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슬프게도 행복은 배울 수 없다.

아이루다 2016. 11. 18. 07:29


우리가 뭔가 새로운 것을 혹은 뭔가를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하는 행동들이 있다. 흔하게는 서점에서 그것에 관련된 책을 산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하고자 한다면 학원에 등록하거나 혹은 인터넷 강의를 들으려고 할 것이다. 그것이 육체적인 활동이라면 배우고자 하는 종목을 가르쳐주는 각종 체육관에 나가게 될 것이다.

 

이런 행동들이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할때 흔히 나타나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이 질문은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과 같다.

 

돈을 많이 버는 법을 배우고 싶을까? 인간 관계를 잘하는 법을 배우고 싶을까? 세상 누구보다도 피아노를 잘 치는 법을 배우고 싶을까? 어떤 여자나 남자라도 유혹할 수 있는 법을 배우고 싶을까?

 

무엇을 배우고 느낄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우고 싶은 배경엔 모두 공통적인 한가지 목적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목적이다.

 

결국 우리가 정말로 배우고 싶은 것은 바로 '행복하게 사는 법' 이다. 그런데 이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배워야 할까?

 

사실 이것을 배울 수 있는 수단이나 경로는 엄청나게 넘쳐난다. 서점에 가면 행복하게 사는 법에 대한 설명을 해 놓은 책이 수천 권은 될 것이다. 그것도 현재 파는 것만 따져서 말이다. 과거에 나온 책까지 따지면 수십 만권은 될 듯 하다.

 

비록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정규적인 학원은 없지만, 수 많은 그것에 대한 각종 강연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다. 행복은 중요하기 때문에 수 많은 경로를 통해 가르쳐지고 있다.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도 서로 그것을 가르친다.

 

자신이 행복한 것들을 기준으로 해서 상대에게 그것을 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조언해주기도 하고, 상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렇게 살면 불행해질 것이라고 걱정해주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아주 다양한 경로가 있다.

 

이렇게나 많은 경로가 있음에도 우리가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 그래서 결국 행복한 사람의 숫자는 그다지 늘지 않는다.

 

매일 그렇게 많은 행복에 관한 책들이 팔리고, 매일 그렇게 많은 강연들에 사람들이 몰리고, 매일 TV에서 하는 행복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보는 많은 시청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매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행복에 대한 고민을 하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려고 애씀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별로 바뀌지 않는다.

 

도대체 우리는 왜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지 못할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행복은 지식으로 쌓는 것도 아니고, 기술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연습한다고 익숙해지는 것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한다고 해서 점점 능숙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은 순간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며, 그런 감정 경험들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감정을 연습해서 느낄 수는 없다. 우리는 감정을 반복해서 훈련함으로써 느낄 수 없다. 우리는 감정을 누군가의 가르침을 통해 느낄 수 없다. 그러니 행복은 배울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법이다. 이것이 인간 비극의 시작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은 사실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우리는 배워서 익히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공자님 말씀처럼 매일 배우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가치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배워도 행복해지는 법은 배울 수 없다.

 

우리가 행복을 배울 수 없는 진정한 이유는 행복이 과정이나 목적이 아닌 오직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달리기 연습을 통해 1등을 할 수 있는 노력은 할 수 있지만, 1등 자체를 배울 수는 없다. 1등은 노력의 결과이지 결코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여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런 다양한 행복할 가능성이 있는 결과들이 주어질 때, 그것을 내팽개치지 않는 현명함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이 결과임을 알고 나면 한 가지 사고의 전환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동안 행복을 목표로 삼아왔기에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그래서 행복의 조건들이라고 알려진 것들을 갖추기 위해서 무던히도 노력했다. 이것을 조금 다른 시점에 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그 동안 돈을 많이 갖길 바랬다. 출세를 원했다. 넓은 집과 비싼 차를 꿈꿨다. 남들과 다른 비싼 것들을 누리는 삶을 추종했다. 비싼 돈을 들여서 해외 여행을 떠나길 원했다.

 

사실 이런 조건들이 행복의 반대는 결코 아니다. 당연히 행복이 중요한 조건들이다. 문제는 이 조건들을 갖추기란 참으로 힘들다는 점이다. 행복의 조건으로써 중요한 항목일수록 경쟁이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누구나 행복을 원하기에 그것으로 가는 중요 조건들이 인기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그것이 햇빛처럼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거의 무한대의 것이라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돈은 복사될 수 없다. 오직 이동만 가능하다. 그러니 내가 돈을 가지면 누군가 돈을 잃는다.

 

그래서 행복하고자 그렇게 노력해서 결국 그 조건들을 어느 정도 갖출 수는 있게 되었지만, 정작 그것이 정말로 행복한 것인지조차 스스로 진단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즉, 결과를 제대로 받았는지 그것을 평가하는 기준점마저도 잊어 먹었다. 너무 경쟁을 심하게 한 탓에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만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주어진 결과가 정말로 행복한 것인지, 아니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데 만약 이 시점에서 행복이 결과임을, 그것은 결코 배울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면 이제 다른 각도에서 자신의 행복을 바라볼 수 있다. 자신이 정말로 행복한지를 제대로 판단해 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그 동안 행복의 조건으로 알려진 것들을 갖추면 당연히 행복한 것으로만 알았다. 즉, 어떤 노력을 해서든지 조건만 갖추면 행복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다들 그렇게 말하니 그게 맞는 것처럼 보였다.

 

매일 10시간 달리고, 매일 5시간 근력 운동을 해서 10년간 달리기 연습을 하면 세계 1등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이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건을 다 갖춘다고 해서 그 결과가 늘 원하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결과는 과정이나 목표와 그다지 상관이 없다.

 

결과는 그저 결과일 뿐이다. 우리는 남들에게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그저 그럴듯한 행복의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주변에서 행복해보인다면서 부러워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 부러움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부러움은 언젠가 자신이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게 됨으로써 커다란 상처를 남긴다.

 

이것의 함정에서 벗어나 결과로써 행복을 받고 싶다면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우려는 노력을 줄여야 한다.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없다. 대부분의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나 강연은 그저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위로는 힘들 때 큰 힘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평생 위로만 받고 살 수는 없다.

 

넘어진 아이는 언젠가는 홀로 일어서야 한다. 부모가 평생 아이를 돌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과도한 위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정말로 당연한 것 말이다. 행복은 결코 가르쳐 줄 수도 배울 수도 없기에, 그것을 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행동은 실제로 위로와 같은 다른 것들로 채워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이제는 자신의 행복에 대한 직시가 필요하다. 누군가 가르쳐주지도 못하고, 배울 수도 없으니 홀로 독학을 해야 한다. 그 누구도 우리 자신이 무엇을 해야 행복할 수 있을지 알려주지 못한다. 그것은 오직 우리 자신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 속에서 들리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남들의 평가나 판단이나 부러움 등은 다 제쳐두고, 오직 자신의 마음 속에서 들리는 소리만을 들어야 한다.

 

이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넘어질 때마다 자신을 일으켜주던 엄마가 어느 날 혼자 일어서보라고 하면서 가만히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일이다. 우리는 갑자기 당황할 수 밖에 없다. 한번도 그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엄마를 바라보고 서러움이 가득 찬 눈으로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홀로 일어서야 한다. 그래야 어른이 될 수 있다. 그래야 홀로 살아갈 수 있다.

 

행복하게 사는 법에 대한 모든 종류의 조언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그것들은 그저 말이나 글일 뿐이다. 혹은 잘해야 다른 이들의 행복한 법일 뿐이다. 그 어떤 것도 자신에게 도움은 될 수는 있지만 거기까지만 의미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다. 그러니 답도 자신이 내야 한다. 이것은 그 누구도 해 줄 수 없는 일임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는 홀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아는 아이처럼 말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힘들 수도 있다. 당장 위로도 없고 계속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끝없는 자괴감에 빠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해야 한다.

 

그냥 살고 싶으면 안 해도 된다. 하지만 행복하고 싶다면 해야 한다. 차이는 그것이다.

 

행복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그 시간을 자신과 대화를 하는 시간으로만 바꿔도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그리고 덤으로 삶이 가진 그 본질적인 실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그럼으로써 의식적인 자신에 대한 각성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가장 좋은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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