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그리스 문명의 시작

아이루다 2017. 6. 26. 09:13

 

그리스 문명은 지금 현재 전 세계를 주류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서양 문명을 구성하고 있는 2대 원류 중 하나로 꼽힐 만큼 그 중요도가 높다. 이 두 개의 원류가 중요한 이유는, 결국 그 후대로 이어지는 삶을 바라보는 방식,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 수 많은 갈등 속에서 서로 합의점을 찾아낼 수 있는 가치관 등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휴머니즘' 이란 말은 요즘에도 아주 자주 쓰이는 문장이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인간 중심주의' 정도가 될 듯 한데, 아무튼 인간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그런데 이 휴머니즘이 바로 그리스 문명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요즘에 그렇게 자주 쓰고 있고 매우 중대한 가치로 여기고 있는 이 말이 바로 그리스에서 기원하고 있다는 뜻이다고대 그리스 문명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렇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미 망한지 백 년이 넘어가는 조선이란 나라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효도가 지금도 사회 곳곳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이런 중요한 가치들은 아무리 많은 세대를 거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새로운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전승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어떤 문명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서양 문명은 크게 헬레니즘과 히브리즘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 중에서 헬레니즘의 출발이 바로 그리스 문명이고, 히브리즘은 이스라엘에서 출발한 유일신 사상으로 보면 된다.

 

헬레니즘은 우선 인간이 중심이 되고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문명이며 신은 그저 불가사의한 자연을 해석하는 역할로 끝났다. 예를 들어서 그 당시에는 그 원리를 전혀 알 수 없는 현상이었던 번개는 제우스가 사용하고 있는 무기이다, 뭐 이런 식이다.

 

그래서 헬레니즘은 현생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자연은 인간이 현생을 살기 위해서 도움을 주는 존재로 정의가 된다. 한 마디로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으면 되는 것이다.

 

반대로 히브리즘은 신이 중심이 되고 인간은 신의 피조물로 정의가 된다. 그로 인해서 인간은 신의 의지 안에 종속되게 되는데, 그 무엇보다도 절제가 강조된다. ,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다.

 

히브리즘은 헬레니즘과 다르게 내세를 중요하게 여긴다. , 현생은 죽은 후의 삶, 즉 내세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으로 설명이 된다. 그러니 현생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생에서 최대한 신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석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조는 수천 년을 걸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승되어서 결국 지금 시대에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서양 문명이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간 시기엔 서양뿐만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가치 체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또 한번 다룰 기회가 있을 테지만, 아무튼 헬레니즘은 휴머니즘이며 그리스 문명을 의미한다는 것 정도만 이해하면 될 듯 하다.

 

그럼 그리스 문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 다른 많은 문명이 그랬듯이, 그리스 문명 역시 우연히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방에 살던, 인도유럽어족의 남하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BC 3000년 전쯤 지금 현재의 그리스가 있는, 에게 해 근방으로 이동을 한다.

 

참고적으로 인도유럽어족은 지금의 유럽지역에서 사용한 언어와 인도의 고대어인 산크리스트어의 공통 부모인 언어를 쓰던 사람들인데불교 용어로 많이 알려진 '나무아미타불' 같은 경우 원어는 산크리스트어로써 원래 발음은 '나모 아미타파 붓다' 이다아무튼 고대 인도의 산크리스트어와 현재 유럽에서 사용 중인 각종 언어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등이 그 원류가 같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이들이 그 시기에 왜 갑자기 남하를 했는지 정확히 밝혀진 사실은 없는 듯 하다. 아마도 이런 대규모 이동이 있었다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혹은 또 다른 존재들의 침략으로 인해 도망친 것일 수도 있다당시 이주해 온 그리스인들의 조상은 유목민이었고, 거의 원시인에 가까운 존재들이었다.

 

, 초창기 그들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그리스 문명과는 전혀 거리가 먼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 문명은 매우 찬란하게 꽃이 피웠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원시적인 문화가 섞여 있었다고 한다.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로 아테네의 집정관, 즉 지금으로 따지면 대통령 급에 해당되는 인물의 아내를 디오니소스의 형상, 즉 소 혹은 염소 모양을 한 나무 형상과 섹스를 하게 했다고 한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말이다.

 

그리고 사람을 재물로 바치는 인신공양도 꽤나 자주 있었던 것 같은데, 사실 효도에 대한 가치를 위해서 공양미 삼백 석에 처녀 재물을 사고 파는 심청이에 대한 이야기를 보더라도 이런 비인간적인 풍습은 과거엔 그다지 비인간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원시인에 가까운 그리스인들이 에게 해로 이동한 후 처음 보게 된 광경은 바로 원시적인 자신들과는 수준이 전혀 다른 멋진 문명 사회였다. 그리고 그 문명을 '크레타 문명' 혹은 '미노스 문명' 이라고 부른다.

 


크레타는 그리스 남쪽에 있는 섬의 고유 지명이며, 당시에는 왕국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미노스는 크레타 왕국에서 유명한 왕 중 한 명이었다. 이 왕이 유명하게 된 이유에는 만지면 뭐든 황금으로 변한다는 '마이더스의 손' 이라는 흥미로운 이야기 덕분이다. 또한 이 왕과 관련된 '미노타우루스' 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괴물 황소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재미가 있다.

 

크레타 문명의 시작은 약 BC 3650년 경쯤인 것 같다. 그리고 이 문명은 당연히 우리가 아는 그리스 문명은 아니다. 물론 그리스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아무튼 이 문명은 그리스 지역에 있던 고대 청동기 문명 정도로 정의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또한 이 문명이 발굴된 것 자체가 20세기 초반이었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다. 신화로 구전되거나 서사시에서 영웅들의 이야기 속에 잠깐 등장하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발굴이 된 후, 아주 발달된 문명을 이뤘다는 것이 알려졌고, 그들이 이룬 문명적 성과는 놀라운 수준이라고 한다.

 

크레타는 크노소스 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 멋진 궁전을 가지고 있었는데, 미궁으로 유명하며, 그 미궁엔 무시무시한 괴물인 미노타우루스가 갇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물론 사실은 아니다.

 


이 미노타우로스에 관한 신화는 아무래도 그 지역에서 풍요를 기원하는 행사였던 '투우' 로 인해서 만들어진 듯 하다. 그리고 이 투우는 현대 스페인의 투우와는 달리, 달려오는 소를 뛰어 넘는 형태였다고 한다. 소를 뛰어 넘은 청년이 공중제비를 얼마나 많이 돌았느냐를 기준으로 해서 올해 농사가 얼마나 잘될 것인지를 예측했다고 하니, 청년의 부담이 컸을 듯 하다.

 

원래 미노타우르스 라는 말 자체가 바로 미노스 황제의 황소 뜻이다.

 

여기에 관련된 신화는, 바다의 신이었던 포세이돈에게 힘을 빌러서 왕위에 오른 미노스 황제가 자신이 약속한 재물을 받치지 않자, 분노한 포세이돈이 왕의 아내를 소와 사랑에 빠지게 해서 낳은 자식이 바로 미노타우르스라고 한다.

 

그런데 이 존재는 소의 머리와 사람의 몸을 가진 괴물이었고, 거대한 몸을 가져서 통제가 되질 않았기에미노스 왕은 당시에 최고의 장인이었던 다이달로스에게 거대한 미로를 만들게 하여서 그 안에 미노타우르스를 가뒀다고 전해진다.

 

이후 여러 일이 겹치면서 아테네는 크레타 왕국에 9년마다 젊은 남녀 각각 7명씩을 공물로 바치게 되었는데, 그 공물로 받은 남녀를 미로 안에 살고 있는 미노타우르스에게 주었다.

 

그러던 중 아테네에 살던 용감한 청년 '테세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이 재물 중 한 명으로 자원하여 직접 미궁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르스를 죽임으로써 이야기가 끝난다.

 

이것은 신화적 이야기이지만, 이 안에서 투우를 했던 크레타 왕국 문화의 특징과 당시에 인신공양이 존재했음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초기 그리스인들이 에게 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크레타 문명이 번성 중이었고,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주로 그들의 지배 하로 들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그들은 아주 중요한 두 가지를 배운다.

 


그것은 바로 '농사와 뱃일' 이다.

 

초기 그리스인들은 원래 유목민이었다. 가축을 키우면서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이 농사를 배우면서 터전을 잡고 머무를 수가 있었으며, 뱃일을 배우면서 에게 해와 흑해 그리고 지중해까지 배를 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특히 뱃일은 그들에게 수 많은 다른 문명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해줬으며, 그로 인해서 그리스 문명은 훗날 크게 번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그래서 사실 그리스 문명은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기 보다는, 외부에서 가져온 것들을 잘 섞어서 만든 모방을 통한 조합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듯 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문명은 세계 4대 문명에 들어가지 않는다. 중국의 황하 문명, 인도의 인더스 문명, 이집트의 나일강 문명,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문명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시기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원래 문명의 발달에는 반드시 농사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먹을 것이 남아야 사람들이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농사 기술이 발달하면 잉여 농산물이 생기면서, 소위 말하는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운 존재들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각종 기술을 개발할 시간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발전된 기술은 또 다시 더 많은 생산량을 거둘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준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먹고 사는 것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이 발달할 수도 있다. 그래서 모든 발전된 문명은 반드시 예술적 결과물들이 함께 한다. 그리고 거꾸로 예술적 작품들이 발견된 지역은, 문명이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현대 사회도 보면 먹고 사는 문제인, 기초 생산품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정말로 적다. 농업, 임엄, 수산업, 광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리도 적은데 이 세상이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는 이유는 바로 생산력 증대라는 배경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요즘은 특히 서비스업, 즉 먹고 사는 문제랑은 별로 관련이 없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으며, 돈도 잘 벌고 있다하지만 이들은 냉정히 말하면 모두 잉여 직종이다. 만약 영화 속 이야기처럼 좀비가 창궐해서 생존 그 자체가 힘든 상황이 되었다면, 누가 돈을 내고 머리를 깎을 것이며, 누가 심심하다고 해서 게임을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은 모두 먹고 살만하니까 하는 것이다.

 

아무튼 에게 해로 와서 크레타 문명을 만난 그리스인들은 농업 기술을 배우고, 배를 만들고 운영하는 법을 배우면서 헬레니즘 문명을 탄생시킬 준비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이해가 잘 안 가긴 하지만, 그들은 그 시대를 살았으며, 그 시대에 생존해야 하는 존재들이었다그럼에도 가장 이해가 안가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크레타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 인들이라는 점이다.

 

아무튼 BC 1400년도 근방에 크레타 왕국에서 반란이 일어나 크노소스 궁전을 불태우면서 크레타 문명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20세기 초반이 되어서야 겨우 영국의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다시 발굴된다.

 

크레타 섬에 관련된 유명한 인물로는 '니코스 카잔카스키' 가 있는데, '그리스인 조르바' 라는 소설이 유명하다. 이 책은 살아 생전에 한번 읽을만한 책이기도 하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크레타 왕국을 파괴하고 에게 해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 그리스인들은 크레타 문명 중에서 신, 신화, 기술, 농사, 뱃일은 받아들였고, 예술과 언어는 버리는 결정을 한다. 사실 언어는 당연하다. 누가 새로운 말을 배우려고 하겠는가? 그리고 예술은 말 그대로 잉여적 결과이다. 그러니 당장 먹고 살 것이 중요한 시대에 그것을 계승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나중에 문명이 발달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예술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그리스 초반 문명을 '미케네 문명' 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따로 부르는 이유는, 이 문명은 크레타의 영향 아래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 크레타 문명의 그리스 버전인 것이다.

 

미케네 문명은 크레타 섬에서 벗어나 그리스 본토에 훨씬 가까운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시작되는데, 아직도 원래 자신들의 본질인 유목민의 특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는 주로 약탈, 즉 도적질을 하면서 살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에게 해는 범죄의 터전이 되고 만다.

 

우리가 흔히 '트로이 전쟁' 이라고 알고 있는 이 역사적 사건도 역시 도적질에 관련된 전쟁이었다. 워낙 유명하고 흥미로운 전쟁이었기에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 시간에 한번 제대로 다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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