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과정과 목표

아이루다 2016. 10. 28. 12:18


"High Risk High Return"

 

기업에서 혹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목표로 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 중에 하나이다. 투자를 해야 할 때 반드시 새겨들어야 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에 사기를 당한다. 대부분의 사기는 꿀물과 같이 달콤함을 약속한다. 즉, 투자대비 이득이 아주 크다고 소개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쌈짓돈을 내 놓는다. 하지만 돌아오는 이득이 크면 클수록 위험하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잊는 순간, 절벽으로 추락한다.

 

인간은 대부분 비슷한 것을 욕망한다. 돈, 명예, 권력 등등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것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욕망한다.

 

그래서 경쟁이 심하다. 경쟁이 심하다는 말은, 그것을 얻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정말로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별 다른 노력 없이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대부분 사기이다.

 

그리고 이 원리는 비단 성공, 투자, 돈, 명예, 권력 등과 같이 우리가 세속적이라고 평가하는 대상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무엇인가가 매우 좋다면, 그것은 그 만큼 매우 위험하다. 이것은 반드시 함께한다.

 

그것의 가장 흔한 예가 바로 사랑일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과 같은 것은 성공이나 투자에 비해서 훨씬 인간적이며 또한 소중한 인간의 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상 사랑도 투자와 다름이 없다.

 

사랑은 성공하면 대단한 행복을 가져다 주지만, 실패할 경우 그 만큼 심각한 피해를 입하는 것도 드물 정도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사랑에 실패하면 자살을 하기도 한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도 마찬가지다.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을 거의 자신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즉, 자식도 역시나 매우 소중하기 때문에, 그것을 잃을 때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입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어떤 큰 상처를 입고 있다면 그래서 그것으로 인해서 무한한 고통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의 시작점은 바로 자신이란 것이다.

 

물론 의도하지 않게 혹은 어린 나이라서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욕구가 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나 혹은 남들만큼이라도 대접받고 싶은 심리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그래서 이것은 단지 본인의 잘못이라고만 몰아 붙일 수는 없다. 이것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고유한 문제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기엔 그 문제가 너무도 크다.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미 큰 상처를 입고 고통 속에서 보내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혹은 지금도 그 속에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 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마지막으로 언제라도 그런 고통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우리들을 위해서라도 그렇다.

 

사실 해결책은 단순하다. 왜냐하면 문제의 시작점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갖고 싶다는 욕망으로 인해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을 시도했다. 그래서 운 좋게 성공했다면 좋았겠지만 실패했으니 고통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렇다면 아무런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 대책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삶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아니다. 뭔가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그래서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그것을 향해 투자를 하되,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써 놓고 보니 웃기다. 도대체 결과를 기대하지 않으면서 왜 투자를 할까?

 

이것을 생각할 때는 조금 다른 관점의 시선이 필요하다. 기존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의 시선이 아닌, 약간 다른 각도에서 이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목표를 정하고 과정을 통해 그것을 향해 간다. 그런데 많은 현명한 이들은 목표 그 자체보다는 과정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조언을 한다. 이 말이 방금 했던 해결책과 다른 점이 있을까?

 

사실 없다. 투자를 하되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나, 목표를 향해 가되 과정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은 사실상 같다. 그것이 투자라는 것과 과정이라는 것이 다르게 보일 뿐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평범한 관점이다. 우리는 조금 더 근원적 관점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결과나 목표가 정말로 존재하는 명시적인 것이냐에 대한 질문을 통해 가능하다. 즉, 우리는 분명히 명시적으로 결과를 얻고 목표를 달성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것이 모든 것의 결론일까?

 

사실 아니다. 예를 들어서 돈이 목표라고 해보자. 돈은 다수의 사람들의 목표이다. 하지만 돈만 있다고 해서 그것이 가치를 가질 수는 없다. 돈은 그것을 쓸 때 최종 목표가 달성된다. 그리고 돈을 쓰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가장 본질적인 목표를 달성한다. 그것은 바로 행복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것처럼 굴지만, 사실 사랑의 최종 목표는 행복이다.

 

행복이 없는 돈은 사람을 끝없이 외롭게 만들 수 있고, 행복이 없는 사랑은 사람을 끝없이 비참하게 만든다.

 

즉,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고 싶어하는 그 모든 결과도 이루고자 하는 모든 목표의 최종 결론은 오직 행복이다. 그것이 이외엔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투자를 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나 노력을 해서 얻고자 하는 그 모든 것은 바로 행복하기 위함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즉, 우리가 갖고자 하는 대부분의 결론과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목표는 사실상 중간 단계에 불과하다. 즉, 지나고 있을 때만 잠시 유효할 뿐, 지나고 나면 금세 무의미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희열을 느끼지만, 금세 없어지고 만다. 그러면 우리는 허탈함에 사로잡히거나 혹은 뭔가 공허함을 느낀다. 이것의 해결책을 단순하다. 우리는 다시 새로운 목표를 정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각종 부작용에 시달린다. 의욕 상실, 우울증, 불안함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높은 산에 오르고 나면, 다시 또 더 높은 산에 올라야 한다. 그런데 모든 산을 다 오르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구도 도전해 보지 못한 무엇인가를 또 찾아야 한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향해 가며, 목표를 이루는 순간 희열을 맞보고 또 다른 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이것이 무한 반복된다.

 

그렇다면 정말로 목표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목표가 아닐 수 있다는 의미가 되는 셈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목표가 필요한 이유는 결국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표는 사실 그저 명목적으로 필요한 것뿐이다.

 

이 말은 목적은 단지 우리가 그것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가치를 만들고만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자신의 시간과 돈 그리고 노력 등등 가지고 있는 모든 한정적 자원을 쏟을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과정의 가치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단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또 다른 선택 가능한 방법론이 아닌, 사실상 삶의 본질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단지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 돌진하는 훈련을 오래한 탓에 그것을 이해하기가 무척 어려울 뿐이다.

 

우리가 이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그것도 훨씬 더 크다.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의 최종 목표는 결국엔 죽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죽음을 목표로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결국 우리들의 결론은 죽음이다. 그리고 죽음은 모든 가치, 모든 의미,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종말을 의미한다. 즉, 살아 생전에 그 어떤 것을 가지고 있더라도 죽음과 함께 완전하게 무의미해진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죽는다고 해서 그가 남긴 것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반론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인류 전체가 멸종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사실 이 우주에서 지구라는 행성 하나가, 아닌 태양계 전체가 사라지는 것조차도 너무도 작은 사건일 뿐이다.

 

우리가 손에 쥔 모래알보다도 가치가 없는 사건이다.

 

결국 우리가 추구한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러면 당연히 우리가 목표로 했던 모든 것도 사라진다. 단지 우리에게는 그것을 하는 과정 중에 얻은 다양한 경험과 기억들만 존재한다. 사실 이것은 존재한다고 말하긴 그렇다. 그것은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머리 속에 기억은 남지만, 완전히 없어진 사건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은 매우 중요해진다. 기억 속의 과거나 목표로 삼은 미래는 사실상 허상이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은 없다. 그것은 각자 나름대로 결론을 내야 할 것이다. 단지 우리가 어떤 결론을 내든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 많이 잘못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우리가 내린 결론 또한 아주 엉뚱할 수 있다는 점을 언제나 머리 속에 담고 있어야 한다.

 

생각을 해야 하는 삶이 결코 답은 아니지만, 생각을 해야 이것에 대한 착각을 멈출 수 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진실한 삶의 본질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물론 평생 진실을 모른 채 살다가 죽어도 된다. 그것이 행복하다면 무엇이든 정답이다. 정말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