 나를 짓누르던 불안감에서 벗어날 있었다.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갔다. 그리고 결국 운명의 날이 왔다. 나는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시쯤 김회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초소형 카메라가 장착된 안경을 쓰고 이미 어제 배달되어 바둑판 앞에 앉았다. 김회장은 처음 봤던 때의 무표정과는 달리 약간의 기대감과 그리고 안에 나에 대한 의구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는 앞자리에 앉았다. 어쩌면 그의 표정에서 의구심을 발견한 것은 어쩌면 그저 불안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순간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일단 눈에 띄게 심호흡부터 했다. 그러고 나서 승부를 앞두고 어떤 바둑알 색을 것인지에 대해서 김회장과 상의를 했다. 그리고 나는 이미 계획한대로 내가 검은 돌을 잡겠다고 완곡히 말했다. 미리 알아본 바에 의하면 바둑계에서는 검은 돌은 하수가 잡는 것이라고 했다. 관련된 내용을 읽어 보니 보통 실력이 비슷할 때는 ' 가리기' 통해서 색을 결정하고, 어떤 식으로든 검은 돌을 잡은 사람이 먼저 돌을 둔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일단 나는 내가 김회장보다 하수임을 자처했다. 실제 실력으로 보면 너무도 당연히 그래야 했고, 내가 정말로 바둑을 두었더라도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김회장이기에 그러는 편이 나을 것이다. 김회장도 비슷한 생각을 없이 말을 받아들여줬다. 드디어 돌을 놓는 순간이 왔다. 사이 다른 방에서 노트북에 돌사랑이라는 바둑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는 장씨 아저씨는 돌을 잡고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김회장과 인공지능은 승부를 벌이게 것이다.

 

대국이 시작되자 장씨 아저씨의 지시가 들려왔다. 바둑판에는 기본적으로 9개의 점이 있는데, 우리는 각자 번호를 미리 정해두었다. 그리고 내가 다음 돌을 위치는 번호를 정한 상태에서 좌우, 상하 지점으로 상대 위치를 불러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장씨 아저씨의 지시에 따라서 검은 하나를 놓았다. 그리고 곧바로 김회장이 돌을 놓았다. 초반이라서 그런지 반응이 빨랐다. 잠시 장씨 아저씨의 번째 지시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따라서 돌을 놓았다. 이런 식으로 승부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그러는 사이 바둑판 위의 돌의 숫자는 계속 늘어갔다. 그렇게 수가 거듭될수록 김회장의 몸에서는 기존에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어떤 감정반응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가 승부에 집중을 하고 있어서 나타나는 현상인 했다. 그는 내가 돌을 놓자마자 이미 거기에 알았다는 웃으며 바로 돌을 놓을 정도로 빠르게 반응하기도 했고, 어떤 경우엔 한참을 난감한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하고는 다음 수를 두기도 했다. 나는 바둑을 전혀 두지 못하는 일명 '바알못' 이긴 하지만 김회장의 얼굴만 보고도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승부 내용이 꽤나 막상막하로써 매우 흥미로운 수준이란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바둑판 위의 돌의 숫자가 늘어나자 예상했던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기존에 놓인 돌들이 너무 많아서 김회장이 새롭게 돌을 놓는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그로 인해서 가끔 속의 마이크로 당황스러워하는 장씨 아저씨의 반응이 들려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오직 19개의 동일한 선이 반복되고 위에 흰색과 검은색 종류의 밖에 없는 패턴이기에 어쩔 없는 물리적 한계였다. 더군다나 처음부터 아무리 고해상도의 화면이라고 해도 결국 무선으로 전송이 되는 한계가 있었고, 그로 인해서 바둑판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과 같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가끔은 귀에서 장씨 아저씨와 아주머니 사이의 실랑이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렇게 둘의 의견이 갈라지면 한참 동안 다음 수가 결정되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순간마다 손으로 어정쩡하게 김회장이 새롭게 놓은 위치를 가리켜야 했다. 그러면 잠시 싸움이 그치고 다음 위치가 전달되어 왔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바둑이 진행될수록 인공지능의 판단이 점점 빨리 이뤄졌다. 아마도 처음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경우의 수가 돌이 쌓여가면서 점점 줄어들기에 그런 했다. 하지만 좋은 보다는 나쁜 점이 영향이 컸다.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김회장이 놓은 돌의 위치를 잘못 판단하거나, 나에게 다음 돌의 위치를 잘못 알려주는, 차례의 실수만으로도 모든 것을 망칠 있었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그때부터 인공지능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앞의 바둑과 화면 바둑은 아무리 같은 수를 거듭했더라도 한번의 차이로 인해서 전혀 다른 바둑이 되고 말기에 그렇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바둑의 묘미이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위협적인 일로만 느껴졌다.

 

가끔 장씨 아저씨가 헤매는 듯한 느낌이 들면 나도 모르게 등에서 땀이 흘렀다. 그러자 얼굴에 열이 오르면서 붉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회장은 완전히 바둑 자체에 집중하고 있어서 나의 그런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다른 문제가 생겨났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자 이제는 머리도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하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나조차도 김회장이 어디에 새롭게 돌을 놓았는지 놓칠 때가 있었다. 만약 내가 바둑을 알았다면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판세를 파악하고 있을 테니 혹시라도 김회장의 행동을 놓치더라도 어디에 새롭게 돌을 놨는지 정도는 파악할 있을 테니까.

 

내가 동안 바둑 동영상에 의하면 바둑을 어느 정도 둔다는 분들은 승부가 끝나고 복기를 자신이 수와 상대가 수를 거의 순서대로 기억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런 바둑 고수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돌을 놓으면서도 내가 그곳에 돌을 놓는지 모른다. 그리고 당연히 김회장의 다음 수를 전혀 예측할 없다. 그것은 마치 아무런 규칙을 모르면서 미식축구를 보는 것과 비슷했다. 거기서 멈추는지, 갑자기 반칙이라고 하는지, 점수가 올라가는지 전혀 모르고 중계방송을 보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다른 실수 없이 승부는 중반까지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때쯤 되자 얼굴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서 줄줄 흐를 지경까지 되고 말았다. 긴장도 많이 한데다가 집이 덥기까지 했다. 그로 인해서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잘못하다가는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안경에 달라붙어서 시야를 가릴 위험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어쩔 없이 안경을 벗고 근처에 있던 휴지로 얼굴을 차례 닦아내야 했다.

 

그런데 순간 결국 내가 가장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나와 장씨 아저씨가 동시에 김회장이 다음 돌을 놓는 위치를 놓치고 것이다. 나는 휴지로 얼굴을 닦고 있는 순간이었기에 그것을 놓쳤고, 당연히 안경은 왼손에 쥐어져 있는 상태였기에 장씨 아저씨의 시야에서는 아마도 하얀 휴지가 움직이는 장면만 보였을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땀을 닦다가 결국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나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는 다급한 장씨 아저씨의 음성으로 인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김회장에게 이번에 어디에 뒀냐고 물어봐야 할까? 그런 것을 묻는 것에 대해서 김회장은 나를 어떻게 생각을 할까? 이러다가 모든 것이 들통이 나지 않을까?

 

한참을 생각했지만 결국 해결책은 하나뿐이었다. 어디에 뒀는지를 모르면 결코 다음 수를 없으니까. 질문에 김회장은 잠시 약간 의아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지금 자신과 승부를 겨루는 정도의 실력이라면 보지 않고도 자신이 어디에 뒀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했다. 물론 모두 나의 불안함으로 인해 생겨난 상상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표정이 그랬다. 김회장은 자신이 돌을 놓은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나에게 정도 실력이면 이름 있는 스승에게 배웠을 것이라고 하면서 바둑을 어디에서 누구에게 배웠는지를 물었다. 자신은 수십 년간 바둑계에 속해 있어서 국내의 웬만한 실력자는 알고 있다고 했다.

 

힘든 위기를 넘겨서 안도감이 드는 순간에 나는 김회장의 질문으로 인해서 다시 반짝 긴장을 해야 했다. 바둑을 배운 적도 없는데 어떻게 스승에 대한 대답을 있겠는가? 내가 아는 바둑기사라고는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정도인데 그들에게 바둑을 배웠다는 것은 처음부터 말이 된다. 아마도 내가 장씨 아저씨의 위치에 있었다면 대화 내용을 듣고 빠르게 적당히 유명한 바둑기사 이름을 알려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장씨 아저씨에게 그런 순발력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나는 순간 머리는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빠르게 돌아갔다. 그래서 결국 하나의 이름을 생각해냈다. 바로 박석애라는 이름이었다. 내가 이름을 김회장에게 말하자 그는 의아한 다시 성과 이름을 한자씩 부르면서 재확인 했다. 내가 급조했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스스로 바둑에 대해서 자신감이 있었던 김회장은 자신이 모르는 바둑 기사가 있다는 점이 뭔가 꺼림직 보였다.

 

나는 박석애라는 분이 비록 바둑을 두시긴 하지만 워낙 사람 만나는 것을 꺼려하는 분이라서 아마도 들어 적이 없으실 것이라고 둘러댔다. 순간 갑자기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는 아주머니가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장씨 아저씨가 갑자기 웃느냐고 묻는 목소리도 들렸다. 아마도 아주머니는 내가 순간적으로 둘려댄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알아 했다. 나는 당장 떠오르는 이름이 없어서 바둑을 줄여서 박씨로 하고 돌사랑이란 프로그램 이름을 그대로 한문으로 바꿨다. 그래서 결국 박석애가 것이다. 즉석에서 지어낸 이름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이름이기도 했다. 설명도 김회장은 여전히 뭔가 의구심이 남은 했지만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세상에는 어딘가 은둔고수가 있기 마련이니까. 바둑은 원래 신선놀음이 아닌가? 그래도 아주머니의 맑은 웃음소리에 잠시나마 긴장이 풀린 것은 좋은 일이었다.

 

승부는 중반을 넘어서 후반을 향해 갔다. 그리고 대국은 여전히 팽팽한 형국이었다. 내가 아는 바둑은 같은 색으로 돌로 쌓인 공간이 상대보다 많으면 이기는 게임이다. 그것을 집이라고 하는데, 집의 숫자가 많을수록 이기는 것이다. 서로 많은 집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상대의 돌을 돌로 쌓아서 먹기도 하고, 상대가 만든 집을 최대한 부수는 노력을 하는 것이 바로 바둑의 기초인 셈이다. 정도의 상식으로 보았을 현재 누가 이기고 있는 중인지 정확히 방법은 없었지만 승부가 팽팽한 정도는 있었다. 다행인 점은 정도까지 오니 이제 나의 불필요한 긴장감이 많이 줄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더욱 안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귓속에 들리는 장씨 아저씨의 음성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초반에 느껴졌던 긴장감과 불안함이 거의 사라져있었다. 이대로만 있다면 승부에서 이기든 지든 우리의 작전은 완전한 성공을 있다는 희망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혹시나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도착할 때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게 맞다. 나는 행운이란 단어와 가장 거리가 사람이니까.

 

다음 돌을 놓을 위치에 대한 설명을 기다리고 있는 중에 갑자기 장씨 아저씨의 외마디 짧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나서 귀속에서 다음 수를 어디에 놔야하는지에 대한 지시 대신 "어떻게 허지?" 라는 장씨 아저씨의 몹시 당황스러운 말투만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나는 장씨 아저씨의 반응으로부터 뭔가 커다란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하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드디어 것이 것이다. 장씨 아저씨는 알아들을 없는 횡설수설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갑자기 아주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머니 역시 평소와 달리 몹시 긴장한 목소리였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우리가, 아니 내가 완전히 망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있었다.

 

아주머니의 설명에 따르면 자신이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장씨가 실수로 이전 정도 이전에 김회장의 수를 잘못 옮겼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인공지능은 잘못된 수를 바탕으로 다음 수를 것이다. 수도 아니고 이미 벌써 수나 진행된 것이다. 결국 내가 가장 우려하던 상황이 벌어졌다. 현실 바둑판과 프로그램 바둑판의 동기화가 완전히 깨진 것이다. 혹시나 놓는 즉시 알았다면 수를 물릴 수도 있겠지만, 이미 수나 진행된 상태였다. 이것은 결코 복구 불가능한 실수였다. 원래 수는 고사하고 수를 물려주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 바로 승부의 세계였다. 내가 미리 확인한 바에 의하면 장씨 아저씨가 쓰는 프로그램에서는 정도는 뒤로 물리는 기능이 있긴 했다. 하지만 앞의 현실 바둑판에서는 그럴 없다. 더군다나 나는 이미 수를 엉뚱한 곳에 두고 말았다.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김회장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일단 나를 의심하기 보다는 내가 수의 의도를 읽어내려고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자신이 이해할 없는 위치에 놓은 , 그것이 김회장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고도의 전략이 아닌 완전히 실수임이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나는 지금 당장 다음 수를 어디에 둬야 할지 결정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

 

멈췄던 땀이 다시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바둑알을 쥐고 있는 손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추고 오직 손만 움직이고 있는 느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김회장은 이제 바둑판에서 눈을 떼고는 뭔가 의구심을 품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쳐다봐도 내가 수의 의도를 파악할 없다는 점과 지금 내가 보이고 있는 태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손을 보고 의심이 들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 것도 없었다. 상태에서 천천히 시간이 흘러갔다. 1초가 시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절실했지만 머릿속은 하얘져서 오히려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김회장은 이제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빨리 다음 수를 두라고 직접 입으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 것도 없었다.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에서는 장씨 아저씨의 한숨 소리만 계속해서 들려왔고 아주머니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렇다. 내가 망한 것은 확실해졌다. 나는 이상 바둑을 없으며, 이제 내가 바둑을 이상 없음에 대해서 김회장에게 납득할만한 설명을 해야 차례였다. 그러니까 내가 사기 바둑을 두려고 했음을 털어 놔야 차례였다. 욕을 먹고 그리고 아마도 당장이라도 집에서 쫓겨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순간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난 보름 동안 나에게 일어난 작은 행운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내가 오늘처럼 추락을 이렇게 최대한 강한 충격을 받으라고 지금껏 그리 높게 올려놓은 것이었다. 그래야 인생 최대치의 좌절감을 맛볼 테니까. 며칠 사이에 좋아져서 잠시 잊었는데, 운명이란 녀석은 나를 가지고 놀다 못해 이런 치욕을 안겨주고 있는 중이었다. 참기 힘든 절망감과 분노가 동시에 밀려왔다. 그러면서도 삶이 새삼 억울하기도 했다. 결국 삶은 여기까지인가 싶어서 비참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운명을 향해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삶은 그저 깃발이었다. 운명이란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바람이 잦아들면 금세 쳐지고 마는 그런 깃발이었던 것이다. 원래 펄럭이는 깃발은 나름 그럴 듯해 보이지만 거기에 깃발의 의지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깃발은 바람이 멈추기 전까지 그저 자신의 의지라고 착각하고 살아갈 뿐이었다.

 

그런데 잠시 의지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스스로 삶의 연속성을 깨느냐 마느냐의 여부를 결정할 있다는 점이었다. 오늘을 기점으로 해서 나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도 못해지는, 경계지점을 슬슬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이제 의지로 결정할 있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나는 도대체 이곳에 왔을까? 이곳에 오겠다고 결심을 것일까? 머리를 자르고, 거리를 걷고, 두지도 못하는 바둑을 두겠다는 무리한 계획이나 세우고, 결국 일어날 없는 기적을 기대한 것일까?

 

나는 고개를 들어 다시 김회장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이제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단지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제대로 이해할 없었기에 놓고 추궁하지 못할 , 분명히 바둑을 두는 동안 조금이라도 쌓은 나에 대한 신뢰를 빠르게 거둬드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의 표정으로 인해 안에 남아 있던 뭔가가 하나 부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제는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알았는데, 나를 지탱하고 있던 녀석이 하나 숨어 있었던 것이다.

 

순간부터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다. 앞으로 여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포기하니 정말로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고 보면 내가 동안 마음이 편치 못했던 이유는 바로 제대로 포기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포기도 못하면서 포기하는 하고 살았으니 그리 힘들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웃겼다. 포기하면 이렇게 편한데 동안 그렇게 버텼을까? 아마도 방금 부러진 녀석 때문인 같았다. 와중에 뜬금없이 가지 아쉬운 것이 떠올랐다. 순간 생각이 떠올랐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바로 내가 집에 와서 얻어먹었던 아주머니가 해준 밥이었다. 하고 많은 것들 중에서 하필 그것이 아쉬울까? 나도 자신을 이해할 없었다.

 

 

나는 지난 년간 혼자 사발면을 먹고, 혼자 치킨을 시켜먹고, 혼자 편의점 도시락을 사다 먹으며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던 시절을 모두 잊었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다시 그런 밥을 먹을 있게 되자 안에서 뭔가가 움직인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밥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밥을 먹는 시간이 아쉬웠다. 사실 내가 앞으로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보다 시간들을 즐길 없음이 슬펐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집에 와서 보낸 며칠은 누군가의 마지막 시간으로써는 괜찮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에 내가 살던 서울 집에서 같은 결정을 내렸다면 그야말로 비참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거기엔 하나의 아쉬움조차 남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비록 결과가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기 이런 작은 행복을 누렸던 것은 나름대로 행운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씨발. 하지만 머릿속 생각의 흐름과는 달리 입에서는 들릴 말듯하게 욕설이 튀어 나왔다.

 

그런데 웃기게도 욕설을 튀어나온 순간부터 갑자기 손의 떨림이 멈췄다. 그리고 나는 점차 차분해졌다. 나는 그냥 바둑판 아무 곳이나 돌을 놓았다. 잡아먹을 듯이 나를 노려보고 있던 김회장은 내가 놓은 돌의 위치를 보고는 잠시 동안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서 나에게 바둑 두기 싫어졌냐고 물었다. 싫지. 당연히 싫지. 그런데 당신이 생각하는 이런 이유는 아냐. 나도 사정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사정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상대에게 설명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말고는 딱히 미련조차 남지 않는 세상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변명까지 하면서 떠나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살던 정리를 하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단지 지금이 너무 추워서 한강물 수온이 걱정되긴 했다. 하필이면 지금일까? 나는 죽는 순간까지도 운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원래 번개탄 같은 것들은 처음부터 별로 내켰다. 준비해야 것도 많고, 죽는 순간까지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릴 같았다. 순간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아주머니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쟁반이 받혀져 있었다.

 

"회장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시원한 수정과 드시면서 하세요. 승부가 대단해서 그런지 오늘 집이 덥네요." 아주머니는 평소보다 훨씬 밝게 웃으면서 수정과 그릇을 김회장과 곁에 하나씩 두었다. 그러자 김회장은 나에게서 시선을 아주머니가 수정과를 받아서 번에 마셨다. 그리고 안에 남은 곶감까지도 질겅질겅 천천히 씹어 먹었다. 나도 일이 없어서 똑같이 수정과를 마시고 곶감을 씹어 먹었다. 상황이 상황이긴 했지만 땀을 많이 흘린 탓에 그런지 살짝 살얼음이 있는, 이가 시릴 정도의 차가운 수정과의 맛은 무엇에도 비할 없는 맛이었다.

 

순간 아주머니는 김회장 몰래 나를 바라보고는 검지를 세워서 자신의 입술 위에 댔다. 처음엔 뭐지? 했지만 행동이 나에게 지금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는 표시임을 깨달았다. 딱히 말도 없는데 괜한 걱정이다 싶었다. "바둑을 두기 시작하지 벌써 시간이 훌쩍 지났어요. 회장님 허리도 좋은데 일어나서 풀고 하세요. 정박사가 알면 난리 치겠어요." 평소와 달리 약간 호들갑을 떠는 듯한 아주머니의 말에 김회장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뭐라고 하려는 했지만 이번엔 내가 먼저 재빨리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고 허리를 돌렸다. 그러자 김회장도 인상을 쓰고는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를 따라 했다. 나는 기왕 하는 김에 다리 운동도 하고 목도 좌우로 꺾는 스트레칭을 했다. 비록 시간이지만 긴장을 너무 많이 탓에 뒤쪽이 엄청나게 뻐근했다. 한번 시작한 운동은 한참 동안을 반복되었다. 하지만 영원히 계속 수는 없었다. 김회장이 먼저 자리에 앉자 나도 따라서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주머니는 힐끗 시계를 바라보더니 이제 다시 바둑 두세요, 라고 말하고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방에서 나가자 방은 다시 정적 속에 파묻혔고 공간은 다시 어색한 침묵과 의심 그리고 절망의 느낌으로 가득 찼다. 순간 갑자기 속의 마이크로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보라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속으로 도대체 ?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어떻게 시간을 있을까? 만한 얘기도 전혀 떠오르지 않는데.

 

나는 그냥 아무 것이나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나는 회장님은 국내 프로 바둑 기사들 중에서 누구를 가장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김회장이 질문을 덥석 물었다. 그리고 갑자기 표정이 바뀌더니 자신은 개인적으로 돌부처 이창호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요즘은 알파고라는 인공지능 때문에 이세돌이란 인물이 많이 알려졌지만, 만약 이창호가 한참 전성기 시절이라면 그는 이세돌조차 한번 밖에 이기지 못한 인공지능도 분명히 이겼을 것이라고 했다. 이창호야 말로 바둑계의 유일한 천재라고까지 하면서 약간 흥분한 기색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이창호라는 사람이 유명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지는 사실 오늘 처음 알았다. 그럼에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저도 그렇게 생각해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회장은 더욱 신나서 이창호에 관한 숨겨진 일화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듣다 보니 무슨 중국 무협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신나게 얘기를 하던 김회장은 갑자기 연속으로 하품을 하더니 이렇게 갑자기 졸린지 모르겠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대로 앉은 상태로 졸기 시작하더니 결국 완전히 잠에 빠진 고개를 숙인 코까지 골았다.

 

잠시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안으로 들어와서 김회장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는 나에게 같이 김회장을 옮겨서 침대에 눕히자고 했다. 낑낑거리면서 김회장을 눕히고 나서 이불까지 덮어 아주머니는 그제야 지금 벌어진 상황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까 김회장이 마신 수정과에 강한 신경 안정제를 넣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마도 앞으로 대여섯 시간은 잠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잠을 깨고 나면 아마도 오늘 있었던 바둑 승부에 대해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온전히 기억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내일 다시 처음 승부를 겨루는 것처럼 바둑을 두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오늘 일을 기억하지 못할까? 내가 그것을 묻자 아주머니는 원래 김회장이 어제 일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아서 오늘 일어난 일이 꿈을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면 어쩔 없이 믿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억지로 오늘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결국엔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했다. 내일 오늘 일어난 사고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그럼 내일 수정과를 먹이면 되지 . 회장님이 수정과를 좋아하시거든. 아무튼 오늘 마음고생 많았어." 아주머니는 걱정에 아니라는 말을 하면서도 나를 위로해주듯 등을 어루만져 줬다. 사실 딱히 믿음이 가는 대답은 아니었다. 도대체 사람을 얼마나 그런 식으로 속일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순간 나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다. 여전히 남아 있는 등의 온기 덕분에 안에서 어떤 감정 하나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서러움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나에게 일어난 많은 불운들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죽음조차도 괜찮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나는 사실 아무 것도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어쩔 없으니 그런 척을 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한번 울음이 터지자 지난 5 동안 안에 쌓인 억울함이 만큼의 서러움이 되어서 없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나는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어린아이처럼 울고 말았다.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냥 안아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순간조차도 땀으로 절은 몸에서는 지금 어느 때보다 강하게 역겨운 냄새가 먼저 걱정되었다. 그렇지만 나의 걱정과 달리 지금 순간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표정엔 따뜻함뿐이었다. 나는 눈물이 났다. 지난 5년간 쌓인 상처들로 인해 고인 눈물들이 너무 겁이 나서 나오질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나를 벗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어쩌면 있는 것도 용기였다. 나는 순간 내가 스스로 삶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오래된 착각 하나에서 벗어날 있었다. 나는 내가 어떤 모습이던지 상관없이 그저 계속 살고 싶었던 것이다. 누군가 나처럼 착각했다면 그것은 그저 자신을 붙들어줄 사람이 없음을 절규하고 있는 것뿐인 것이다. 자신의 삶을 언제라도 버릴 있는 하찮은 것이라고 말할수록 더욱 자신의 삶을 붙잡고 싶은 것이다. 단지 나는 방법을 몰랐고, 나를 붙잡아 사람도 없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그저 살고 싶을 뿐이다.

 

잠시 장씨 아저씨도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실수로 인해서 모든 문제가 일어났다고 느끼는 한참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그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반복해서 사과를 했다. 하지만 장씨 아저씨는 딱히 바라는 것도 없이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나를 도와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런 사단이 났다고 해서 그가 나에게 미안해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장씨 아저씨 입장은 그렇지 않은 했다. 오전만 해도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그가 그렇게 풀이 죽은 모습으로 있으니 이번엔 갑자기 웃음이 났다. 순간만큼은 내일이 걱정되지 않았다. 오늘 이렇게 사고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만에 처음으로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나는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면서 장씨 아저씨에게 괜찮다고 번이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장씨 아저씨도 조금 표정이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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