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넘어, 나를 찾다

18. 두 개의 요구

아이루다 2017. 6. 13. 16:57

 

 

당신도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잠시 행복이 발생하는 과정을 살펴보죠.

 

당신이 살아가는 과정 중에서 무엇이든 어떤 부족함이 생겨나요. 뭔가 아쉬운 상태죠. 배가 고프거나, 졸리거나, 심심하거나, 답답하죠. 불안할 수도 있고, 화가 난 상태일지도 몰라요. 아무튼 이 상태는 정말로 나쁘거나, 어떤 경우엔 오히려 좋을 수도 있어요.

 

아마도 그 차이는 그 부족함을 채우는데 있어서 얼마만큼의 어려움이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죠. 칼에 찔려서 느끼는 고통은 정말로 나쁘지만, 적당히 배가 고픈 것은 오히려 이제 뭔가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게 만들어 좋을 수도 있어요.

 

아무튼 어떤 종류의 부족함이든 상관없이, 부족함은 바로 욕구를 만들어 내요. 말 그대로 어떤 부족함을 채우고 싶다는 욕구죠. 먹고 싶거나, 자고 싶거나, 재미있는 것을 찾고 싶거나, 안정적인 상태가 되고 싶거나, 화를 풀고 싶다는 것 등이 바로 욕구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만약 여기에서 이 욕구를 채울 수 없다면당신은 그것을 불행하다고 느끼게 돼요. 즉, 부족함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채울 수 없는 것이 불행인 것이죠. 배고픈데 먹을 것이 없으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반대로 다행히 이것을 채울 수 있다면 행복을 얻을 수 있어요. 단지 이것을 채울 때 필요한 조건이 얼마나 까다로우냐에 따라서 행복의 강도는 서로 다르게 되죠. 물론 힘들다고 더 행복한 것도, 쉽다고 해서 덜 행복한 것도 아니에요. 만족도는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로 차이가 나요.

 

행복은 매일같이 이런 식으로 발생되었다가 서서히 사라졌다가를 반복하고 있어요.

 

무의식은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기를 요구하고, 의식은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경험과 지식을 동원해서 노력하고 있죠.

 

그런데 이 과정을 좀 더 잘 살펴보면 무의식은 아주 이상한 짓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것은 바로 무의식이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해달라고 요구를 할 때, 전혀 상반되는 두 가지 요구를 동시에 한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이것에 대해서 분명히 경험이 있긴 해요. 하지만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서 당신은 오히려 그것에 대해서 거의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에요.

 


배가 고플 때 밥을 먹는 것이 욕구를 채우는 과정이에요. 그런데 당신은 밥을 먹는 동안 얼마나 먹을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돼요. 물론 보통은 배가 부를 때까지 먹는 것이 보통이지만, 아주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참지를 못하고 그 이상을 먹기도 해요. 보통 뷔페에 가면 그렇죠.

 

당신은 그런 순간마다 무의식의 두 가지 요구가 충돌하는 것을 경험해요. 하나는 먹어야 한다는 요구이고, 다른 하나는 먹는 것을 절제해야 한다는 요구죠.

 

심리학 관련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프로이트는 절제를 담당하는 존재를 슈퍼에고, 우리나라 말로 초자아라고 이름을 지었어요보통은 규범이나 윤리체계를 관장하는 영역으로 알려져 있죠. 그리고 이 존재의 주요 역할이 바로 무엇인가를 억제하는 것이에요.

 

당연하죠. 도덕적으로 살려면 원래 욕구를 절제해야만 하기 때문이에요.

 

, 이 용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부족함을 느끼고 그 부족함을 채우려는 순간엔 대부분의 경우 욕구를 채우려는 것과 그것을 절제시켜야 한다는 것두 가지 상반된 요구가 도착한다는 점이에요.

 

당신은 이 두 가지 요구가 빚어내는 갈등에 대해서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사실 당신이 행복한 삶을 살 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에요.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은 무조건 충족되지 않는 요구이거든요. 당신은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먹으면 먹지 말라는 쪽이 충족되지 않고, 먹지 않으면 먹고 싶다는 쪽이 충족되지 않아요.

 

조금 전에 뭔가가 충족되지 않는 것이 뭐라고 했었죠? 그래요. 그것이 불행이죠. , 당신이 행복을 위해서 뭔가를 하는 순간마다, 당신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불행함이 발생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이니, 이것이 문제가 안 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태에요.

 

그런데 무의식은 왜 이런 식으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요구를 동시에 하는 것일까요? 하나만 요구하면 얼마나 처리하기가 쉬워요. 먹기만을 요구하거나, 먹지 않기만을 요구하면 정말로 결정하기가 쉬울 텐데,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요구를 해서 당신을 그런 곤란함에 빠트릴까요?

 

이런 문제를 크게 정리해 보면, 두 가지 경우로 나눠 볼 수 있어요. , 그렇다고 해서 근본이 다른 것은 아니에요. 단지 조금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죠.

 

하나는 표현이 웃기지만, 인체 조직간의 불화에요. 이것을 딱히 다른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이 경우는 배가 고파서 밖으로 뭔가 먹을 것을 사러 나가야 할 때 발생해요. 이때 위의 요구와 쉬고 싶은 근육의 요구가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죠. 배가 고프다는 것은 위의 요구이고, 먹을 것을 사러 밖에 나갔다 와야 하는 힘듦을 거부하는 것은 근육들의 입장이에요.

 

배고픔과 게으름의 충돌이죠. 그래서 어쩔 수가 없어요. 당신의 신체 구성원들은 당신의 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같은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이 갈등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결국 배가 너무 고프면 근육들은 결국 포기하죠그리고 먹어야 자신들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맞죠.

 

하지만 각자 강한 욕구인 배고픔과 졸림,  몸이 정말로 쉬고 싶은 욕구가 겹치면 그 갈등은 훨씬 치열해요먹을 것이냐, 잘 것이냐를 두고 싸우죠그리고 보통 사람들의 경우엔 그냥 자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배고프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일어나서 먹죠.

 

이것은 무엇이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하느냐를 가지고 벌이는 경쟁이에요. 그리고 개인별로 취향이 서로 다르죠. 그러니 여기엔 정답은 없어요. 각자 선택할 뿐이죠.

 

두 번째 경우는 이미 언급했던, 먹는 것과 적당히 먹어야 한다는 요구와의 갈등이에요.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의 충돌이에요. 그리고 이것은 앞에서 말한 인체 조직간의 갈등에 비해서 훨씬 심각해요보이지 않는 전쟁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에요.

 

그런데 이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웃기는 일이지만 당신이 너무 똑똑해서 그래요.

 

당신은 미래를 예측 가능한 존재에요. 그래서 지금 먹고 싶다고 해서 마구 먹었다가는 나중에 지금의 먹는 행복이 결국 당신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만약 당신이 살이 찐 당신의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면 처음부터 이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없죠.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라면 보통은 다 알아요.

 

피부에 뭔가 가려운 것이 났을 때, 이것을 긁으면 당장 시원하겠지만, 그랬다가는 덧나고 흉터가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당신은 긁는 것을 자제하려고 노력하게 되죠. 그래서 성공하면 덧나는 일은 막지만, 가려움은 여전히 당신을 괴롭혀요.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가려움은 줄어든다는 점이죠.

 

인간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욕구를 충족 시키는 것을 절제해요. 그래서 당신이 그토록 많은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보면 정말로 궁금증이 생겨요. 이렇게 뻔한 갈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무의식은 왜 이 두 가지 요구를 동시에 보낼까요?

 


그것은 바로 두려움과 두려움의 대결이기 때문이에요. 배고픈 것도 두려움이고, 살이 찔 것을 걱정하는 것도 두려움이니까요. 사실 이것은 또 다른 경우인 위와 근육의 경쟁에서도 마찬가지이긴 해요. 근육은 움직이는 것이 몸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니 그것을 두려워해요. 그리고 위는 굶으면 에너지 자체를 만들지 못하니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이죠.

 

, 당신이 어떤 경우이든 선택에 대한 갈등을 겪는 이유는 바로 두 가지 선택 모두 두려움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이것은 무의식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에요.

 

예전에도 설명 드렸듯이, 무의식은 이성이나 논리, 합리성 하고는 전혀 거리가 먼 존재에요. 아이처럼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마구잡이로 요구하죠.

 

그저 자신의 요구사항을 감정으로 느끼게 해요. 배가 고프면 고통을 느끼게 하고, 먹지 말야야 할 것 같으면 먹고 나서 후회를 느끼게 해요. 먹으면서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도 들죠.

 

무의식은 상대를 보지 않고 쏘는 총과 같아요. 자기가 쏜 총알이 상대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는 관심이 없죠. 그냥 상대가 있을 것 같은 곳을 향해서 쏘고 있어요. 쏘는 것이 중요해요. 적어도 쏘고 있는 중이라면 적이 다가오질 못할 테니까요. 그렇게 믿고 싶어해요.

 

무의식은 자신이 두려움을 느낀 것이 있으면 그것들이 서로 상반된 요구를 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냥 다 해결하려고 시켜요. 사실 이것을 상반된 요구라고 느끼는 것 자체가 의식의 입장일 뿐이에요. 무의식 입장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질 않아요

 

아무튼 이런 요구가 오면 의식은 아주 난감하죠. 회사의 사장이 일을 시켜놓고 퇴근을 하라고 하는 것이니까요. 이것은 절대로 동시에 처리할 수 없어요.

 

무의식은 매일같이 이런 식으로 나와요. 영어 학원에 가야 한다는 압박감과 친구를 만나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구를 동시에 내보내죠. 밤에 게임을 하고 싶다는 욕구와 내일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하니 자야 한다는 욕구를 내보내요. 보기에도 너무 예쁜 옷을 사고 싶다는 욕구와 월말에 날라 올 카드 명세서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죠.

 

당신을 포함한 사람들이 행복 하려고 노력을 할 때, 무의식이 보낸 이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특히나 단기적 이득과 장기적 이득이 충돌할 때는 더욱 더 괴롭죠. 미래를 위해서 오늘 공부를 할 것인가, 아니면 친구를 만나서 신나게 놀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해야 하는 것 등이 바로 그런 예죠.

 

의식은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요? 사실 이 질문의 답은 어느 누구도 대신 내줄 수 없어요. 조언은 가능하지만, 답은 내줄 수 없죠.

 

그래서 결국 당신이 결정해야 해요.

 

당신에게는 당신에게 맞는 적절한 해법이 있어야 해요. 그것을 제대로 찾는 것이 문제일 뿐이죠.

 

능력이 안 되는데 미래의 이득을 위해서 투자했다간 현재는 불행하고, 미래는 더 불행할 수 있어요. 합격할 가능성도 별로 없는데 오랫동안 공무원 공부나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경우죠. 이들의 경우는 나이를 먹을수록 삶이 급격히 나락으로 떨어져요.

 

또한 충분이 능력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행복을 쉽게 포기를 하지 못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꼬는 사람들도 많아요. 머리가 좋은데 사기꾼이 되는 경우나, 좋은 머리를 가지고 도박에 빠지거나 하는 사람들이 그런 경우죠. 이들은 즉각적인 행복에 취해서 장기적 이득을 포기했기에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요?

 

당신이 행복하고 싶다면 이 질문에 대한 최대한 제대로 된 답을 찾아야 해요. 그래야 당신은 당신의 무의식이 동시에 많은 요구를 해올 때, 그것을 해결할 수 있어요. 그리고 최대한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죠.

 

문제는 그것을 알기가 너무도 어렵다는 점이에요. 또한 당신이 의도한 것과 상관없이 당신이 결정한 일이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에는 운이 매우 크게 작용해요.

 

, 충분히 적절하게 판단을 하고 결정한 일조차도 일이 꼬이면 아주 엉뚱한 결과가 나오거나 심한 경우, 그 결정으로 인해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요.

 

토요일에 별로 가고 싶지 않은 지인의 결혼식을 갈지 아니면 그냥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할지 고민하다가 의리를 지키고자 결혼식에 가기로 결정을 했어요. 그런데 차를 몰고 가다가 크게 사고가 나서 당신이 많이 다쳤다고 해봐요. 별로 내키지 않았고, 안가도 되는 자리였기에 사고가 난 상황이 되면 그냥 안 가기로 한 것이 훨씬 더 나은 결정이 되고 말아요. 우연히 일어난 결론으로 인해 과정의 정당성을 뒤집어 버리는 것이죠.

 

이런 일들은 참 많이 생겨나요. 이것이 바로 '선택' 이 가진 문제점이기도 하고요.

 


무의식은 당신에게 동시에 여러 가지를 시키기 때문에 당신은 무조건 선택을 해야 할 처지에 놓여요. 하지만 그 선택이 뭔가 의도한 대로 되지 않았을 때 당신은 크게 후회를 할 수 있죠.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결국 당신은 선택을 하기도 전에 걱정부터 생겨나요.

 

혹시나 선택이 잘못되었을까 봐 걱정이 돼요. 그러면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또 스트레스를 받아요. 무의식이 처음부터 하나만 요구하면 쉽게 끝났을 것이, 여러 개를 동시에 요구해서 이렇게나 큰 문제로 번지죠.

 

그런데 여기에서 당신,  의식이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시작은 동시에 시킨 무의식이 한 것이죠.

 

하지만 무의식 또한 당신 그 자체에요. 그러니 당신은 누구도 원망할 수도 없어요. 더군다나 당신은 당신의 무의식을 전혀 무시할 수도 없어요.

 

그러니 난감하죠. 결정을 못하고 머뭇거리죠. 밥을 먹기 위해 식당을 고르는 것에도 힘들어요. 제품을 고르려면 너무도 많은 제품들이 있어요. 도대체 어떤 근거로 어떤 제품을 골라야 할지 혼란스럽죠. 그렇다고 그것을 위해서 시간을 들여서 공부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면 좋지만, 그럴 시간에 그냥 TV나 보는 것이 나아요.

 

그러면서도 걱정은 되죠.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래서 후회를 하게 될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당신의 가장 최종 선택은, 교환 환불이 잘 되는 제품을 골라요. 이것은 잘 한 것인가요?

 

이 곤란한 문제를 해결할 어떤 비법은 없을까요?

 

사실 있어요. 그리고 당신은 그 답을 이미 알고 있어요. 왜냐하면 제가 계속 강조해 왔거든요. 그것이 바로 당신의 무의식을 바라보는 일이에요. 당신을 지켜보는 일이죠.

 

이것은 상반된 행동이 필요한 요구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보내는 무의식이, 정말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과정이에요.

 

당신은 배고픔과 자제를 동시에 요구 받지만, 그것은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요. 분명히 좀 더 원하는 것이 있죠당신이 당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가능해져요.

 

저는 이것을 바로 '당신의 진짜 욕구' 라고 부르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욕구들이 가짜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단지 덜한 것이죠.

 


이렇게 당신의 무의식을 바라 본 후요구된 사항들 사이에 순위가 생기면, 그때부터는 뭔가 편해져요. 왜냐하면 이때부터는 차례로 하면 되거든요. 또한 일반적으로 상반된 욕구들은 한쪽이 처리되면 다른 한쪽도 자연스럽게 사라져요. 먹고 나면 먹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죠.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것은 차례가 생긴 요구들은 모두 선택이 아닌, 필수로 바뀌었다는 점이에요. 한 순간에 하나만 요구하고 있으니까 당연하죠.

 

요구의 순서가 정해진다는 것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에요. 일단 정해지면 차례로 하면 돼요. 더군다나 그것들은 모두 반드시 해야 할 것이에요.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당신의 무의식을 바라보는 것에는 또 한가지 장점이 있어요.

 

그것은 단기적 욕구들, 즉 지금 갑자기 청량음료가 먹고 싶다든가 하는, 잠시 생겼다가 사라질 수 있는 욕구들이 사라질 시간을 벌 수 있어요. , 욕구의 개수가 줄어들어요. 그럼으로써 순서를 정하는데 있어서 좀 더 편해질 수 있죠.

 

이것만 해도 얼마나 좋아요.

 

이제는 당신이 자신의 무의식을 바라봐야 한다는 말이 가진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제 좀 이해하실 수 있나요? 그리고 당신이 왜 그렇게 행복하기가 힘든지도 이해하실 수 있나요?

 

그래요. 당신이 지금 행복하기가 힘들고, 오히려 힘들고 고민스럽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그것은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당신의 그런 모습은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에요.

 

그렇지만 당신은 보통 그렇게 넘기지 못해요. 그래서 뭔가를 먹고 싶으면, 먹어요. 그리고 후회가 되면 자신을 스스로 변명해요.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았으니 먹어줘야 한다고 해요. 오늘은 신제품이 나왔으니 먹어야 한다고 해요. 오늘은 뭔가 먹을만한 이유가 있다고 스스로 설득해요.

 

하지만 이런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당신은 무의식의 요구를 순서를 제대로 정하지 않았음을 의미해요. 뭔가 제대로 정했다면, 당신은 후회를 느끼지도 않고, 그러면 변명을 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런 변명은 혹시나 의식은 설득될지 모르지만, 무의식에게는 전혀 영향을 못 미쳐요. 그리고 무의식은 자신의 요구 중 하나가 묵살되었기에, 그것으로 인해 가졌던 두려움이 그대로 남아있게 돼요.

 

그래서 무의식은 조금 더 불안해져요. 그러면 당신은 평소에도 조금 더 불안한 사람이 돼요.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의식은 설득되었기에, 그것이 해결되었다고 믿어요. 이것이 당신의 불안함이 늘어나는 원인이에요.

 

더해서 당신이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더 있어요. 그것은 상반된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시도이죠.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욕구를 느낄 때, 칼로리가 적다는 이유로 맛없는 햄버거를 선택해서 먹으려고 해요. 집에 있고 싶은데 뭔가 사러 나가기가 귀찮으니 옆에 있는 사람을 시켜요.

 


이러면 마치 두 개의 상반된 요구가 다 해결된 듯 보여요. 하지만 아니죠오히려 모두 불만족스러울 수 있어요햄버거를 먹고 싶었던 것은 기대한 햄버거의 맛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 맛이 안 나는 햄버거를 먹으면, 이것이 충족이 안돼요. 그렇지만 이미 배엔 뭔가 들어갔죠.

 

옆에 있는 사람을 시킨 경우는, 어떤 종류이건 그 사람에게 빚이 생긴 것을 의미해요. , 언젠가는 그 빚을 갚든지, 아니면 원망을 들어야 해요.

 

이런 식으로 해놓고도 스스로 변명하는 태도와 동시에 두 개를 모두 만족시키려는 시도가 당신의 행복을 뺏는 주요 이유가 될 수 있죠.

 

상반된 요구가 오더라도 충분히 자신을 바라보고 어느 한쪽을 결정했다면, 그 결정을 신뢰하고 밀어주세요. 그 결정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도록 하세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어떤 종류의 자책도 변명도 하지 마세요.

 

그렇게 되면 우울해지고 불행해지면서 당신을 제어하기가 오히려 더 힘들어질 것이에요. 사람을 불행하면 행복 하려는 욕구를 더 크게 느끼기에 당신이 절제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훨씬 더 힘들거든요. 그래서 훨씬 더 충동적으로 굴게 될 것이에요.

 

당신은 지금까지 먹고 후회하고, 먹지 않고 힘들어하고 살았어요. 당신은 멋지게 계획한 시간표를 따르지 못할 때마다 괴로워했죠. 당신은 끊어 놓은 헬스장 회원권이 그냥 허공으로 사라지는 경험을 했어요. 당신은 담배를 끊고자 한 결심이 삼 일을 못 가서 깨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죠.

 

그래서 당신이 뭔가 부족하고 문제가 있는 존재라고 여겼을 것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당신과 달리 그런 것들을 아주 잘 해내니까요.

 

그런데 이것들이 당신의 잘못인가요물론 그렇긴 하죠. 무의식이 그렇게 시켰으니까.

 

무의식은 담배를 피고 싶다는 욕구와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욕구, 이 두 개를 동시에 시켰죠. 그리고 당신은 그 중에서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욕구를 더 강하게 느낀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었어요.

 

문제는 당신이 그런 결정을 할 때 무의식을 충분히 바라보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그저 충동적으로 결정을 했다는 점이에요. 담배를 피운 자체가 문제가 아니에요.

 

참지 못하고 담배를 피움으로써 후회라는 감정이 생기고, 결국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는 것이 진짜 문제죠. 그래서 불행해지니까요. 담배는 곁가지에 불과해요.

 

또한 이런 결정은 당신을 불행한 상태에 놓이게 하는, 당신의 또 다른 충동적인 결정으로 이어지고 말죠. 이것이 바로 당신이 그렇게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행복해지지 못하고 계속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돼요.

 

만약 정말로 어떤 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행동했다면, 당신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실망할 일이 없죠. 행복하기 위해서 했기에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상관없이 당신은 괜찮은 것이 정상이에요.

 

그러니 가능하면 충분히 바라보세요.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보세요. 사실 그것만 되면 당신이 가진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처음부터 아무런 요구가 없는 상태가 훨씬 더 힘들어요. 적어도 요구가 있다는 말은, 행복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어떤 요구도 없다면 행복의 기회조차도 없죠.

 

당신을 포함한 우리 전부는 모두 원래 이렇게나 상식이 안통하는 존재에요. 전혀 이성적이지도 않고,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아요. 그렇지만 당신의 의식은 무의식에게 그것을 원해요. 그런데 무의식은 의식의 주인인데 어떻게 하겠어요. 의식은 거부할 권리가 없어요. 오직 복종뿐이죠.

 

그러니 당신의 부족함, 당신의 불안함, 당신의 두려움을 이해하세요. 그리고 받아들이세요. 그것은 당신뿐만이 아니라,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들이 가진 동일한 문제에요. 그것을 가지고 당신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세요.

 

만약 그렇게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은 그저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일 뿐이에요. 그 내면은 당신과 전혀 다를 것이 없어요. 그 역시도 두려워하고 있고, 그 역시도 불안해 하고 있어요. 단지 그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주로 해왔던 사람일뿐이에요. 그런 사람일수록 안정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 당신의 무의식을 최대한 공감해주세요. 절대로 무의식을 논리로 설득하려고 하지 마세요. 설득은 의식에게나 통하는 것이에요. 무의식은 오직 감정으로만 접근이 가능해요. 그러니 설득이 아니라 공감을 해줘야 해요그리고 아껴주세요. 당신을 소중히 여길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에요.

 

그 점을 결코 잊지 마세요. 그리고 이렇게 자신에게 관대해질 수록, 당신은 행복해질 것이며, 그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대해질 수 있을 것이에요.


행복해지세요. 그러면 당신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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