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력과 극복의 후유증

아이루다 2016. 12. 13. 08:47


 

사람은 저마다 어떤 단점들을 타고 난다. 그리고 그런 단점들은 살아갈 때 가끔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일으키는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단점은 최대한 극복하려고 한다.

 

하지만 극복이 거의 불가능한 단점들이 있다. 음치가 노래를 잘 부를 수 없고, 머리가 나쁜 사람이 노력한다고 해서 머리가 좋아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많은 단점들은 나름대로 최대한 노력을 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장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단점은 아닐 수 있게 된다. 문제는 그렇게 되기까지 참으로 힘든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힘들지만 많은 노력을 해서 자신의 단점을 어느 정도까지 벗어났다면, 우리는 그것을 단점을 극복했다라고 표현한다. 즉, 그때부터 단점은 더 이상 단점이 아닌 것이 된다. 아니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한다.

 

처음부터 말했듯이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단점을 싫어한다. 우리가 단점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한데, 그 단점으로 인해서 어떤 식으로든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장점은 이득을 단점은 손해를 가져온다. 아니 거꾸로 말해야 옳다.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을 장점이라고 말하고 손해를 일으키는 것을 단점이라고 한다.

 

장점으로 알려진, 노래를 잘 부른다거나 농구를 잘하는 것이 왜 이득이냐고 묻고 싶겠지만, 이런 것들은 당연히 이득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잘하는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매력이 많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 수월하다. 그러니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아쉬운 입장이기 보다는 우월적 입장일 가능성이 높다.

 

인간관계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이득의 가장 근원적 출발점이다. 즉, 관계를 잘 맺으면 맺을수록 우리는 이득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이득은 너무도 많아서 나열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그러니 이것의 반대인, 무엇인가를 못하는 것은 완전히 반대 현상을 일으킨다. 즉, 단점은 손해를 일으킨다. 심한 경우엔 혐오의 대상이 되기까지도 한다. 예를 들어서 외모가 심하게 좋지 않은 사람이 바로 그런 예가 된다. 반대로 외모만 특별하게 예뻐도 다른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는다.

 

이런 상황이니 누가 단점을 극복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단점이 단점인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많이 힘들기 때문에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한다. 혹시라도 극복을 하려고 해도 그 과정은 참 많이 힘들고 괴롭다.

 

원래 노력이라는 과정 자체가 인간의 본성을 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행복은 마음도 몸도 편할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력은 자신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과정이기에 몸도 마음도 편할 수가 없다. 노력은 언제나 긴장되고 힘들다.

 

물론 노력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때는 달콤하고 큰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노력하고 있는 그 자체는 힘든 불행한 과정이다. 그래서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된다. 누가 지금 당장 행복보다 불행을 더 원하겠는가?

 

그럼에도 소수의 사람들은 타고난 집요하고 끈질긴 성향으로 인해서 남다른 노력을 해서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어느 정도 성공도 한다. 물론 처음부터 타고난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까지는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노력의 과정 중에서 자연스럽게 얻은 자기 확신이다. 다른 말로 에고 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인데, 남다르게 힘든 노력을 해서 그것을 얻었기에 그것에 대한 가치를 엄청나게 부여하고 있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무엇인가를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한 끝에 극복해냈다면, 그것을 그 누구에게나 말해도 대단하다는 칭송을 들을 수 있기에 만들어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은 허상의 가치이다.

 

물론 이것을 자기 확신이나 혹은 자존감 수준으로 마무리를 한다면 큰 문제는 없다. 진짜 문제는 자신이 노력해서 이룬 결과를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남들 역시도 자신처럼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일어난다.

 

즉,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죽어라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공한 사람은 또 다른 자신의 어린 시절을 겪는 이들을 보면서 연민의 감정이나 도움을 줄 생각보다는 너도 나처럼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해낸 것을 남도 해낼 수 있다고 믿는 마음으로 그렇다.

 

이것은 원래 잘 타고 내어나서 같은 위치에 있는 다른 사람의 입장과는 완전히 다르다. 원래부터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잘 자란 사람은 자신보다 못한 환경에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연민과 동정심을 느끼고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려고 할 수 있는데 반해서, 노력해서 그 자리에 선 사람은 훨씬 더 엄격하다.

 

왜냐하면 자신이 겪은 그 고통의 시간의 가치에 스스로 완전히 빠져 있기 때문이다. 더해서 그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얻은 어쩔 수 없는 상처로 인해서 인간은 관대함보다는 엄격함이 본질적이라고 믿게 된다.

 

그러다 보니 타고난 장점으로 무엇인가를 잘하는 사람들은 못하는 사람을 충분히 이해해주고 감싸주는 반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서 무엇인가를 잘하는 사람들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노력이 부족하다고 비난하고 게으름을 피운다고 화를 낸 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노력을 해서 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배경엔 결국 또 다른 자신의 장점이 작용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위해 달려갈 수 있었던 그 성향, 즉 타고난 성격이 사실상 엄청난 장점이었음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과 비슷한 출발점에 있는 이들에게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장점을 강요하는 것이다. 즉, 노력하는 인간이 되는 노력을 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전혀 인식하지 못해서 만약 누군가 힘들어서 포기를 하면 엄청나게 비난을 퍼부으면서 상대를 완전히 인간 쓰레기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원래 제대로 힘든 노력을 해서 그것을 얻어냈다면,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 노력을 해야 하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괜히 더 안쓰럽고 마음이 쓰여야 옳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수준의 공감 능력이다.

 

하지만 그 노력의 힘든 과정이 결국 이런 일반적 수준의 공감조차도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즉, 너무 힘든 과정을 통과하면서 사람 자체가 완전히 메말라 버린 것이다. 그리고도 자신이 메말랐다는 사실조차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

 

이것은 이 사람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크게 민폐를 끼치지만 진짜 문제는 바로 본인이다. 즉, 그렇게 힘든 노력을 해서 단점을 극복해 냈지만 결국 행복해지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미 말했듯이 이득이 되면 장점이고 손해를 일으키면 단점이다. 그리고 이득은 대부분 행복으로 이어진다. 사실 우리가 이득을 원하는 이유가 바로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단점을 극복한다는 말은 손해를 이득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손해가 이득으로 바뀌면 더 행복해진다.

 

그러니 단점을 극복하려는 목적은 당연히 행복 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하는 모든 생각과 행위는 바로 자신의 행복을 더욱 더 높이려고 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단점을 극복하고 난 후 공감 능력을 상실하고 사회와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서 결국 메마르고 무뎌진 인간이 되어 행복하기보다는 차라리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 것보다도 못할 정도의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단점을 극복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단점을 극복했다는 말에는 반드시 붙어야 하는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단점을 극복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치러야 했던 그 모든 비용을 결코 자신의 잘남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쓰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단점을 극복하는 것은 그저 행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일 뿐이다.그것은 그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조금 덜 행복한 일을 한 것 뿐이다. 좀 더 큰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노력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본전의식을 가지고 있다. 남들이 놀 때 힘들게 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힘든 시간에 마구잡이로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사회에서도 그 노력의 가치를 인정해준다. 그러니 목이 뻣뻣해질 수 밖에 없다. 결국 그래서 뻣뻣하고 메마르고 공간 능력이 결여된 사람이 되고 만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가끔 보는 뉴스에 나오는 성공한 정치인들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또한 회사에서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자신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어떤 면에서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면서도 남들에게 지속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기에 동정하기도 힘든 사람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들은 원래 가진 단점은 극복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결코 극복하지 못할 치명적 단점을 하나 만들어 내고 만 사람들이다.

 

그래서 단점을 극복하고자 할 때, 단점을 극복한 후에 반드시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정말로 행복해졌냐 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얻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드러나는 주변의 변화로 인식하기 힘든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우리는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참 많은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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