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넘어, 나를 찾다

16. 무엇이 당신의 행복을 방해할까?

아이루다 2017. 6. 11. 07:55

 

 

당신은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여기까지 따라 온 것이죠. 당신의 감춰진 비밀이 드러나고, 인정하기 싫은 진실을 바라보면서도 꿋꿋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오직 당신이 행복하고자 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당신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니까요. 그럼에도 당신은 용기가 있는 분이죠.

 

원래 자기를 바라본다는 것이 그래요. 그것이 타인에 의해서건, 스스로 바라보건 상관없이, 자신의 숨어있는 진실을 본다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과정이에요.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앞으로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큰 용기가 있는 분이에요.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당신의 삶은 조금 다른 변화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에요.

 

물론 쉽지 않을 것이에요. 그리고 시간도 제법 오래 걸릴 것이에요. 당신은 과거에 수십 년에 걸쳐서 변형되어 왔어요. 그래서 이것을 다시 어느 정도까지라도 복구시키려면 그 만큼의 시간이 걸려야 정상이죠.

 

단지 그 동안 당신이 변형되었던 시간 동안 당신은 그저 무의식 속에서 살아왔기에 오래 걸렸던 것이고, 지금은 의식적으로 그것을 복구시키려고 하고 있으니 좀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에요. 원래 목표를 정확히 이해하고 집중하면 훨씬 빨라지거든요. 그럼에도 수년 간의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에요.

 

지금부터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당신을 과연 무엇이 방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해요. 그래서 그 원인을 제대로 알게 되면현재의 조건에 특별한 변화가 없이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만으로도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에요. 이것은 여분의 행복이에요. 그래서 중요하죠.

 

그런데 이 역시도 당신에게는 힘든 과정일지도 몰라요. 원래 진실을 아는 것은 입맛이 쓰거든요.

 

일단 스스로 한번 생각해보세요. 과연 무엇이 당신의 행복을 방해하고 있을까요? 당신은 현재보다도 훨씬 더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왜 더 행복할 수 없을까요?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일까요? 당신이 걱정하는 미래일까요? 당신 직업의 안정성일까요? 모아 놓은 돈이 별로 없어서 노후가 걱정되어서일까요자기 계발을 하고 있지 않는 현재의 모습 때문일까요?

 


말도 안 듣고 공부도 잘 안 하는 아이들 때문일까요? 당신의 힘듦을 잘 모르는 아내나 남편 때문일까요? 아니면 결혼을 아직 하지 못해서 그럴까요? 아이를 낳지 못해서 그럴까요? 당신을 힘들게 하는 시댁이나 처가 때문일까요?

 

회사에서 당신을 괴롭히는 직장 동료 때문일까요?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데 힘들어서 그럴까요? 어딘가 몸이 아파서 그럴까요? 우울하거나 무기력해서 그럴까요?

 

이런 것들 말고도 개인별로 참으로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에요.

 

그리고 이런 이유 하나 하나가 감당하기 그리 쉽지 않아요. 그러니 충분히 당신이 행복하기 힘든 이유가 될 수 있어요. 더군다나 운 없게도 이런 이유들이 여러 개가 한꺼번에 겹쳤다면 더욱 더 그렇겠죠.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네요.

 

이런 모든 이유들을 다 가졌다고 해도, 당신의 행복엔 이미 그것이 반영되어 있다고요. , 현재 당신의 행복 상태는 당신이 가진 방해 요소들을 모두 반영한 결과인 것이죠.

 

저는 당신이 현재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고 했지, 절대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 저는 상대적 개념으로 그것에 대해서 말했어요. 그러니 현재의 행복은 당신에게 주어진 조건들에서 당신 스스로가 해낼 수 있는 최선의 상태에요.

 

슬픈 일이지만, 당신이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은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답니다. 그것은 타고난 외모, 성격, 건강, 두뇌 능력 등등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결정이 돼요.

 

당신이 잘 생긴 외모나 예쁜 얼굴, 뛰어난 몸매, 탁월한 두뇌, 분위기를 이끌 줄 아는 유머감각과 좋은 목소리 등을 가졌다면 오히려 불행하기가 힘들 것이에요.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행복하기가 무척 힘들죠.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타고난 장점을 살려야 한다고 말들 해요. 이것은 매우 긍정적인 표현 같지만, 사실은 네가 타고난 대로 살 수 밖에 없다는 말의 간접적 표현이에요. , 그렇다고 해서 나쁘게 볼 것은 아니지만요.

 

그럼에도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당신이 어떤 조건하에 있든지 현재 당신의 경험하는 행복은 최선일지는 몰라도 최대의 것은 아니라고요. 그리고 당신이 어떤 조건이든지 있든지 간에 상관없이 당신은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수준의 '행복한 삶정도는 살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것은 단순한 주장이 아니에요.

 

당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숨겨진 진짜 원인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원인에는 앞에서 열거한 수 많은 문제들이 포함될 수 없어요. 그것들은 이미 고정된 것들이고 그래서 관점의 변화나 마음 먹기에 따라서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어요.

 

어떻게 관점의 변화에 따라서 갑자기 노후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있겠어요마음 먹기에 따라서 갑자기 건강해질 수 있겠어요?

 

그리고 놀라운 사실 하나는, 당신이 진짜 원인을 알고 어느 정도 해결해서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면 오히려 저런 걱정들은 당신을 덜 괴롭히게 된다는 점이에요. 당신이 행복해질수록 같은 걱정거리라고 해도 훨씬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래서 걱정거리 목록에서 빠질 수도 있죠.

 

그러니 해결하기 힘든 걱정거리를 붙잡고 노력할 시간에 그냥 더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세요. 그러면 많은 것들이 좋아져요. 행복이 좋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죠. 일단 행복해지기만 하면, 정말로 모든 것이 별 것이 아니거든요. 단지 행복해지기가 힘들뿐이죠.

 

, 그럼 그 답은 도대체 뭘까요?

 

그 답은 바로 '당신' 이에요. 당신이야 말로 당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에요. 기분이 나쁠지 모르지만, 사실이에요.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어요. 하나는 당신이 지금 이 순간에도 굳게 믿고 있는 '행복 권리이고 다른 하나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행복 강박증' 이에요.

 

사람에 따라서 이 둘을 모두 가지고 있거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데, 둘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보기 힘들 정도로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기도 해요. 그러니 당신이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상한 것은 아니죠.

 

저는 지금까지 당신이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자주 말해왔어요. 그리고 더 행복할 수도 있다고 했죠.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이 말은 당신이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란 의미는 아니에요.

 

당신은 행복할 수도 있지만 그리고 행복하면 더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죠.

 

우리나라 헌법에는 국민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어요. 헌법 제 10조에 나오는 항목이에요. 좀 더 정확히 그 문구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하지만 이 문구 역시도 마찬가지에요당신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아니에요. 만약 국가에서 국민의 행복 권리를 인정해버리고 나면, 행복하지 않은 국민이 있을 경우,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그러니 당연한 것이에요.



 

하지만 당신을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그것을 서로 확인해줘요. , 그것이 나쁜 의도는 아니에요. 그럼에도 문제가 생겨요.

 

그것은 바로 당신이 행복할 때는 상관이 없지만, 운이 없이 불행할 경우에는 권리를 뺏긴 결과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것을 참아내기가 어렵다는 점이에요.

 

두 가지 짧은 예를 보고 나서 더 이야기 하도록 하죠.

 

당신은 지금 도넛을 두 개 들고 있어요그런데 배가 좀 불러서 하나는 먹을만 한데, 두 개는 엄두가 안나요. 그래서 고민하고 있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요그 사람은 그리 친한 사람은 아닌데, 그래도 도넛을 줄만한 사람이긴 해요. 그래서 그 사람을 불러서 배가 불러서 그렇다고 하면서 하나 건네요.

 

그러자 그 사람은 우연히 얻게 된 도넛이 너무 맛있다고 하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가요. 그리고 당신은 처지 곤란한 도넛을 처리했고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들어서 기분이 좋아져요. 그리고 이 우연한 사건은 오래지 않아 머리 속에서 잊혀져요.

 

그런데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당신은 또 다시 우연히 그 사람을 만나요. 그런데 이번엔 반대 상황이 돼요. 그 사람은 당신을 향해 반갑게 웃으면서 지난번에 도넛 얻어먹은 것이 너무 좋았다면서 가방에서 초콜릿을 하나 꺼내서 건네요. 당신은 꼭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지만그래도 기분 좋게 그것을 받아서 먹고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헤어져요.

 

이제는 두 번째 이야기에요.

 

당신은 지금 도넛을 두 개 들고 있어요. 그런데 몹시 배가 고파서 다 먹어도 배가 안찰 지경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친한 동네 친구를 만나요. 그런데 그 친구가 자신도 배가 고프다고 말해요. , 대 놓고 도넛을 달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분위기 상 줘야 할 것 같아요.

 

당신은 배가 고프긴 하지만, 그래도 친구니까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도넛을 건네요. 당신 입장에서는 친구에게 나름대로 마음을 써 준 것이에요. 그리고 친구는 맛있다고 하면서 고마워하며 먹어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이 사건은 서서히 잊혀져 가요.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또 다시 그 친구를 우연히 만나요그런데 친구는 손에 맛있어 보이는 아이스크림을 두 개를 들고 있어요. 그래서 당신의 마음 속에서는 혹시 친구가 둘 중 하나를 자신에게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살짝 생겨요. 왜 그런 기대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냥 기분이 그래요.

 

그런데 친구는 당신의 기대를 전혀 모르는 듯 반갑게 인사만 하고 지나가요. 그런데 그 순간 당신은 뭔가 섭섭한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예전에 당신이 그 친구에게 준 도넛이 떠올라요. 그리고 당신이 느낀 그 기분의 정체를 알게 돼요.

 

, 이 두 편의 이야기를 가지고 생각을 해보죠. 도대체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서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첫 번째에서는 초콜릿을 먹었고, 두 번째는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해서 그럴까요? ,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첫 번째의 경우 당신은 그 사람이 초콜릿을 들고 있었고 당신에게 주지 않았더라도 그다지 섭섭한 기분은 들지 않았을 것이에요.

 

왜냐고요? 기대치가 없었으니까요. 과거의 당신은 그저 배가 불렀기에 처치 곤란한 도넛을 상대에게 준 것뿐이었어요. 그것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행위이니 상대에 대해 뭔가를 베푼 행위가 아니었던 것이죠. 그러니 기대치가 있는 것이 이상하죠.

 

그래서 나중에 그 사람에게 초콜릿을 얻어 먹든, 아니면 먹지 못하든 사실상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초콜릿을 얻어 먹을 상황이 되면 뭔가 행운이 생긴 듯 기분이 많이 좋아져요. 전혀 기대가 없었으니까요.

 

이와는 반대로 두 번째의 경우는 달라요거기엔 분명히 당신의 이득에 대한 희생이 있었어요. 친구를 위해서 당신의 도넛을 포기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당연히 기대가 있어요. 당신의 의식은 도넛을 곧 잊어 먹을지 몰라도, 당신의 무의식은 절대로 잊지 않아요. 자신의 손해를 입었던 그 순간을 어떻게 쉽게 잊겠어요. 그래서 그러다 보니 아이스크림을 받지 못한 것이 뭔가 섭섭해요.

 

그런데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에요. 돈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성적으로 해결이 가능하죠. 아이스크림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니까요. 얼마도 안 되는 푼돈 때문에 기분이 상하는 것을 누가 바라겠어요? 그래서 이것은 완전히 감정적 문제에요. 그러니 당연히 무의식의 영역이죠.

 

그래서 이 두 이야기에서 진짜 차이점은 바로 '기대의 유무' 에요. 그렇다면 기대는 도대체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낼까요?

 

기대를 한 것과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은 긍정적인 상황, 즉 기대가 이뤄진 상황이 될 때는 큰 차이가 없어요. 사실 이것도 차이가 있긴 한데, 부정적 상황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이뤄지지 않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기대가 없었으니 당연히 실망도 없죠. 아무런 기대를 안 했는데,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을 때 뭐가 달라지겠어요.

 

그런데 우연히 뭔가 이뤄지면 큰 행운이 온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이 행복해요. 우연한 행운이 주는 행복은 참 커요. 그냥 근처에 있어서 들어간 식당이 너무 맛있었던 것처럼 말이에요. 아주 기분좋게 먹고 나올 수 있어요.

 

기대를 한 것은 그것이 이뤄지면 기분이 좋긴 해요. 뭐 큰 행운이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기대를 한 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불행해지고 말아요.

 

맛 집이라고 알려진 식당까지 시간과 돈을 들여서 갔는데 혹시라도 기대에 못 미치면 그냥 그런 것이 아니라, 짜증이 나요. 기대를 하고 갔으니 그렇죠. 사실 제법 괜찮았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미 기대를 했고, 그것을 위한 시간과 돈을 들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억울해지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기대를 하지 않은 것들은 그저 행복 쪽으로만 영향을 미치는데, 기대를 한 것은 불행과 행복에 모두 영향을 미쳐요.

 

이것이 바로 앞의 두 예의 차이점이며, 당신이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행복 권리가 가진 진짜 무서움이에요.

 

당신은 당신이 행복하게 살아야 할 존재라고 믿는 순간조금이라도 행복하지 않은 상황에 놓이면 그것을 불행한 것이라고 판단해요. 원래 행복하지 않은 것은 불행한 것과 같은 말이 아니어야 하는데, 당신이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믿게 되면서, 둘은 같은 의미가 되고 말죠.

 


지난 글에서 행복에 대해 설명할 때, 당신은 결코 행복한 상태에서 영구히 머무를 수 없다고 설명했었어요행복과 불행이 교차되는 것은 삶의 고유한 특징이에요.

 

당신은 배가 고프다가 밥을 먹고 행복해져요. 그런데 당신이 배가 고픈 상태를 그냥 그런 것으로 판단하느냐 불행한 것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서 진짜로 배가 고플 때 불행함을 느끼느냐 마느냐로 갈려요. 배가 고픈 것이 정말로 불행한 것이어야 할까요?

 

당신이 어떤 이유로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 놓였을 때, 이것을 견뎌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바로 행복에 대한 권리를 얼만큼 강하게 느끼고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져요. 권리 의식이 강할수록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견디기가 힘들죠. 당신은 늘 행복해야만 하는 사람이니까요.

 

또한 운이 없게도 불행한 상태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 때,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도 역시 같은 원리로 권리 의식이 얼마나 적으냐 많으냐에 따라 갈리죠.

 

자신은 행복해야 하는 존재라고 믿으면 믿을수록 불행한 상태에 놓였을 때 훨씬 괴로워하게 돼요. 바로 확대해석이 일어나거든요. 그리고 이런 식으로 확대해석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불행은 더 큰 불행을 불러오게 돼요.

 

무엇보다도 불만이 많아져요.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뺏겼으니 어떻게 불만이 없겠어요.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참기 힘든 일 중 하나가, 당연한 권리를 뺏기는 것이에요.  돈 십원의 손해도 그냥 못참아요.

 

하지만 불만이 가득하니 신경질적이고, 짜증을 잘 내고, 화도 잘 내게 돼요. 심각해지면 우울해지고 하고 좌절감도 느껴요.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여요.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져요.

 

그리고 두려움은 사람을 매우 수동적으로 만들어요. 그래서 능동적으로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야 할 시간에, 자신의 불행을 한탄만하고, 언제나 불만만 늘어 놓는 사람이 되고 말아요.

 

이런 삶이 어떻겠어요. 이렇게 흘러가게 되면 멀쩡한 사람도 불행해지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이미 불행한 사람의 삶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정말로 불행해지고 말죠.

 

원래 불행과 행복은 모두 순환 구조를 가져요. 불행은 악순환, 행복은 선순환이 되죠선순환은 괜찮지만, 악순환을 중간에 멈추지 못하면, 삶은 금세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별 것도 아닌 일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행한 사람이 되어서 신경질적이고, 우울하고,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어요. 작은 불행한 사건으로 인해 삶이 쉽게 변형되어 버리는 것이죠.

 

삶은 기본적으로 운이 많이 작용해요. 운에 의해서 많은 것들이 이뤄지거나 이뤄지지 않거나 하죠. 그러다 보니 당신의 삶에 운이 없을 때도 있고 운이 있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당신이 행운을 얻는 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믿고,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불운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게 되면, 불운이 닥쳐왔을 때 그 불운이 가진 나쁜 점 이상으로 훨씬 더 불행해지고 말아요. 불운이 찾아 온 당신의 삶을 인정하고 견디기가 무척 힘들거든요. 당신은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생각되거든요.

 

저는 이 시점에서 당신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어요. 도대체 당신은 왜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요?

 

그저 인간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그렇다면 지금 당신보다 불행한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그렇게 불행한 것일까요? 당신은 그것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할 수 있을까요?

 

만약 당신이 '그건 나니까 그렇죠' 라고 대답을 했다면, 그 답을 스스로 다시 생각해보세요. 도대체 '' 라는 이유가 당신이 행복해야 할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일까요?

 

더군다나 이 권리 의식은 오히려 당신의 행복을 방해하고 있어요. 기대를 가진 순간 실망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거든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기대' 에요. 원래 인간 관계가 끝없는 주고 받기라서 그래요당신은 그 사람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엇인가를 주죠. 그리고 그 후로 뭔가를 기대해요. 하지만 상대의 마음은 전혀 달라요.

 

그 사람은 매우 배가 부른 상태인데, 당신에게 우연히 도넛을 얻은 것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예의상 고맙다는 말은 해야 할 것 같으니, 배가 고팠는데 다행이라는 거짓말을 하고 받았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속으로는 왜 이런 것을 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고마움이 아니라 원망이 안 생기면 다행이죠.

 

그런데 당신은 그 사람이 그냥 한 말을 믿고 자신이 상대에게 뭔가를 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음에 그 사람을 만나면 그것에 대한 답례를 기대하죠. 하지만 상대는 당신의 마음을 전혀 짐작하지 못해요. 그래서 결국 당신은 그 사람에게 실망을 하고 상처를 받아요. 그러고는 마음을 서서히 닫죠.

 


이 과정이 사람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가 틀어지는 매우 흔한 상황이에요. 당신은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받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직 상대의 몫이에요. 그것을 당신이 판단할 것이 아니란 뜻이죠. 그렇지만 당신은 그렇게 판단하고 기대를 해요.

 

그래서 기대는 좋은 것이긴 하지만, 사실 매우 위험하기도 한 것이죠.

 

사실 기대는 미래의 행복을 미리 땅기는, 일종의 행복을 가불하는 행위에요. 어딘가 여행을 갈 때, 그 여행의 기대를 하면 할수록 가기 전 미리 그 행복을 경험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그 장소에 갔을 때는 그 기대치로 얻은 행복을 제외한 나머지 행복만 경험할 수 밖에 없죠.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아요. 가불을 했으니 진짜 월급날엔 월급이 줄어들 수 밖에요.

 

그리고 운 없게도 그 장소가 당신의 기대치에 못 미치면, 그때는 이미 기대를 통해 느낀 행복을 다시 반납해야 할 처지에 놓여요. 행복을 반납한다는 것은 불행해지는 것을 의미하죠. 가불을 했으니 중간에 회사를 그만두면 가불한 돈을 갚아야 하는 것이에요.

 

이와 달리 아무런 기대 없이 간 어떤 장소는 당신에게 온전한 행복을 느끼게 해줘요. 그리고 설령 그곳이 전혀 별로라고 해도 아무런 느낌이 없죠. 아예 기억조차 남지 않아요. 그냥 잊혀지는 장소일 뿐이죠. 가불을 하지 않았으니, 회사를 그만두고 기분 나빠질 필요도 없이 그냥 다른 회사에 취직하면 그만이에요.

 

당신은 행복하기를 원하기에 자신도 모르게 기대를 해요. 그 기대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기대는 결국 불행을 불러오게 되죠. 과도한 행복 권리 의식도 그래요.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주 어려운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야 해요.

 

그것은 바로 기대는 하지만 실망은 하지 않을 정도의 기대만 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자신에게 행복에 대한 권리가 거의 없다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말을 수 없이 많이 듣게 돼요. 그들이 그것을 믿으니 당신에게도 말하는 것이죠. 다 같이 믿으면 정말로 그것이 진실인 것 같잖아요.

 

그들은 당신에게 당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해주기도 해요. 그런데 이건 당신을 위한 말이 아니라, 당신을 망치는 조언이에요.

 

오히려 당신이 당신이 가진 권리 의식을 버리면 버릴 수록 당신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명심하세요.

 

그리고 그것을 버릴 때, 당신은 같은 조건에 훨씬 더 큰 행복을 느끼고 살 수 있게 될 것이에요. 그리고 당신이 운 없이 장시간 불행에 빠져 있을 때, 그것을 덧나게 하지 않고 버텨서 결국 다시 행복한 삶으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되 줄 것이에요.

 

행복을 방해하는 두 번째 요소인 '행복 강박증' 도 사실 행복 권리와 비슷해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인해서 그런 것이거든요.

 

그리고 이 강박증은 우리가 예전에 같이 대화를 나눴던, 사회적으로 추천된 좋은 가치가 당신을 세뇌시킨 결과에요. 그러니 벗어나야 할 것들 중 하나이죠.

 

당신이 행복하게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당신이 행복한 것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은 아니에요. 그러니 불행함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너무 안절부절 하지 마세요.

 

또한 행복하고 싶다는 욕구로 인해서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너무 긍정적으로만 해석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것이 심해지면 정신병 수준이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언제나 긍정적인 해석은 당신이 실수로부터, 상처로부터 아무런 경험적 지혜도 얻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주고 말 것이에요.

 

사기를 당해도 긍정적으로만 해석하면, 다음에 또 사기를 당하게 되는 것이죠.

 

사실 행복 강박증은 무의식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의 또 다른 모습이에요. 무의식이 불행한 것이 너무도 두려워 하니까 의식이 모든 것을 좋게만 해석해서 보고하는 것이에요.

 

이것은 마치 사장이 영업 실적이 좋기만을 바라니, 밑의 직원이 매출 자료를 조작해서 보고하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 그러면 결국 그 회사는 망하게 되죠.

 

그래서 결국 무의식이 가진 두려움을 직시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강박증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그러니 쉬지 말고 끝없이 당신의 내면에 바라보세요.

 

모든 것의 답이 바로 거기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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