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에고의 종류 - 2

아이루다 2018. 8. 31. 08:10


[앞 글에서 계속]


네 번째 경우는 두 번째 경우의 변형된 버전이다. 즉, 적당히 잘났고 적당히 못난 것도 있는 사람들이다. 아니, 행복하기 위해서 그렇다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유형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속해 있으며,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적절한 열등감과 잘 하는 것에 대한 적절한 우월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속해 있다.


 

단점을 보지 말고 장점을 보고 살아라, 남을 의식하지 말아라, 네 인생의 주인은 바로 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등의 조언들을 꾸준히 듣고 자신이 가진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파악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열등감을 붙잡고 남을 비난해봐야 결국 자신만 불행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조금 다르게 행동한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줄이고, 타인의 시선을 너무 많은 신경을 쓰는 것도 줄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남을 비난하는 것을 최소화 하고 자신에게 집중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한계는 명확하다. 조금만 기분이 나빠도 원래 가졌던 에고의 상처는 금세 나타나고 만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상처를 받거나 혹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일이 생기게 되면 바로 숨겨져 있던 열등감과 질투심 그리고 피해의식 등이 튀어나오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면 그때마다 친구를 만나서 하소연을 하고 공감을 원한다. 그것이 잘 안 되면 책을 읽는다.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숨기려면 마음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남에게 화를 내봐야, 남에게 신경질을 내봐야, 남에게 짜증을 내봐야 결국 자기 손해라는 것을 열심히 공부한다. 그럼으로써 조금씩 거기에서 빠져 나오려고 애쓴다.

 

하지만 슬프게도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이 그런 감정들을 느끼고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바로 자신 안에 있는 에고의 존재로 인해서 그렇다는 것을 알지 못해서 그렇다. 문제의 원인을 모르기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다. 그저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적당히 해결할 뿐이다.


그것은 평생 자기가 자기 자신이라고 믿었던 그 에고는 그저 경쟁 사회 속에서 만들어 진 괴물임을, 두려움으로 인해 생겨난 허상임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어쩔 수 없다.

 

다섯 번째 경우는 에고의 상처를 막기 위해서 모든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차단하는 방법을 쓴 사람들이다. 흔히 다른 말로 사차원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형식은 다양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정신 세계를 가진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이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의 경우엔 주변에서는 눈치가 없다든가 혹은 사차원이라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오히려 본인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외부에서 상처를 주더라도, 그 상처가 전달되어 오는 통로가 무너지거나 아예 사라져버렸기에 들어오다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러니 누군가 상처를 주려고 한 비꼬는 말이나, 이중적인 의미로 한 말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대 놓고 비난하지 않는 한 그렇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누가 그렇게 다른 사람을 대 놓고 비난하겠는가? 그것은 결국 자기 손해인데 말이다.


그래서 결국 상처를 받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러니 비정상적인 방법이라고 해도 상처입고 괴로워하는 에고를 가진 사람보다는 훨씬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외부와의 통로를 막았다는 것은 나쁜 것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도 있지만 좋은 것도 함께 막기 때문에 그렇다. 그 통로를 통해서 상처도 들어오지만 이해도, 공감도 들어오는데, 그것이 막히고 나면 상처는 안받을 지 몰라도 이해와 공감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되고 만다. 남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것은 정확히 말해서 해결책이 아니라 회피이다밖이 너무 힘드니 굴에 들어간 상태이다. 설령 상처를 받더라도 남들 속에서 부대끼고 살아가야 자신과 비슷한 남들의 힘듦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데 남들과 외부와의 통로를 아주 좁게 만들거나 혹은 아예 폐쇄시켜 버렸기에 그렇기가 힘들다.

 

여섯 번째는 경우는 태생적으로 에고가 아주 약한 사람들이다.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보통 주변에서 천사라는 평가를 받고 살아가며, 너무 착해서 오히려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까지 있다. , 너무 착한 사람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덕적으로 자극을 주게 되면서 그들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원래 한 없이 좋은 평가만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왕따를 당하거나 혹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엔 끝없이 희생만 강요당하면서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지기도 한다.

 

여기에 속한 사람들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자신의 에고의 작용이 매우 희미하기에 상대적으로 강한 에고를 가진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 분명히 착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면서 농담도 잘 못하고, 그래서 재미도 없고, 같이 뭔가를 할 때 지루하며, 대화가 어긋나고 잘 통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그래서 착함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는 있지만 마음을 털어 놓을 정도로 깊게 사람을 사귀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여기에 속한 사람들과 즐거운 일로는 만나지만 고민을 털어 놓거나 혹은 자신의 숨겨진 내면에 관련된 대화를 하려고 하질 않는다에고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어느 정도 같이 지내보면 본능적으로 그 사람들이 공감을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다.

 

원래 사람은 상대가 자신을 정말로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여부를 꽤나 귀신같이 알아낸다. 아이들조차 그렇다. 물론 목적으로 가지고 연기를 하면 속기는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다 들통나게 된다.

 

일곱 번째 경우는 어린아이의 에고를 성인이 된 후에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에고가 분명히 존재하긴 하지만 원하는 것이 매우 작다. , 맛난 것만 먹어도 세상 행복하고, 친구들만 만나서 놀아도 무척 행복해 한다.

 

만족에 대한 조건이 작아서 아주 쉽게 행복해지는 유형이다. 아이의 에고는 존재하긴 하지만 약한 것이 기본이다. 그래서 이들도 여섯 번째처럼 에고가 약한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착해 보이는 것이다. 차이점은 여섯 번째의 경우는 에고가 약한 것이고,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에고가 작은 것이다. 즉, 작기에 있을 것은 다 있다.

 

기본적으로 에고의 크기가 작아서 쉽게 만족시켜 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행복하게 살기에 매우 큰 장점을 가진 유형이다. 에고가 만들어 내는 에너지도 있고, 부족하지만 남들과 공감을 할 수도 있으며, 에고를 통해 상처는 받지만 쉽게 충족도 되기에 긍정적이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어린아이가 가진 문제와 동일하다. 바로 부모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결국엔 위기 상황에 놓였을 때는 어른이 되어야 하기에 그렇다. 아이들의 에고는 그렇게 그 한계가 명확하다. 좋은 환경이 유지될 땐 멀쩡하지만, 조금이라도 힘든 상황에 놓이면 고통받다가 결국 뒤늦게 어른의 에고를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대신 행복을 잃는다.

 

여덟 번째 경우는 너무도 강한 에고를 타고 태어나서 도저히 그 상처를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여기에 속한 사람들의 숫자는 많지는 않지만 아무튼 타고난 에고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기에 어려서부터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서 진지해 보이기도 하고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진 듯한 모습을 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젊은 시절에 종교에 끌리게 된다. 그 종류는 다양하지만, 아무튼 에고에 관련해서 가장 본질적으로 다루고 있는 종교가 불교이다 보니 주로 불교를 통해 구도의 길을 가게 된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결국엔 에고를 자신과 분리시키는, 이른바 깨달음의 경지에 올라서게 된다. 그리고 에고가 주는 상처로부터 영원히 결별하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에고를 가장 강하게 태어난 사람이 에고를 버리는 길을 가는 것이다. 에고로부터 얻는 행복도 크지만 그 반대가 가진 단점, 즉 엄청난 고통과 상처를 견디기가 힘들기에 세상을 등지는 결단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여기까지 총 여덟 개의 에고의 종류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물론 더 많은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 중 하나에 속한다. 겹치기도 하겠지만, 이것들에서 완전히 벗어난 유형의 거의 없다.

 

차지하는 비율로 보면 세 번째인 찌그러진 에고를 가진 사람이 가장 많다. 하지만 세 번째 유형의 고유한 특징인 존재감 없음으로 인해서 오히려 네 번째인 상처는 받았지만 나름대로 살아가는 유형이 오히려 더 많아 보인다. 숫자는 많지만 눈에 띄지 않으니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인 삐뚤어진 에고를 가진 사람들이 꽤나 많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도 여기에 속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매우 감정적이란 점이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차례 기분이 오락가락 한다. 특히나 권력의 자리에 있을 때 그런 성향이 크게 나타나는데, 딱히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으니 그렇다.

 

이들 중에서는 꽤나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못난 부분도 있지만 분명히 잘난 부분도 있기에 그 잘난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서 성공할 수 있기에 그렇다. 즉, 열등감이 강한 의지가 되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성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감정적이어서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매우 힘들어 하게 된다.


그럴 능력이나 운도 따라주지 않는 사람은 그야말로 분노조절장애자가 되기 십상이다. 피해의식이 너무 심하고, 질투심도 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꼬투리가 생기면 뒷담화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자신은 아주 작은 비난도 참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낸다.

 

 이 세가지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 전체의 90% 이상이 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나머지 10%를 운 좋게 많은 것을 타고 태어나서 온전한 에고를 가진 사람, 너무 약한 에고를 가져서 한없이 착한 사람,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서 어른이 된 후에도 아이의 작은 에고를 가지고 사는 사람, 너무 강한 에고를 가져서 결국 참지 못하고 종교에 빠지는 사람, 에고의 상처가 힘들어서 외부와의 통로를 단절시킨 사람들로 채워진다.

 

물론 어떤 사람이 명확하게 한 유형에만 속하지만은 않는다. 삶에서 우연히 경험하게 되는 행운 여부에 따라서 두 번째와 네 번째가 왔다 갔다가 하는 사람들도 많고, 삐뚤어졌어도 사람들과 어울릴 정도 수준에서 멈춘 사람들도 꽤나 많기에 그렇다.

 

그리고 찌그러진 사람들 중에서도 살다가 운이 좋게 그것을 펼 수 있는 기회를 맞기도 한다. 대부분은 젊은 시절을 지나서 40대가 들어서는 시점에 그런 변화가 시작되는데, 그때부터는 에고가 원하는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렇다.

 


젊은 시절엔 외모, , 성공 등이 에고의 중요한 목표였다면 나이를 먹을수록 건강, 관계, 취미생활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젊은 사람의 에고는 좀 더 나은 짝을 찾는 것에 집중되는 반면, 나이를 먹을수록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알게 되기에 그렇다. 에고가 좀 더 현명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외모, , 성공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여전히 건강, 관계, 취미생활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에 삶은 언제나 커다란 변화를 겪을 여지가 있다.

 

, 젊은 시절에 에고가 한껏 만족되었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젊은 시절에 찌그러졌던 에고가 중년의 나이에 뭔가 자신의 장점을 살려줄 계기를 마련하면서 큰 변화를 겪기도 한다.

 

단지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뭔가 하긴 해야 한다. 행동하지 않고 생각만 하는 것은 결코 에고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니까 말이다. 에고는 언제나 명확한 증거를 원한다. 바로 경험의 기억 말이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에고가 결코 나 자신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에고는 홀로 있을 때는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 혼자 있는 사람은 꾸밀 필요도, 잘 나려고 노력할 필요도, 인정받으려고 할 필요도 없다. 당연하다. 봐줄 사람도, 인정해줄 사람도, 잘났다고 말해 줄 사람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에고는 오직 관계를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허상임을 이해하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에고를 적당히 에너지의 원천으로만 이용해야 한다는 점을 실제로 받아들이지는 못해도 적어도 인지는 살아야 한다.

 

그것이 에고의 노예가 되어서 사는 삶을 어느 정도 완충시켜 줄 수 있다. 그것이 덜 상처받고, 자신을 덜 괴롭히고, 다른 사람들의 관심, 평가에 대한 집착을 줄일 수 있다.

   

현재 자신의 에고가 어느 유형에 속해 있더라도 여전히 기회는 존재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서 헤맸으니 이제는 문제를 알고나서 해결해 나가면 된다.

 

그것만 해도 삶의 과정은 충분히 아름답고 살만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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