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조종하는 사람, 조종당하는 사람

아이루다 2017. 5. 5. 10:43

 

 

사람들은 삶 속에서 수 많은 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는 가족과 같이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경우도 있고, 학교에서 친구로써, 직장에서 동료로써, 사업을 같이 하는 동업자로써, 거래처의 아는 사람으로써, 모임의 참여자로써 맺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결혼을 할 배우자로써도 맺어진다.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가장 기본적 이유는 바로 관계를 통해 얻는 이득 때문이다. 물론 이때 이득은 단지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인 이득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이유는 바로 '행복' 이라고 해야 좀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사람들은 관계를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고, 자신의 잘남을 뽐내고, 자신의 힘듦을 하소연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누군가를 같이 씹으면서 공감을 느끼고, 상대보다 자신이 더 낫다고 여기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인간에게 있어서 관계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관계는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가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깊이 맺어진 관계를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한 사람이 따라 죽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나 중요한 관계는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이득을 얻고, 행복하기 위해서 관계를 맺지만, 관계가 이득을 얻는 수단인 만큼 오히려 이득을 잃을 기회가 되기도 한다.

 

당연한 결과이다. 돈을 투자하면 돈을 벌 수도 있지만, 돈을 잃을 수도 있다.

 

서로가 이득을 얻기를 바라고 관계를 맺기 때문에, 잘못하면 이득이 아닌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손해를 보고 상처를 입는다.

 


엉뚱한 정보를 얻어서 낭패를 보기도 하고, 잘남을 뽐내다가 무시당하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힘들다고 말했다가 위로는커녕 비웃음을 당하기도 하고, 힘들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냉정한 거절을 경험한다. 누군가를 같이 씹었는데 나중에는 자신이 그들에게 씹히기도 하고, 상대보다 낫다고 여겼지만 결국 상대가 자신보다 더 나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혼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런 관계의 역효과는 언제나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관계는 마치 불처럼 너무 가까이 가면 화상을 입고, 너무 멀면 춥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도 적당한 거리를 재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계 자체에 많은 고민을 갖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 힘들어서 관계 자체를 모두 끊어 버리기도 한다. 큰 이득이나 행복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는데, 자꾸 상처를 입으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중요한 관계는 도대체 어떻게 원리로 작동하는 것일까?

 

이미 말했듯이 사람들은 이득을 얻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관계를 맺는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래야 관계가 어떻게 동작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상대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가진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상대가 그것을 원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 아무리 부자라도 상대가 자신과 같은 부자에게는 아무런 장점이 되질 못한다. 아무리 예쁜 얼굴을 가졌어도 상대가 얼굴이 아닌 성격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면 맺어질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이 물질적일수록 사업적 관계가 되고, 정신적일수록 개인적 관계가 된다. , 내가 상대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으면 사업적 관계로 맺어지고, 내가 상대를 기분 좋게 해줄 수 있으면 개인적 관계가 된다는 뜻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무엇을 주든, 상대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관계의 시작점이 된다.

 

내가 상대에게 돈을 벌게 해줄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사업적 관계는 끊긴다. 내가 상대를 만났을 때 상대가 전혀 즐겁지 못하면 그 관계는 끝난다. 설령 가족이라고 해도 그렇다. 가족과의 만남이 스트레스만 유발하면, 만나지 않고 산다. 부부면 이혼을 하고, 부모와 자식도 서로 완전히 갈라지기도 한다.

 

그 어떤 관계이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하면, 내가 상대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그 관계는 끝이 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줄 수 있고, 상대가 줄 수 있는 것의 크기가 똑같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 원하는 정도가 다르고, 줄 수 있는 내용이 다르고, 절실함이 다르다.

 

그래서 모든 관계는 기본적으로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더 원하는 사람이 더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더 자주 보려고 애쓴다.

 

사랑에 빠진 남녀는 더 사랑하는 쪽이 그런 입장이 된다. 사업적으로 맺어진 관계는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쪽이나 더 절실한 쪽이 그렇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모든 종류의 관계는 갑과 을의 입장으로 나뉜다. 그리고 주로 을이 아쉬운 소리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현상이 생겨난다.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서로를 얼마나 더 필요로 하는지 여부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원래의 것보다 더욱 더 부풀리려고 한다.

 

, 내가 당신에게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를 확대해서 설명한다. 그것이 뭔가 대단한 것으로 보이고 싶어한다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서로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현상을 만들어 낸다.

 

, 자신의 단점을 최대한 숨기고 장점만을 보여주려고 한다. 처음 만난 남녀가 그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이유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사업이 얼마나 유망한지 설명하는 이유이다.

 

사람들의 이런 행동은 모두 관계 속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이다. 내가 상대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상대가 나를 더 필요로 하도록 만들고 싶은 욕구에서 그렇게 행동한다.

 

이것이 바로 상대에게 '잘 보인다' 는 말이 가진 의미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주도권을 가지고 싶어할까?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상대를 자신의 의도대로 조종하고 싶어서이다. 내가 노래방에 가고 싶고, 상대는 영화관에 가고 싶다면, 최종적으로 노래방으로 결정되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니 영화관 한 번 갈 때, 노래방을 두 번 가고 싶어서 그렇다.

 

각자 서울과 부산에서 출발 할 때대전에서 만날지 대구에서 만날지를 결정해주기 때문이다. 같이 음식을 먹고 나올 때 누가 계산을 할 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날 때 누가 먼저 전화를 걸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이 여행을 떠날 때 누가 신경 써서 여행 준비를 할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관계 속에서 주도권은 많은 이득을 가져다 준다. , 주도권은 우리가 관계를 맺는 근본적 목적인 '이득' 을 얻는데 아주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누구나 원하기에 누구나 그것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각자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에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정신적인 만족을 위해서는 타고난 매력이 매우 중요하다. , 외모, 성격, 화술 등등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물질적인 이득을 위해서는 가진 돈, 권력, 능력 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갖고 싶어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돈은 그 자체로도 좋지만 많은 장소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잘생기고 예쁜 외모 같은 경우는 훨씬 더 그렇다. 외모나 성격 등, 정신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능력들은 모임에서 주도권을 쥐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당연히 주도권을 쥔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것은 바로 수많은 관계 속에서 주도권을 두고 눈에 보이지 않는 투쟁이 일어난다. , 누구나 자신이 갑의 위치에 서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노력을 한다. 그래서 줄 수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호감을 받는다. 그래서 공짜로 많은 것을 얻는다.

 

사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고 그것을 괜히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다가 보면 서로가 좋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사람은 남에게 나쁜 짓을 안 한다. 남의 마음을 얻으려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해진다.

 

그래서 이것은 서로가 좋다.

 

문제는 자신이 가진 것 이상으로 주도권을 가지고 싶어 할 때 생겨난다. 그리고 그것은 주로 물질적인 이득 부분에서 자주 발생한다.

 

나쁜 예로 사기를 치는 것이다. 자신이 뭔가 대단한 것을 줄 수 있는 것처럼 꾸민 후, 상대에게 물질적 이득을 뜯어내는 것이다.

 

그나마 사기는 명백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억울하긴 해도 복잡하지 않다. 사실 세상은 이것보다 훨씬 더 교묘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사실상 자신이 사기를 당하는 줄도 모르고 지속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으려고 한다. , 스스로 주도권을 상대에게 건 낸다.

 

그리고 그 목적이 바로 물질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이다.

 

회사를 다니는 직원들이 사장의 눈치를 보는 것도 일종의 그런 것이다. 물론 회사를 다니면서 일을 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반드시 사장이 주도하는 회식에 참가할 필요는 없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빠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물질적 이득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그래서 사실상 자신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줄 수 있는 것처럼 크게 포장을 한다. , 일종의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낚시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낚시를 당한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뭔가 줄 것처럼 굴어서 최선을 다해 노력을 했으나 결국 버림을 받는 경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꽤나 많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꽤나 많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주도권을 틀어 쥐고는 상대를 농락하는 것이다. 잘 보이면 이득을 줄 것처럼 굴면서 상대를 자신의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한다. 그리고 미끼를 문 사람들은 주도권을 상대에게 헌납하고는 상대가 조종하는 대로 끌려 다니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버림을 받는다.

 

그래서 이것을 잘 판단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가 나에게 낚시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지 여부를 정말로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사실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조금만 유심히 보면 답이 나온다. 사람을 쉽게 무시하는 사람, 사람의 험담을 자주하는 사람, 자기 자랑이 심한 사람, 가진 것은 많지만 관계를 맺는 것에 서투른 사람,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 이기적인 면이 강한 사람 등등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이런 경향은 우리가 왜 착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확실한 이유를 만들어 준다. , 사람이 착하다는 것은 위에 나열한 성향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만약 누군가 다른 어떤 사람을 험담하는 말을 들었다면, 그 사람이 나를 험담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괜히 같이 험담하다가는 결국 뒤통수 맞기 십상이다.

 

물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조종당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또한 다른 사람을 조종하지 않고 살 수도 없다우리는 그것을 설득이나 리더쉽 등등 다른 많은 좋은 단어로 표현하지만, 사실상 상대를 조종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부탁으로, 누군가는 친절로, 누군가는 마음 씀씀이로, 누군가는 구체적인 도움으로, 누군가는 타고난 매력으로, 누군가는 뛰어난 외모로, 누군가는 재미있는 말솜씨로, 누군가는 깊은 지식으로, 누군가는 가진 능력으로, 누군가는 전문적 영역으로, 누군가는 돈으로, 누군가는 인맥으로, 누군가는 공감 능력으로, 누군가는 가진 권력으로, 누군가는 자신의 직위로, 누군가는 달콤한 미래를 보여주면서 그것을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그 의도의 방식이지 의도 자체가 아니다. , 내가 누군가를 조종하고, 누군가 나를 조종하려고 드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느냐가 문제란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식인지 구분해서 그것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하는 것은 많이 힘들다. 사람마다 자신의 의도를 숨기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좋은 것으로 포장을 한다. 부탁할 것이 있으면 과일 바구니를 사 들고 집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본질적 단계에서 지켜봄이 필요해진다. , 의도 자체가 문제는 없지만, 의도 자체를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친절을 베푼다면, 그것에 숨겨진 의미는 바로 주도권을 내달라는 뜻임을 이해하고는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행위들이 사실상 주도권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살아가게 되면서 맺게 되는 수 많은 관계 속에서 그나마 덜 상처 입고 살아갈 수 있다. 그래야 관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할 수 있다. 그래야 관계 속에서 불필요한 감정 낭비를 하지 않고 살 수 있다. 그래야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를 쉽게 단절해 낼 수 있다.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특히 정신적인 만족을 순수하게 보려는 경향이 있다. 사실 그래야 기분도 훨씬 좋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우리가 믿는 것처럼 그렇게 순수한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은 결국 자신을 위해서 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도 그렇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주도권을 두고 경쟁을 한다. 이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관계의 주도권은 나의 행복을 위해서 아주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주도권을 뺏긴 관계는 오히려 불행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관계 속에서 무조건적인 주도권 경쟁은 또 다른 관계 스트레스를 야기할 따름이다. 그래서 적당히 취하고 적당히 양보을 할 수 있는 사람일 때 관계 속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 노래방에 가고 싶으면 가끔 영화관도 같이 가줘야 할 것이다. 내가 그것을 원하듯, 남도 그것을 원한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세상은 결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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