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가치의 발생

아이루다 2016. 10. 26. 07:54


격려, 응원, 감사, 부러움, 공감, 축하.

 

하나같이 좋은 단어들이다. 우리 인간 사회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살아갈 힘을 주며, 삶의 의미를 갖게 해주는 마법 같은 단어들이다.

 

우리는 다른 이의 격려와 응원, 감사하는 마음과 공감 그리고 축하 그리고 부러움이 섞인 눈길을 통해서 자신이 사는 삶의 의미를 느끼고 그것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물론 행복은 자체 발생된다. 맛난 것을 먹을 때, 재미난 것을 구경할 때, 낯선 곳을 여행할 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좋은 마법 같은 단어들이 함께하면 행복은 훨씬 더 증폭된다. 행복의 경험은 끝났어도 그것의 여운이 계속 남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이 마법 같은 단어들을 사용한다.

 

중국의 오래된 고사에 지음이란 고사가 있다. 지음지교라고 하기도 하는데, 진정으로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고사에는 백아라는 거문고를 연주하는 사람과 종자기라는 그 음을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 세상에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 것, 그것이 가진 정말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고사이다. 백아는 종자기가 죽은 후, 다시는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알아주는 이가 없으니, 연주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고사를 통해서 우리는 누군가 우리를 알아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격려, 응원, 감사, 공감 등이 바로 그것에 관련된 단어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의 존재가 필요한 것일까? 도대체 왜 백아는 종자기가 죽은 후, 다시는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을까?

 

여기에서 '가치' 라는 단어를 생각해야 한다. 즉, 누군가 우리를 알아준다는 말이 가진 속 뜻은 바로 가치의 발생을 의미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치라는 말은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모든 선택 기준을 이 가치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치에 대한 개개인의 기준점을 바로 가치관이라고 한다.

 

어떤 물건을 살 때, 그것의 적정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가치이다. 사실 우리가 제품을 산다는 것이 가진 의미가 바로 화폐의 가치와 제품의 가치를 교환하는 일이다. 그래서 만약 화폐의 가치보다 제품의 가치가 더 낫다고 여겨지면 기분이 좋아진다. 반대가 되면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돈을 쓰는 행위는 가치의 교환에 따른 만족이지 결코 돈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즉,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만족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을 헷갈리기에 자꾸 필요한 돈은 아끼고 불필요한 돈을 쓰는 결과가 나타난다. 그러니 싸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것을 자꾸 산다. 정작 필요한 것은 돈이 아까워서 못 산다.

 

우리가 어느 날 놀러 갈지, 아는 사람 결혼식에 참석할지 결정하는 것도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가치 판단 중 하나이다. 즉, 어떤 행동이 자신에게 더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두고 판단을 한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하게 각자의 평소 가치관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사람들의 성격이란 것이 형성되는 것이다. 늘 비슷한 가치 기준에 의해서 판단이 되니, 비슷한 상황에서는 늘 비슷한 반응이나 행동을 보인다. 우리는 이것을 성격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상황이 되어서 평소의 가치 기준으로는 도저히 판단하기 힘든 상황이 되면, 우리는 몹시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심지어 고통스럽거나 두렵기까지 하게 된다.

 

이것이 경험 부족에서 오는 현상이다. 그렇지만 그런 특별한 상황조차도 반복되면 일정하게 가치 판단 기준이 생기면서 별 다른 어려움이 없이 결정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그래서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면, 가능하면 다양한 상황에서 그 사람의 행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실수는 인정해줄 수 있지만, 만약 그런 실수가 반복된다면 그 사람은 근본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평소엔 아주 멀쩡한 사람이 어떤 위기 상황에는 극단적 이기주의지가 되는 경우도 있고, 평소엔 참 싸가지 없고 재수 없던 사람이 어떤 위기 상황에서는 탁월한 희생 정신을 발휘할 수도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의식적으로 혹은 예의상 서로에게 좋은 말들을 한다. 진심으로 말해주는 사람들도 있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그 말이 어떤 의도에서 나왔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당사자에게 쌓이고 쌓이면 그것의 가치라는 것이 형성된다. 반대로 반복적으로 나쁜 말을 듣게 되면 가치는 점점 사라져간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가치가 바로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지금 사랑, 정직, 용기, 관용, 배려, 용서 등과 같은 단어들에 대해서 좋은 가치를 느끼지만, 사실 그런 말들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끝없이 주입된 인위적인 개념들이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이 자신의 생각과 달리 우리들 자신의 생각이 아님을, 우리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치가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잘 생각해야 한다.

 

보통 이런 단어들은 인류 보편적 가치라고 칭해진다. 즉,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가치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것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 말이 절대적으로 옳을까?

 

아니다.

 

우리는 그 가치를 추구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전혀 그렇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정해둔 것이다.

 

거짓말을 자꾸 하니까 정직을, 남을 미워하고 남에게 무관심 하니까 사랑을, 자꾸 겁을 내니까 용기를, 참지 못하고 복수를 하려고 하니까 관용이나 용기를, 남의 입장을 너무 신경 쓰지 않으니까 배려를 가치 있는 것으로 정의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우리 인간이 같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주 좋은 역할들을 한다. 또한 이것은 개개인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그런 것들을 가치화 시킨 것이다.

 

즉, 우리는 서로 잘 살기 위해서 이런 가치들을 보편적 의미로 정해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가치들이 상실되는 세상이 열리면 우리는 금세 멸종할 것이다.

 

보편적 가치조차도 이런 형편인데, 우리 개개인이 가진 각자마다 가치는 얼마나 더 그렇겠는가?

 

하지만 이미 어떤 가치를 가진 우리는, 그 가치가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의해서 발생했고 또한 그것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것임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니 가치 주장이 일어난다. 즉, 자신이 믿는 가치가 그 어떤 것보다도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것이 바로 신념이다.

 

일단 신념화된 가치는 매우 단단해진다. 그래서 원래 가치가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흐름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주변에서 그것의 가치가 없음을 말해줘도 모두 자신을 제대로 몰라줘서 그렇다고 여기는 현상을 만들어 낸다.

 

즉, 신념이자 똥고집이 되는 것이다.

 

원래 가치는 주변에서 부정당할수록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처음에 생길 때 주변의 긍정적 반응에 의한 것이었으니 없어질 때도 그래야 맞다. 그런데 이게 깨진 것이다.

 

물론 좋은 면은 있다. 자신이 믿는 바를 평생 추구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문제는 그 시작이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똑같은 것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말하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 다양한 의견 중에서 무엇이 더 제대로 된 판단을 하는 것은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도 이미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 작동하고 있다.

 

아무튼 우리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격려나 응원도 받고 비웃음이나 천대를 받기도 한다. 이것을 가지고 각자가 가진 가치관을 끝없이 수정한다.

 

하지만 너무 휘둘리면 문제가 생긴다. 어제와 오늘이 너무도 달라지만 우리는 신뢰를 잃는다. 그래서 우리는 늘 어느 정도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너무도 급변하면 주변에서 그것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요령일 뿐, 진실은 아니다.

 

사실 우리는 어제와 오늘이 전혀 달라도 상관이 없다. 어제는 맛있었던 밥이 오늘은 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제와 오늘 같은 밥을 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오늘도 맛이 있는 척 해야 한다. 이것은 진실이 아니라 관계의 요령이다.

 

진실은 그 어떤 가치보다도 중요한 것을 알려져 있지만, 우리는 늘 진실과는 멀게 살아간다. 왜냐하면 언제나 진실한 것이 늘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힘은 진실이 아닌 이득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도 진실의 가치를 주장하는 것이다. 사라지기 쉬우니까 지켜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치를 판단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것은 각자의 미래를 결정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모이면 우리 전체 사회의 미래를 결정한다.

 

하지만 가치는 결코 절대적일 수 없다. 아무리 그것이 중요해도 가지 자체는 언제나 한계를 갖는다. 그러니 이 점을 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실수를 하지 않게 된다.

 

남에게 자신의 가치를 주입하고, 남과 싸우고, 남의 가치를 무시하는 행동을 안 하게 된다. 우리는 잘날수록 그렇게 된다. 자신이 잘났으니 자신의 가치가 우월하다고 믿는다. 그러다가 결국엔 절대적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이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수 많은 가치 충돌, 즉 사람과 사람간의 갈등을 야기시킨다. 각자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면 될 것을 서로가 자신의 가치가 우월하다고 주장하니까 안 싸울 수가 없다.

 

누구들 자신의 가치가 무시되는 것을 참아낼 수 있으랴.

 

우리는 자신이 그리도 신봉하는 가치가 그저 주변의 격려, 응원, 감사, 부러움, 공감, 축하와 같은 반응에 의해서 임의로 만들어진 우연한 결과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즉, 내가 어떤 가치를 가졌다면, 그것은 우연히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란 것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가정에서 자라났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즉, 한 사람의 인성을 결정하는 것에는 가정교육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