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넘어서

10. 두려움을 넘어서

아이루다 2018. 3. 10. 08:40

 

::죽음이 두려운 두 가지 이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죽음이란 단어를 거의 쓰질 않아요. 관용적으로 '.. 해서 죽겠다' 라는 말을 쓰긴 하지만, 말 그대로 관용어구죠.

 

그러다 보니 피, 시체와 같은 죽음을 연상케 하는 것들을 보는 것도 싫어하죠. 피가 싫은 것이 아니라, 시체가 싫은 것이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연상되는 고통과 죽음이 싫은 것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죽음을 싫어할까요? 사람들이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니 무의미한 질문이긴 하지만 그것을 생각해보죠.

 

첫 번째 이유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겪어야 하는 고통이 싫은 것이에요. 그래서 잠자듯 편하게 죽을 수만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꽤나 있을지도 몰라요. 이것은 본능적인 두려움이에요.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죠.

 

두 번째 이유는 존재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에요. 이 두려움은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첫 번째인 순수한 고통에 대한 두려움은 생명체 전체의 본질이기 때문에 딱히 더 생각할만한 이유는 없어요. 단지 꼭 알아야 할 것은 이 두려움이 실제로 닥쳤을 때는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돼요. 만약 이 두려움이 별 것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커다란 착각이에요.

 

정말로 죽음이 눈 앞에 다가왔다면 평소에 찾지 않던 신을 찾고, 평소에 냉소적인 태도도 사라지고, 평소에 왜 그렇게 다들 죽지 않으려고 안달복달하지 라고 생각했던 것도 금세 사라지고 말아요.

 

갑자기 고장 난 비행기에서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죽을 상황에 놓였을 때 그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에요. 그리고 다행히 위기를 겨우 빠져 나왔다면 그때야 자신이 죽음에 대해서 얼마나 착각하고 살아왔는지 알 수 있겠죠.

 

만약 이때조차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삶 자체가 고장 난 것이죠. 생명체에게 있어서 생존의 욕구가 없다는 뜻은, 삶이 너무 힘들어서 사실상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상태란 의미이니까요.

 

 

::존재의 소멸::

 

그렇다면 존재의 소멸은 어떨까요? 비록 이 두려움은 누구나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존재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조차도 사실은 그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뿐이에요. ,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 존재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야 정상이라는 뜻이죠.

 

그래서 만약 정말로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이미 사회적으로 죽은 존재라고 봐야 해요. , 먹고 살기는 하지만 이미 존재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사람인 것이죠. 오늘 당장 죽어도 아무도 그의 죽음을 알지도 못하고, 그 죽음이 사회에 그 어떤 파장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존재니까요. 이것은 분명히 생존하는 것이지만, 인간의 삶이라고 부르긴 좀 그렇죠.

 

존재의 소멸이 두려운 이유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그것이 바로 자신이 경험하고 생각하고 있는 모든 가치의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이에요. , 자신이 소중하게 여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죠. 특히 자신이 기억한 것들, 그 중에서 추억과 관계가 다 사라진다는 두려움이죠.

 

사람들은 누구나 소중한 추억들이 있어요. 부모님과의 추억, 첫사랑의 추억, 남편이나 아내와의 데이트, 소중한 아이와 찍었던 빛 바랜 사진들 그리고 키우는 동안 무척 힘들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기억들이 있죠.

 

행복한 기억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죽음과 함께 그것이 사라져버린다는 두려움이 밀려올 수 밖에 없어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무엇인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 남들은 잘 모르지만 자신은 잘 알고 있는 것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어떤 것들도 다 마찬가지에요. 자신의 죽음과 함께 모두 사라져버리는 것이죠.

 

사람들이 이름을 남기고 싶은 심리도 여기에서 나오죠.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고, 특별히 유명한 사람이 되어서 인류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구 말이에요. 모두 존재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와요.

 

결국 존재 소멸의 두려움은 잊혀짐에 대한 두려움인 것이죠.

 


 

::죽음의 이해 - 가치와 의미::


 


지난 시간에 두려움의 공포를 줄이는 법에 대해서 설명했었어요. 그것은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고, 최선을 다하는 조건을 그리 높게 두지 않는 방법이에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한 일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고 사는 법이에요.

 

하지만 이것이 쉽지는 않죠. 사람은 끝없이 주변에 의해서 자극을 받거든요. 오늘 4시간만 공부해도 충분히 한 것 같은데, 갑자기 8시간 공부한 사람을 만나면 괜히 불안해지는 것이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것 말고 또 하나의 대책이 필요해요. 그것이 바로 죽음의 두려움을 줄이는 법이죠. 하지만 이것은 오직 생각과 이해를 통해서만 이뤄지기 때문에 경험을 통해서 체득할 수 없어요. 그래서 난이도가 매우 높아요.

 

그럼에도 이것에 대해서 충분히 많은 생각을 하고 그래서 죽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삶은 한 단계 성장을 할 수 있어요.

 

, 그러면 어떻게 생각만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을까요?

 

그것에 대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죽음의 필수성을 인식하는 것이에요. 사실 이것은 딱히 설명할 필요가 없죠. 그 누구나 죽으니까요.

 

물론 누구나 죽으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이상한 말이에요. 그럼에도 생명의 탄생은 반드시 죽음으로 끝이 나는, 너무나도 당연한 자연의 순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그것을 위해서 죽음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정말로 깊게 이해해야 해요. 삶은 죽음이 있기에 의미가 있다는 역설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죠.

 

만약에 어떤 사람이 생전 처음 본 사람에게 자신의 심장을 꺼내어 다른 사람에 줬다면 그 행위는 엄청나게 대단한 의미와 가치를 가진 것이에요. 자신의 삶을 남에게 준 것이며 상상하기 힘든 희생이죠.

 

그런데 남에게 심장을 줘도 죽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마치 헌혈한 정도라면 말이에요. 물론 헌혈도 남을 위해서 한 일이긴 하지만, 심장만큼은 아니죠아니면 헌혈조차도 아니고 그냥 깎은 손톱 정도라면 어떨까요? 그러면 아마도 욕을 먹겠죠. 그것은 쓰레기니까요.

 

이 차이를 보면 과연 가치나 의미가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그것은 바로 그것이 얼마나 죽음과 가까운지에 따라서 결정되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 비록 소중하지만 두 개가 있어서 하나 정도는 남에게 줄 수 있는 신장과 하나밖에 없어서 줄 수 없는 심장의 가치와 의미는 엄청난 차이를 가지게 되죠.

 

원래 가치라는 말 자체가 바로 '생존' 에서 나와요. 사람들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을 가치가 있다고 하고, 생존에 방해가 되는 것을 나쁜 것이라고 해요. 선과 악도 그렇게 규정이 되고, 장점과 단점도 마찬가지에요.

 

이 모든 것은 생존과 관련이 있어요. 그래서 힘이 센 것보다는 머리가 좋은 것은 장점이 되는 것이죠. 돈을 더 잘 벌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주 오래 전 과거는 달랐겠죠. 그때는 힘이 센 것이 훨씬 큰 장점이 되었을 것이에요. 사냥을 하고 살았던 시대였으니까요.

 

죽음은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유일한 조건이에요.

 

 

::죽음의 이해 - 죽음 이후::

 

사람들이 흔히 죽음을 조금이라도 덜 두려워하기 위해서 쓰는 흔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종교에요. 종교는 인간에 대해서 참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지만 죽음만큼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드물죠.

 

왜냐하면 삶과 죽음을 모두 설명해주기 때문이에요. 영혼의 존재나 천국과 지옥 혹은 윤회와 같은 것들을 통해서 삶의 의미와 죽음의 필연성 그리고 그 후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지를 설명해주죠.

 

그래서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안도를 느껴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이것은 도피죠.

 

설령 종교에서 말하는 것이 모두 진실이라고 해도 말이에요. 왜냐하면 지금 사는 것과 자신이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나 자신이 죽은 후 윤회를 해서 다시 살아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 자신의 죽음은 바로 자신의 죽음이죠.

 

자신이 키우던 아이가 몹쓸 병에 걸려서 일찍 죽을 때 이것을 종교적으로 해석할 수 없어요. 그저 참을 수 없는 슬픔에 눈물이 흐를 뿐이죠. 이것을 어려서 천국에 갔으니 다행이라든가, 다시 윤회를 해서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넘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오히려 죽음은 그 자체를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통해서 두려움을 줄일 수 있어요. 물론 몹시 힘들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없는 듯 굴거나 죽음 이후의 삶을 위안 삼아서 넘기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죠.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도 모르는 진실을 알게 될 수도 있어요. 그것은 바로 삶이라는 과정이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삶이 그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자신이 죽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 수 있죠.

 

물론 매우 어려운 과정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이런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시선은 삶 자체를 완전히 바꿀 수도 있죠.

 

 

::두려움을 넘어서::


두렵고 싶지 않으신가요? 그래서 다 잊고 살고 싶으신가요? , 그렇게 할 수만 있으면 하고 사세요. 하지만 그 누구도 두려움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요. 몸이 조금만 아파도, 기억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생각이 들기만 해도, 실수 하나만 해도 마음 속이 철렁하거든요.

 

어느 누구도 두려움으로부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어요. 그러니 두려움을 없는 척하고 사는 착각이나 연기는 이제 그만둬요. 그것은 자신의 머리를 모래 속에 박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타조와 다를 바가 없어요.

 

삶을 그냥 막 대충 살고 싶다면 두려움을 계속 부정하고 사세요. 하지만 자신의 삶을 좀 더 멋지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그만 두세요.

 

두려움은 원래 엄청난 에너지를 가졌어요. 인간의 모든 의지력이 바로 두려움에서 나오니까요. 그러니 이것을 부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요. 도망치지만 않는다면, 비록 스트레스를 받긴 하겠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이것을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쓰세요.

 

자신이 가진 두려움을 직시함으로써 삶을 이해하세요.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불필요한 두려움들을 줄일 수 있어요. 자신이 화를 내는 것도, 질투를 하는 것도, 짜증이 나는 것도, 불안한 것도, 귀찮은 것도 모두 그저 두려움으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들이에요.

 

그러니 그런 개별 감정들 하나하나를 상대하는 것에 괜한 시간낭비 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것이 가능해질 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하는 것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능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에요. 그것은 바로 너그러움과 신뢰이죠.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으니 가능해지는 것이에요.

 

두려움은 명확한 상대에요. 그래서 오히려 상대가 쉽죠. 대신 두려움을 상대 할 때는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는 점만 문제에요. 하지만 제대로 상대하고 나면 두려움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것이 돼요. 그 과정이 반복되면 될 수록 두려움은 점점 줄어들고 행복은 점점 커질 것이에요.

 

행복의 비법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자신의 두려움과 맞서 싸우는 것이죠. 물론 그것을 회피하면 바로 그 순간만큼은 행복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시간은 언제나 짧고 그 사이에 두려움의 크기는 더욱 더 커져 버리고 말죠.

 

그러니 꾸준히 자신의 두려움을 정면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세요. 그리고 그 노력의 끝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에요.

 

그것은 바로 바로 죽음의 두려움 마저 넘어서는 것이죠. 물론 당장은 힘들겠죠.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그것을 향해 나가보세요. 그 전체적인 과정이 자신을 자유롭게 해줄 것이에요. 진정한 자유 말이에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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