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이유

아이루다 2017. 12. 6. 08:13

 

사람들은 누구나 매일 말을 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대부분 평범한 대화를 하지만, 어떤 특별한 사람들은 청중들 앞에 서서 뭔가를 강연하는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직업적으로 이뤄지기도 하고, 특강이란 형태로 비정규적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글을 쓰는 일도 대부분 그저 개인적 사건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는 것에 머무르지만, 어떤 특별한 사람들은 자신이 쓴 글을 책이란 수단을 통해 출판을 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소수의 사람들은 강의라는 수단을 통해서 혹은 책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이런 강의와 책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이 된다. 첫 번째는 지식의 전달이다. , 어떤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그것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런 형태의 지식은 꽤나 도움이 되기도 하고,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주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한다.

 

두 번째는 생각을 유도하는 것이다. 여기에 속한 강의나 책들은 딱히 지식을 전달하지는 않지만, 어떤 사건, 현상 등에 대해서 좀 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흔히 이런 종류에 속한 강의나 책은 주로 인문학으로 분류가 된다. 특히 철학이다.

 

여기에서 그 목적이 명확한 지식의 전달 역할을 하는 것들은 빼고, 두 번째 생각을 유도하는 강의와 책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왜 강연자나 저자들은 그런 강의를 하고 책을 낼까?

 

사실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다가 보면 주옥 같은 내용들이 많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나 태도 등에 대한 조언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강연 중 한 부분이나 혹은 책의 한 구절로 인해서 삶이 변화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것으로 당장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삶이 그려가던 궤적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작용을 많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강연을 하고 책을 쓰는 사람들은 어떨까? 사람들에게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그 당사자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연이나 책을 통해 접하는 내용을 볼 때, 강연자나 저자가 말하는 대로, 글 쓴 대로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 그런 식으로 강연을 하고 책을 쓰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쓰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확신 있게 설명하고 있는 것과 진짜로 자신이 그것을 신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것은 전혀 다르다. 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정말로 법을 다 지키고 사는 것은 다른 일이란 뜻이다.

 

, 사람들의 믿음과 달리 강연자나 저자는 자신이 한 강연이나 책의 내용과는 별로 닮지 않는 삶을 살 가능성이 사실 상 높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가정을 하는 것에는 한 가지 확실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사람은 자신이 정말로 넘어 선 것에 대해서는 뭔가 말하거나 글로 쓸 생각이 나질 않는다. , 뭔가에 대해서 끝없이 말하고 글을 쓰고 있다면 여전히 그 문제 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좌로 쏠려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로 이동했다면, 이것은 해결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좌에 있다가 우로 이동한 후, 왜 다들 좌에 머물러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결국 아직도 역시 좌에 묶여 있는 것이다.


삶에 있어서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여전히 돈에 묶여 있는 것이다. 삶을 사는데 있어서 남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여전히 거기에 묶여 있다는 뜻이다.


그 사람이 정말로 그것을 찾았다면, 왜 남들 앞에서 강연을 하고, 책을 쓰고 있겠는가?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았는데 이 짧은 인생에서 그런데 시간을 쓸 여유가 어디있는가? 혹시 강연을 하고 책을 써서 남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서 그런 것일까?

 

모든 것은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초월의 단계에 갔을 때 비로소 그것이 해결된 것이다.


산에 오르는 전에, 산에 갔다온 후에는 말과 글이 나온다. 하지만 정작 산의 정상에 서 있는 순간엔 아주 잠시나마 침묵에 빠진다. 그리고 짧은 초월을 경험한다. 눈 앞에 펼쳐진 장엄한 광경에 자연스럽게 입이 막힌다. 너무도 행복할 때, 너무 힘들 때, 너무 감동을 했을 때, 너무 슬플 때도 말이 멈춘다. 오직 침묵 속에 머문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안에서 오래 머물 수는 없다.

 


완전히 초월된 것들은 즉시 머리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이렇게 머리 속에서 사라진 것을 어떻게 말로 할 것이며글로 쓸 수 있을 것인가? 결국 누군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글로 쓴다는 것은 여전히 그 안에 갇혀 있다는 뜻이 된다.

 

자신의 내면에 해결되지 못한 어떤 것이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이다.

 

물론 그것을 넘어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경우이다. , 스스로 먼저 말을 꺼내지 않지만, 누군가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 과거에 있었던 자신의 기억을 되살려서 조언을 해주는 경우이다.

 

사실 그래서 과거에 있었던 성인들로 일컬어지는 분들은 누구도 책을 남기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도 그랬고, 공자도 그랬다. 예수님도 그랬고 부처님도 그랬다. 노자 역시도 누군가 묻자 그제서야 도덕경을 써줬다고 한다.

 

이런 분들은 모두 초월한 분들이었다. 그래서 책을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분들의 제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초월한 분들의 말씀은 모두 제자가 기록한 것뿐이다.

 

초월한 존재들은 입이 막히고 글을 쓸 수 없게 된다. 당연하다. 더 이상 질문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을 때 무슨 질문이 떠오르겠는가? 무엇이 머리 속에서 머물겠는가?

 

그러니 무엇인가 말하고 글로 쓰고 있다면, 여전히 자신이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강연자나 저자가 마치 자신은 강연의 내용이나 글의 내용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말이 사라지고 글도 사라져야 옳다.

 

그런 면에서 지금 이 글 역시도, 이 블로그 전체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쓰여진 모든 것들은 내가 여전히 그것을 붙잡고 있는 것들이다.

 

사실 말이 쉽지, 초월은 너무도 힘든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왼쪽이 싫으면 오른쪽으로 가려고만 할 뿐이니까 말이다. 억압이 싫으면 자유를 꿈꾸고, 가족이 싫으면 혼자 살고, 사람에게 상처를 받으면 관계를 끊는다. 사실 사람들의 해결책은 모두 이런 식이다.

 

, 딱히 다른 해결책도 없어 보인다.

 

아무튼 그러니 계속 머리 속에 맴돈다. 그러니 자꾸 강연을 하고, 책을 쓴다. 말이 많아지는 것도 특징이다. 스님들이 한다는 묵언수행은 수행이 아닌, 결과이어야 한다. , 자동으로 입이 다물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오히려 나이를 먹을 수록 점점 더 말이 늘어만 간다. 이것은 거꾸로 가는 것이다. 줄어들기는 커녕 늘어난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길을 접어드는 것이다.

 

중세 스콜라 철학의 최고봉으로 알려졌고 또한 엄청나게 많은 책을 쓴 것으로 유명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단 한 차례의 초월을 경험한 후, 자신의 책들은 모두 지푸라기에 불과하다는 말을 남기고는 모든 저술 활동을 멈추고 말았다.


쉽지 않는 일이긴 하다. 그러니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말과 글을 줄이는 것이다. 스스로 가진 부족함을 자각하고 그것을 자꾸 말과 글로써 해결하지 않으려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각자를 좀 더 깊은 성찰의 단계로 이끌어 줄 것이다. 이 표현 역시도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나 자신을 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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