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현명한 여자의 남자 사용법

아이루다 2017. 9. 5. 08:53

 

정말로 꽤나 많은 여자들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많은 결혼한 여자들이 남편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산다그러다 보니, 여자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 때, 가장 많은 공감을 받는 내용이 바로 남편에 대한 불만이 된다. 반면에 남자들, 즉 남편들은 남자들끼리 만나 아내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

 

왜 이런 일방적인 차이점이 생겨나는 것일까남자가 여자에 비해서 좀 더 관대해서 그럴까? 물론 절대로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차이는 진짜로 어디에서 올까?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 사이의 대화 주제 자체가 차이가 있긴 하다. 그래서 그런 면도 있지만, 그러기엔 너무 일방적으로 남자 쪽이 여자들의 불만 대상이 된다.

 

그런데 여자들은 도대체 무엇이 가장 불만일까? 집안일? 시댁? 육아? 경제 문제? 물론 이것들은 모두 문제이다. 그런데 정작 여자들이 가장 큰 불만을 가지는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이 바로 '공감능력 부족' 이다. , 집안일을 안 도와줘서 불만도 생기지만, 힘든 집안일을 혼자 하는 것을 남자가 전혀 몰라주기 때문에 그렇다. 시댁문제도 마찬가지다. 시댁과 갈등이 있더라도 남자가 확실하게 자신의 편을 들어주면 훨씬 낫다. 육아 독박도 그렇고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걱정이 되더라도 남자가 자신의 불안함을 이해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된다.

 

, 여자들은 수 많은 어려움이 있어도 남자가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해주기만 해도 그다지 많은 불만을 갖지 않게 된다.

 

그리고 남자들이 공감능력이 뒤떨어지는 것은 결코 여자들의 착각이 아니다. ,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서 진짜로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남자들이 가진 문제들은 원래 좀 많다. 주중 내내 계속되는 술자리과도한 취미, 여자 문제, 돈 문제, 시댁 문제 등등 남자들이 일으키는 문제는 정말로 심각하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는 남자와 함께 사는 여자는 무조건 행복할까?

 

그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완벽해도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남자는 어떤 식으로든 여자들에게 불만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여자는 외로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남자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많은 남자들이 그렇다. 일반적으로 남자를 이성적 존재라고 하고, 여자를 감정적 존재라고 하는데, 남자들 중에서도 분명히 감정적인 존재가 있다.

 

문제는 남자가 감정적 존재라고 해도 그것이 바로 공감능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 그저 감정적 일뿐, 공감능력은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사실 냉정히 말하면 여자들도 그렇다.

 

즉, 감정적인 것과 공감적인 것은 서로 다르다. 사실 감정적인 남자들은 많다. 화도 잘 내고, 잘 삐치고, 질투심이나 열등감에 휩싸인 채 살아간다. 이것은 그저 좋은 감정에 대해서 둔한 것일 뿐, 나쁜 감정에 관해서는 남자들도 여자들 못지않게 감정적이다. 오히려 더 감정적인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왜 여자들에 비해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그것이 그저 단순히 얼마나 감정적이냐의 문제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면 본질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첫 번째는 남자와 여자의 타고난 성향의 차이점에 대한 부분이다그리고 두 번째로 사회적으로 어떻게 교육을 받았는지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사실 남자들의 공감능력이 부족한 이유는 이 둘이 동시에 일어나기에 발생하는 것이다.

 

일단 첫 번째로 타고난 부분을 보자.

 

남자들은 예전부터 먹을 것, 즉 경제를 책임지는 입장이었다. 이런 역할 분담은 여자들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키워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해진 것이다. 요즘 시대에는 육아에 대한 보조가 많이 이뤄져서 여자들도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에 다닐 수 있었지만, 예전은 거의 불가능했다.

 

먹을 것을 구해야 하는 남자들은 주로 사냥을 했다. 그리고 사냥을 하려면 당연히 무리지어서 행동하는 것이 유리했다. 자연계에서 그다지 강자가 아니었던 인간이 사냥에 성공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했는데첫 번째가 무리를 지어서 사냥하는 것이고두 번째가 활이나 창과 같은 무기였고, 세 번째가 바로 전략이었다.

 

이 세가지가 잘 맞물려 돌아갈 때, 그 사냥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남자들은 무리 짓기를 좋아한다. 끝없이 모임을 만들고 거기에서 소속되어 살아간다. 또한 수 많은 도구들, 즉 지금은 활이나 창이 아닌, 전자제품 쪽으로 많이 치우치지만, 아무튼 뭔가 새로운 기기만 보면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과거의 이런 모습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무리의 리더가 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남자들이 끝없이 경쟁을 하고, 서열화를 하는 것도 모두 과거의 이런 오래된 습성에서 유래하고 있다.

 

전략을 세우고, 전체의 방향을 끌기에 공동 작업을 한 후더 많은 고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도 그대로 유지가 되고 있다.

 


아무튼 리더에 의해 전략이 세워지면 무리의 구성원들은 각자 역할을 맡아서 했을 것이다. 몰이를 하는 사람들, 중간에서 사냥감이 최종 목적지로 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 마지막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사람들 등등, 각자마다 고유한 역할이 있었다.

 

 전체적인 과정을 살펴보자. 여기에는 감정적인 부분은 없다. , 모두 이성적인 판단이다.

 

강한 자가 리더가 되는 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지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감정은 싫어해도 이성은 따를 수 밖에 없다. 역할을 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으로 정해진다. 무리를 지어서 사는 것 자체가 감정적 행위라기 보다는 이성적 행위이다.

 

, 남자들은 먹을 것을 효과적으로 얻기 위해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을 주로 훈련해왔다. 그런데 이것만이 끝이 아니다.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수컷의 타고난 운명 때문이다.

 

수컷은 자식을 남기는데 있어서 철저히 약자이다. 사실 정자만 제공할 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아이를 잉태하고 낳는 것은 오직 암컷의 몫이다. 인간도 똑같다.

 

만약 여자가 100명에 남자가 한 명 있어도 그 집단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남자가 100명에 여자가 한 명이면, 그 집단은 망한다.

 

집단 생활을 하는 개미나 벌도 여왕개미나 여왕벌은 있지만 왕개미나 왕벌은 없다. 일하는 개미나 벌도 모두 암컷이다. 수벌이나 수개미는 여왕개미나 여왕벌이 알을 품을 때만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그 후로는 모두 무의미해지고 죽는다.

 

그래서 수컷은 모두 공격적 성향을 띌 수 밖에 없다. 수동적이면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는다. 암컷은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수컷의 삶은 고달프다. 그래서 그리 순한 초식동물들도 번식기가 되면 싸운다. 벌레들 조차도 싸운다.

 

남자들에게 있어서 모든 남자들은 경쟁자가 된다. 극단적으로 단 한 명만 남아도 되기 때문에, 이 경쟁은 끝나지를 않는다. 그래서 자연계에서는 수컷과 암컷의 비율이 일반적으로 3:7 수준이다. 심하면 1:9가 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결혼 제도는 남자들에게 매우 유리한 제도가 된다. 일부일처제는 모든 남자들이 자식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줬다.

 

남자들에게 있어서 삶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당장 무리에서 쫓겨나거나 인정받지 못하면 굶어 죽고, 여자와 맺어지지 못하면 자식조차 남기지 못한다. 그래서 남자들은 최대한 이성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이때 정말로 중요한 것 하나가 바로 패자에 대한 공감은 지워야 한다는 점이다. 패자를 돌보다간 자신도 패자가 될 수 밖에 없다. , 모든 남자는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금도 남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들은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거의 태생적으로 불가능하다. 남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립을 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판단이다. 남의 판단은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알 수가 없다. 모든 것은 홀로 버텨야 한다. 또한 기회가 될 때마다 승자를 바라보면서 끝없이 도전해야 한다그래서 삶은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 된다.

 

이러다 보니 남이 쓰러지는 것이 마음 아프긴 해도, 딱 거기까지 이다. 아무리 동료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할 때는 버리고 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현 시대는 이렇게 비정한 세대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남자들의 DNA에 새겨진 이런 본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남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잘 공감하지 못하는 선천적인 이유이다. 더해서 이것이 끝이 아니다. 후천적인 이유도 있다. 남자는 남자로 태어나지만, 또한 남자로 자라난다.

 

남자들이 사회적으로 강요 받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바로 문제 해결사이다. ,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자리에서 우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행동한다.

 

부부가 자고 있는데, 밖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나면, 아내는 남편을 깨운다. 그러면 남편은 뭐라도 하나 들고 밖으로 나가서 그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한다. 물론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세니까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자가 무섭지 않은 것도 아니다. 똑같이 무서워도 남자는 무서움에 떠는 것이 아닌, 그 무서움을 해결해야 할 역할을 맡는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자란다. 남자들은 문제를 보면 해결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남자들끼리의 경쟁의 승부는 문제 해결력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남자들이 모인 자리에 한 여자가 곤란함을 겪으면, 남자들은 서로 그것을 해결하려고 경쟁한다. 여자가 예쁘면 예쁠수록 더욱 더 그런다. 그러다 보니, 예쁘지 못한 여자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심한 것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들이 그 못생긴 여자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그저 예쁜 여자 쪽으로 끌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니, 외모가 떨어지는 여자들은 상처를 받고 불만을 갖지만, 또한 그것을 밖으로 꺼낼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런 남자들의 태도는 의무가 아닌, 배려이기 때문이다. 배려를 해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진상이 되는 지름길이다.

 

아무튼 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해결사적 면모를 과시함으로써 존재감을 얻고 자존감이 높아진다.

 

이와는 달리 여자들은 문제 해결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소극적이다. 무서우면 울고, 곤란한 상황에 놓이면 그냥 어쩔 줄 몰라 한다. 감정은 끝없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해 한다. 당연히 모든 여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여자일수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데 사실 여자가 그러면, 마치 남자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결혼 전에는 부모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나이를 먹고는 자식에게 그 역할을 맡긴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서 극단적인 문제 해결사가 되지는 않는다.

 

물론 젊어서 남편을 잃고 어쩔 수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운 엄마들의 경우에는 남자 못지않게 문제 해결력이 강해지는 경우도 있다. 더해서 남자들처럼 문제 해결력을 자신을 증명하는 것으로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쓸데없는 노력을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주 실제적인 문제들만을 최대한 현명하게 처리한다.

 

그러다 보니 여자들 중에서 기회가 되어서 직접 문제 해결을 하는 경우에, 웬만한 남자들보다 훨씬 문제 해결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분들이 사업을 하게 되면, 정말로 잘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남녀는 차이가 나게 자란다. 그래서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혼자 산다. , 여럿이 함께 살지만, 결국 혼자이다. 그러니 자신에게 닥친 문제는 모두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게 된다. 설령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게 되더라도 잊지 않고 그것을 갚아줘야 한다.

 

이런 남자들의 특징은 자신의 속마음을 좀처럼 밖으로 꺼내지 않게 만드는 현상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함께 사는 여자들이 이 부분을 많이 답답해 한다. 남자들은 문제가 생기면 골방에 간 것처럼 입을 닫아 버리고 만다.

 

이와는 달리 여자들의 현실은 남자에 비해서 훨씬 평화롭다. 문제가 생기면 달려갈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렇다. 부모가 있고,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다.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서 더 효도를 잘하고, 자식과의 관계를 잘 맺는 이유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여자들에게 있어서 부모와 자식은 단지 혈연이 아니다. 자신을 지켜주는 존재들이 된다. 그래서 오히려 여자들이 더 남자 아이를 선호하는 경향도 크다.

 

아무튼 이런 차이로 인해 여자들은 조금 덜 현실적이다. 그래서 누군가 슬픈 일을 당하면 해결은 해주지 못하더라도 일단 같이 울어줄 수는 있다. 남자들이 그 슬픔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시간에, 여자들은 위로를 해준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문제가 없다. 문제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여자로써는 반드시 감당해야 할 현실 앞에 놓였을 때 남자들의 태도로 인해 여자들의 분노가 폭발한다.

 

여자들은 아이를 낳고 기를 때, 가장 냉혹한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보호만 받던 자신이 처음으로 보호를 해야 할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 여자들은 아이를 기를 때 처음으로 남자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아이가 아플 때, 울고 불고 하는 것은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아이 엄마들은 남자처럼 행동한다. 아이를 잡고 우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 데리고 간다.

 

그럼에도 여자들은 최대한 남자의 도움을 얻으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의 헌신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그런데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문제들이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 자신이 평소에 경험하는 현실에 비하면 여자들이 말하는 현실은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공감능력이 떨어지니 그 순간 여자들이 얼마나 심각한 심적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그냥 남일 처리할 듯 그것을 대한다.

 

이 순간 여자는 깊은 상처를 받는다. 분명히 자기 자식 일인데, 마치 제 삼자인 듯 구니까 당연하다. 자기 자식과 남의 자식이 싸우면 무조건 자기 자식 편을 들어줘야 하는데, 거기에서 잘잘못을 따지고 있다.

 

이러면 여자들이 속에서 열불이 나지 않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남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무리 생활을 할 때, 잘잘못을 제대로 따지는 것은 무리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거기에서 그 대상이 자신의 자식이냐 아니냐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부부가 함께 살아가다 보면 수 많은 문제점 앞에 설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는 서로 입장에 너무 다르다. 여자는 심각하다고 느끼는데, 남자는 별 일 아니라고 느낀다. 남자는 심각하다고 느끼는데, 여자는 왜 그런 것에 신경 쓰는지 이해를 못한다.

 

남자들은 무리 생활을 하고 서열화가 심하기 때문에, 남에게 보여지는 자신에 대해서 목을 멘다. , 체면이나 평판을 정말로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여자들에게 체면이나 평판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자들은 오히려 공감능력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 특징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이나 목적을 서로 어긋나게 만든다. 여자들은 실제적인 해결책을 원하는데, 남자들은 그 문제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다양한 상황까지 모두 고려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의 해결책 방식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방법에는 반드시 여러 가지 고려가 있는 것이 좋다.

 

단지 불필요한 목적들, 즉 체면을 지키는 것과 같은 목표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 된다. 그럼에도 남자들은 그것을 버릴 수 없다. 그러기엔 남자들의 세계가 이미 너무도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이 차이점을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사실 남자 쪽은 없다. 남자들은 이미 너무도 귀가 막혀 있다. 자신의 역할, 입장, 평판, 체면 등에 온전히 가로막혀 있어서 도대체 바꿀 방법이 없다.

 

뭔가 바꾸려면 여자 쪽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남자를 이해해주는 것이다. 남자들은 원래 이런 존재이다. 그러니 그것을 억지로 바꾸면 당연히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그냥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공감의 대상이 아니라, 매우 효율적이고 문제 해결력이 좋은 존재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

 

문제는 여자들은 언제나 남자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길 바란다는 점이다. 하지만 남자는 좋은 도구일 뿐이다. 결코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없다. 하나를 지시하면 하나만 하는 것이 남자이다그러니 그것이라도 할 때 더 잘하려고 노력하게끔 해야 한다. 이것이 현명한 여자의 태도이다.

 

이점을 잘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남자는 냉장고나 세탁기와 같은 좋은 도구이다. 그런데 냉장고에서 세탁기 일을 맡기면 안 된다. , 남자마다 고유한 능력이 있다. 그러니 그것을 최대한 활용해야지, 갖지 못한 능력을 억지로 강요하면 남자는 고장 나고 만다.

 

기본적으로 알아서 해주는 것에 필요한 것은 바로 공감능력이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해야 그것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못하는데 어떻게 알아서 해주겠는가?

 

이것은 여자들의 욕심이다. 남자들이 기능성이 뛰어나면서 여자 수준의 공감능력까지 가질 바라는 것은 너무도 과도한 기대이다운전만 잘해도 좋은 것이다. 남편이 운전을 하면서 옆에서 아내가 하는 말에 공감해주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그러다간 사고가 난다.

 

남자는 잘 사용하면 좋은 도구이다. 인정을 원하니 인정을 해주고, 평판과 체면을 원하니 적당히 칭찬을 해주면서 유용하게 사용하면 된다. 공감은 다른 여자 친구들과 하고, 남편은 그저 잘 사용하면 된다.

 

사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오래된 광고 멘트는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 여자 스스로가 현명해져야 할 것이다. 남자는 늘 사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 점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면 된다. 여자가 잘하는 것이 바로 그 공감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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