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상처의 깊이

아이루다 2017. 12. 27. 17:18

 

매일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이때 사람들이 경험하는 상처는 뭔가 매우 힘든 어떤 것 같지만, 사실은 별 것이 아니다. 감정적인 작은 요동, 특히 나쁜 감정의 요동이 바로 상처이다.

 

사람들은 매일같이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 사이의 끝없는 반복을 경험하고 살아간다. 그러니 사람들이 매일 상처를 경험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상처를 구분해서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복구가 가능해서 상처를 경험했다는 것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의 영구히 남아서 사람 자체를 어떤 식으로든 변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때 이것을 구분하는 기준점은 상처의 내용과 심각성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쉽게 말해서 어린 시절에 남들 다 받은 사탕 하나를 받지 못한 것이 평생 동안의 상처가 되기도 하고,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도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완전히 치유가 되기도 한다. , 단순한 사탕 하나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아주 큰 차이가 있음에도 실제로 복구 불가능한 상처는 사탕으로부터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처의 특징으로 인해 이 두 가지 말고도 추가적으로 하나가 더해지게 된다그것은 바로 거의 영구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상처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본인은 아무런 기억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경우이다.

 

이것은 의식적으로는 상처에 도달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 상처 자체가 완전히 무의식의 영역에서만 발생하여 결국 의식적으로는 그것의 존재 유무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을 뜻한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는 상처나, 자신이 상처를 입었음을 명시적으로 알고 있는 상처는, 그 상처의 크기나 강도가 얼마나 크냐에 상관없이 일단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 가능하다.

 

상처에 관한 진짜 문제는 바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게 침전되어서 아무런 기억도 못하는 상처들이다. 이것들은 그 상처가 생긴 순간부터 끝없이 당사자의 정신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낯선 사람으로부터 당한 폭력은, 그 사람을 평생 동안 낯선 사람만 보면 두려움을 느끼거나 혹은 모르는 사람을 너무 심하게 경계하는 태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당사자는 과거의 기억을 전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래 그런 성격이라고 믿고 살아가게 된다.

 

상처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으니 당연히 그렇다물론 이것을 성격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실은 어린 시절에 당한 나쁜 기억으로 인해서 그 사람이 영구히 변형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신의 삶 자체가 변형될 수 있는 수준의 상처를 아예 기억조차 하지 못할까? 만약 이것만 제대로 파악을 할 수 있어도 현재를 살아가는데 겪는 수 많은 성격적 어려움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사실 각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종류의 집착들은 모두 과거의 상처를 의미한다. 관계에 대한 집착, 돈에 대한 집착, 성공에 대한 집착, 인정에 대한 집착, 잘남에 대한 집착, 이성에 대한 집착, 지식에 대한 집착, 일에 대한 집착, 이득에 대한 집착 등등, 수 많은 종류의 집착이 바로 상처의 경험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물론 집착은 무엇인가를 이룰 수는 있게 만들긴 한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집착은 행복과 거리가 멀다. 사실 그것이 행복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그것은 집착이 아니라 열정이나 선호도와 같은 단어로 표현된다.

 

집착은 인간이 정상적인 상태일 때 나타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화가 나서 주변 물건을 때려 부수는 것과 같다. , 자신을 스스로 더욱 더 불행하게 만드는 행위이다.

 

그러니 과거에 자신이 경험한 상처를 기억하고 이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럴 수 있을 때, 지금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 많은 문제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불행이 아닌, 행복을 위해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신의 상처를 기억하지 못할까?

 

첫 번째 이유는 분명히 상처를 받았지만, 그것을 전혀 계산해내지 못해서 생겨난다. , 무의식은 이미 상처를 입고 있는데, 의식은 상처를 받았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 기분은 나쁘지만, 왜 기분이 나쁜질 알길이 없으니 그냥 잊혀지고 만다.

 

특히 어린 시절의 상처들이 그렇다. 크리스마스 날, 다른 모든 아이들은 선물을 받았는데 혼자만 선물을 받지 못해서선물을 나눠 준 사람에게 왜 자신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느냐라고 물었을 때, 너는 못생겨서 안 줬다는 말을 들으면 그 순간에 아주 큰 상처를 받는다.

 

만약 어른이 되어서 이 말을 들었다면 무척 크게 화를 냈겠지만, 어린 마음에는 선물을 준 사람의 말이 옳은 말인지, 틀린 말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뭔가 억울하면서도 아무 말 하지 못하고는 그냥 물러서게 된다. 그리고 사탕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진다. 이해할 수 없는데 기분은 나쁘니 잊는 것이 최고인 것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자신도 모르게 외모에 대한 집착이 생겨날 수 있다. 또한 크리스마스를 매우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이런 경험을 한 후 성인이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외모 집착증이 생기거나 혹은 외모를 꾸미는 사람에 대한 경멸감이 생길 수도 있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반응이지만 모두 같은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가지 상반된 입장은 모두 어린 시절에 들었던 '못생겨서 선물을 주지 않는다' 라는 말로 인해서 생겨난,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처로 인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상처들은 특히 부모로부터 받은 경우가 많으며, 형제간의 편애나 자신에 대한 무관심 혹은 다른 부모들과 비교 등을 통해서 생겨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외에는 학교 선생님이나 친척 등으로부터 받은 경우가 있지만 보통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에 비하면 그 영향의 범위가 좁은 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스스로 상처를 부정하는 경우이다. , 상처를 받은 순간은 기억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상처가 되었음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처를 인정하는 순간, 그것이 진짜로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했는데, 약속 시간이 한 시간 늦춰졌지만, 자신에게만 연락을 해주지 않아서 괜히 한 시간을 더 기다린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이것은 그냥 넘길 수도 있는 별 것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꽤나 기분이 나쁜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때 본인은 이것을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하는데, 이것이 별 것이 될 경우, 자신이 왕따를 당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 그러니 반드시 별 것 아니어야 한다. 그래서 그냥 자신에게 생긴 마음의 생채기를 그냥 무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친구들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고 더해서 심한 경우, '내가 너희들 아니면 친구가 없냐'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친구들 무리로부터 빠져 나오려고 하게 된다. 그리고는 나중에 그 친구들 무리만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이런 식으로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상처 자체를 부정하게 되면, 그 문제가 심각하게 확대될 수 있다어쩌면 단순히 운이 없어서 일어난 사건이 주변 사람들과의 단절의 가져오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드는 사건으로 확대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만날 사람들이 없어서 외롭고 우울한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처음부터 그것이 자신에게 상처가 되었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자신이 상처를 받았음을 친구들에게 말하고 위로를 받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예상과 달리 아주 황당한 반응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뭐 그런 일로 유난을 떠느냐 라는 반응을 얻는 것이다. 이럴 경우라면 그 친구들의 무리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 이런 식의 결별은 그저 자신에게 불필요한 사람들을 끊어 내는 것이기에 그 순간은 힘들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속 시원한 결정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게 된다.

 

, 잠시 상처가 생겼지만, 그로 인해서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맺는데 시간, 노력, 돈을 쓸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이유는 매일 생채기가 나고 있는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빠르고 쉽게 해결해버리려고 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 기분이 나쁘면 최대한 빨리 다른 기분 좋은 일을 함으로써 그런 감정 자체를 잊어버리려고 한다.

 

이 해결책은 많은 성인들이 선택하는 방법인데, 매일 끝없이 상처를 받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그 자신들만의 나름대로의 해결책 중 하나이다.

 

사람들은 회사에서, 모임에서, 집에서 등등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라면 거기에서 끝없는 대화가 오가고, 그 과정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상처를 받을 수 있는 말들을 듣게 된다. 일의 실수가 있다든지, 모임에서 놀림의 대상이 된다든지, 집에서 빨리 시집을 가라는 소리를 듣는다든지 할 때 그렇다.

 

그러면 기분이 나빠지고 우울해진다. 그러니 친구를 만나서 신나게 수다를 떨거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아주 가끔은 여행을 떠남으로써 그런 나쁜 기분들을 없애려고 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꽤나 잘 통한다. 문제는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다른 감정으로 덮어써져 버린다는 점이다. , 매일 칼자국이 나고 피가 나는데 그 순간마다 밴드를 붙여서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당장 상처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은 상처를 입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일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매일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려고 애쓴다. 이것이 어느 정도 패턴화 되면, 상처의 크기에 따른 해결책들이 대부분 정해져서 마치 공식처럼 적용되기도 한다.

 

, 기분이 조금 나쁘면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고, 좀 더 나쁘면 맛난 것을 먹고, 더 나쁘면 영화를 보고, 참을 수 없을 만큼 나쁘면 술을 마시는 것이다.

 

상처는 기억을 하지 못하든, 부정을 하든, 재빠르게 없는 듯 만들든 상관없이 상처를 입은 당사자에게 끝없이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어떤 상처들은 그 사람을 아주 심하게 변형시켜버리고 만다.

 

그래서 집착이 생기고,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만든다. 이것은 결국 불행한 삶을 의미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자신이 상처를 입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 자신의 모습이 원래 그런 존재라고 여기게 된다. , 상처를 입고 변형된 자신을 스스로 정체성화 시킨다.

 

이런 절차가 반복되면서 결국 훨씬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할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그 무엇보다도 상처는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종류의 나쁜 감정들을 세밀하게 바라봐야 한다. 그 기분 나쁜 감정들을 잊거나, 부정하거나, 재빠르게 지워버리려고 하게 되면 결코 그것을 바라 볼 시간을 갖지 못한다.

 

삶은 매 순간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만, 삶은 끝없는 성장이 이뤄질 때 행복할 수 있다. 그러니 당장 자판기에서 행복을 선택하듯 살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진심으로 바라보면서 천천히 한 걸음씩 나가야 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행복한 삶을 사는 가장 중요한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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