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확증편향

아이루다 2018. 2. 3. 14:43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아마도 이 말이 확증편향이란 단어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일 듯싶다. 그리고 이런 심리적 현상은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 누구도 예외는 없다.

 

그래서 냉정히 말하면, 믿음, 신념, 가치관, 사상 등도 모두 일종의 확증편향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에 대한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욱 더 그렇다.

 

일반적으로 확증편향 현상은 그다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두려움의 대상은 바로 '미지의 것' 이기 때문이다. , 사람은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마주치게 되면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뭐든지 확실하게 알고 싶어한다.

 

그래야 매 순간에 빠르게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생을 뽑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이 지원을 했을 때 과연 누구를 뽑아야 더 나은 선택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사장님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과거 경험에 나이가 많은 사람이 능숙하고 책임감이 있었던 경험이 있었다면 당연히 나이라 더 많은 사람을 뽑을 것이다. 반대로 나이가 적은 사람이 빠르고 상황 대처능력이 좋았다는 경험이 있었다면 나이가 적은 사람을 뽑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경험이 없다면, 고민이 길어질 수 밖에 없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능숙하고 책임감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결국 사람에 따라서 다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이 빠르고 상황 대처능력이 뛰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사람에 따라서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그것을 판단한다. 그래서 또 다른 누군가는 아르바이트 생이 나이가 많으면 게으르고 요령만 피운다고 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아르바이트 생을 젊은 사람을 쓰면 자주 지각을 하고 툭하면 그만 둔다고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아주 짧은 경험인데도 그렇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그런 확신을 가지는 이유는, 주변에서 자신과 비슷한 이야기를 듣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친구 모임에 나가서 최근에 뽑은 아르바이트 생이 젊은데 자주 지각을 해서 고민이라는 말을 털어 놓으면, 친구들 중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만 이야기를 한다. 지각만 하는 정도면 어떠냐고 한다. 자신이 쓰는 젊은 아르바이트 생은 지각도 하고 돈도 훔치는 것 같다고 한다.

 

이렇게 어떤 불행의 경험을 이야기 하면, 주변에서 그것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주로 비슷한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 반대 의견, 즉 젊은 사람을 썼더니 동작이 빠르고 상황 대처능력이 좋다고 하면 싸움이 벌어진다.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 경험으로만 그렇게 판단한다고 비난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게 되면, 이제는 누구나 처음 말을 꺼낸 사람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만이 입을 연다. 그러니 당연히 그런 경험들은 확실한 현상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것이 바로 확증편향이 이뤄지는 과정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젊은 아르바이트 생의 지각 문제로 인해서 골머리를 앓던 사장은 어느 날 신문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다니던 회사를 너무도 쉽게 그만두는 내용을 다룬 쓴 기사를 보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요즘 젊은이들은 책임감이 부족하고 끈기가 없어' 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젊은 사람들 전체를 두고 그런 확증편향을 만들어 낸다. 자신들이 자라던 힘들었던 그 시절과 달리 요즘 애들은 풍족하게 자라서 끈기가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다음 친구들 모임에서 이야기 하면 놀랍게도 다들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정말로 그들이라고 해서 젊은 시절에 남달리 끈기가 있었고 책임감이 있었을까또한 젊은 사람 몇 명을 보고 한 판단과친구들이 동조를 해주고 신문 기사로 그런 비슷한 내용이 다뤄지면 정말로 그런 것일까?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번이라도 확증편향의 덫에 빠진 사람은 거의 평생 동안 그 안에서 허우적대다가 삶을 마감하게 된다. , 다시는 새롭게 그 문제를 바라 볼 경험을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수 많은 선입견들이 만들어진다. 또한 그런 선입견은 또 다른 사람의 선입견과 합쳐져서 결국 신념화가 되고, 확고한 믿음이 되면, 부정할 수 없는 사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제 삼자의 눈으로 보면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지만,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또 모이면 마치 그것이 진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확실한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확증편향을 가지고 싶어하는 심리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자신에게 정말로 우연히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서 생겨난 어떤 확증편향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필요한 판단 기준이 생기게 되면 그때부터가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확증편향은 바로 배타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자에 대한 잘못된 확증편향을 가진 남자는 여자를 혐오하는 사람이 되기 쉽고, 반대로 남자에게 잘못된 확증편향을 가진 여자는 남자를 혐오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사실 요즘 인터넷에 이런 여혐과 남혐은 넘쳐나다 못해 파괴적이기까지 하다. 서로에 대한 배타성이 정말로 심각해질 정도란 뜻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 이 세상은 수 많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다. 물론 그 중에서 실패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정말로 행복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의지하면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좋다. 그리고 둘보다는 셋이 더 좋다. 사람은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날 수록 점점 더 행복해진다.

 

그런데 그렇게 서로에 대한 잘못된 확증편향을 가진 채 서로를 비난하고 혐오한다.

 

남자는 돈만 밝히고, 얻어 먹으려고만 하며,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하는 여자를 혐오한다. 여자는 외모만 중요하게 여기고, 기득권을 누리며, 언제라도 힘이 약한 여자에게 나쁜 짓을 하려는 남자를 혐오한다.

 


실제로 그런 여자들이 있고, 그런 남자들이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안 그런 여자들이 있고, 안 그런 남자들이 있으며, 사실 이 문제는 남자와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인간의 문제일 뿐이다.

 

인성이 나쁜 존재가 우연히 여자로 태어났고, 인성이 나쁜 존재가 우연히 남자로 태어난 것이다. 남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인데 우연히 그런 성으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인성이 쓰레기 같은 존재는 남자나 여자나 모두 존재한다. 진상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들은 남자, 여자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고 하기에 그런 편견이 생겨나고, 확신으로 바뀌며결국 서로의 성에 대한 혐오로 바뀐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자신에게 어울리는 제대로 된 짝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인간이란 종이 매우 똑똑한 줄 안다. 사실 그래 보이기도 한다. 몇 십 년 전에 이미 달나라를 다녀왔고, 우주의 기원에 대한 비밀을 캐고 있다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작품들을 창작하기도 하고, 이해도 하기 힘든 수학 문제를 척척 풀어내기도 한다.

 

그러니 똑똑해 보인다. 그런데 인간이 똑똑하다는 것은 그저 같은 인간들 기준일뿐이다. 또한 지구 상에서 살고 있는 다른 어리석은 동물들과 비교해서 그럴 뿐이다.

 

개나 고양이도 단세포 생물에 비하면 말할 수 없이 똑똑하다그렇다면 개나 고양이는 얼마나 똑똑한 것일까? 또한 사람은 얼마나 더 똑똑한 것일까?

 

인간이 똑똑하다는 잘못 알려진 사실로 인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인식체계에 대한 의심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제대로 따져보면 인간의 인식 오류는 너무도 많아서 그것을 알고 나면 자신에 대한 의심병이 생길 지경이다. 하지만 각자 당사자는 자신의 경험, 인식, 생각에 대해서 꽤나 자신 있어 한다.

 

경험했으니까, 주변에서 긍정해주니까, 어떤 학자가 발표했으니까, 누가 반론을 따로 제기하지 않았으니까 옳다고 믿는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신의 믿음처럼 결과가 나오면, '그럼 그렇지, 내가 뭐라고 했어' 라면서 의기양양해 한다. 하지만 반대가 나오면 슬그머니 못 본척한다.

 

우리가 매일 딛고 있는 땅조차도 움직인다. 다들 자신들의 소유라고 굳게 믿고 있는 집도 그저 인간들끼리의 약속이다. 지구도 영원하지 못하며, 태양이 영원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단 하나도 확실한 것이 없다.

 

그나마 종교를 믿는 분들은 신을 확실한 존재라고 믿고 있지만, 그 신을 믿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무조건 신뢰할 수도 없다.

 

더욱이 신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그저 자신의 두려움을 대신 처리해줄 대상이 필요했던 것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스스로 신을 믿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사실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두려움을 맡겨둘 대상으로 신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확증편향을 한다.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을 확증편향 한다. 자신의 살고 있는 집을 확증편향 한다.

 

모든 것은 확률적으로만 맞을 수 있지만자신이 일단 믿게 된 것은 100% 믿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로 100% 믿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확률임을 의식은 못해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의 모순으로 인해서 그 옛날 그리스의 한 철학자는 '너 자신의 무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라고 말했다그가 바로 유명한 소크라테스이다.

 

비록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세상에 대한 끝없는 의문만이 그나마 틈만 나면 생겨나는 선입견, 고정관념, 확증편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며느리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시어머니는 악마와 같은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있고, 시어머니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며느리가 악마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모두는 그저 인간이다. 똑똑하지만 결국엔 어리석은 인간이다. 그래서 불안하기 때문에 자꾸 뭔가 확신을 갖고자 한다. 그런 두려움이 모든 것의 근본적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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