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선택으로부터 오는 불행

아이루다 2016. 8. 15. 08:12

 

선택이란 말이 가진 가장 좋은 점은 바로 그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이다. 즉, 선택은 우리 개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어떤 것을 고를 수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것이 된다.

 

선택의 자유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우울하겠는가?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도, 휴일 날 무엇을 할지 결정할 때도, 이번엔 어디로 여행을 떠날지도, 어떤 직장에 들어갈지 결정할 때도, 어떤 취미 생활을 할지 결정할 때도 모두 선택을 할 수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유로움을 꿈꾼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자유가 가진 의미 자체가 바로 선택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자유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선택의 자유' 인 셈이다. 사실 그것 이외에 자유가 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감방에 갇힌 죄수나 방에서 키우는 개의 경우 감옥이나 집안에서는 자유롭지만, 스스로 원할 때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없기에 자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선택을 할까? 아주 단순한 질문이지만,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선택을 하는 가장 궁극적 목적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쪽으로 혹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덜 불행한 쪽으로 선택을 한다.

 

더운 날 같은 물이라면 더 시원한 물을 마시려고 할 것이고, 몸 어딘가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사실상 훨씬 더 아픈 수술도 감당하려고 한다. 행복을 위한 선택이든, 더 불행함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든 이것은 사실 모두 행복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선택은 '행복'을 위한 매우 중요한 도구가 된다. 그리고 우리 머리 속에도 각자가 내릴 수 있는 선택은 행복으로 갈 수 있는 정말로 중요한 권리라고 인식되어 있다.

 

가만히 두어도 집 안에 있을 사람이지만, 누군가 강제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는다면 그것으로 인해서 큰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나갈 수 있는데 안 나가는 것과, 나갈 수 없어서 못나가는 것은 같은 결과라고 해도 아주 큰 차이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의 차이이다. 결혼을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이다. 음식을 안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의 차이이다. 모든 종류의 '못' 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불행을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인간이 그리도 자유를 원하는 것이다.

 

자유는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선택은 행복의 문을 여는 과정이다.

 

하지만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심리학적 연구 결과에 의하면, 상점에서 동일한 역할을 하는 제품 종류가 7종 이상이 같이 모여 있으면, 그 후로는 많으면 많을 수록 점점 더 상품 구매율이 하락한다는 결과가 있다.

 

이에 관해서, 미국의 한 마트에서 어떤 잼을 6개 진열한 곳과 24개 진열한 곳의 매출 비율을 비교했더니 6개만 진열한 장소에서의 매출이 24개를 진열했던 장소보다 6배 높았다는 실제 실험 결과도 있다.

 

물론 이 실험은 매출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마트의 영업 전략을 세우기에 참고가 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매일 행복을 위해 선택하고 있는 어떤 것들이 가진 부작용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즉,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언제나 행복을 의미하는 것 만은 아닌 것이다. 이 실험의 결과는 선택의 대상이 너무 많으면 우리는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선택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 인간은 기본적으로 집중을 할 때 가장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설령 그것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이, 집중이 가진 힘은 대단하다.

 

일단 집중은 성공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집중을 통해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면, 이후 실패로 인한 자책감이나 아쉬움이 훨씬 덜 하다. 원래 후회나 아쉬움이 바로 과거에 자신이 더 뭔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집중은 기본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이 집중할 때보다 더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집중은 심리적 개운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것은 꽤나 좋은 감정이고 행복한 감정이다.

 

집중이 주는 또 다른 장점은 바로 어떤 상황에서 온전히 몰입을 함으로써 그 대상이나 주변 환경에 완전히 동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여행이 주는 행복에도 집중의 행복이 존재한다. 혼자 갔다면 자신에 대한 집중, 누군가와 함께 갔다면 그 사람과의 집중이 주는 행복은 꽤나 크다.

 

여행이 새로운 장소에 대한 흥분감과 낯선 환경이 주는 두려움 등이 결합된 행복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여행을 갔다 온 후 가질 수 있는 충만함은 그런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충만함은 여행기간 동안 얼마나 여행 장소와 자신이 동화 되었는지, 자신이나 혹은 같이 간 타인에게 얼마나 집중했느냐에 따라 결정이 된다. 이런 종류의 충만함은 여행이 끝난 후에도 아주 오랫동안 은은한 행복감을 마련해준다.

 

아무튼 집중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중요한 집중을 방해하는 존재가 하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러니 하게도 바로 '선택' 이다.

 

선택과 집중은 모두 행복을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선택이란 점은 의아하다.

 

우리는 선택과 집중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이 말은 그저 구호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이 말이 가진 의미는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다. 집중이 따라붙지 않는 선택은, 차라리 선택을 하지 못함만도 못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선택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불행이 선택을 함으로써 불행을 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우리는 원래 선택을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데, 왜 불행하게 될까?

 

우리가 선택을 통해 불행함을 경험하는 이유는 바로 선택되지 못해서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10개 중 하나를 선택했다면 반드시 9개는 버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개를 선택했지만, 그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게 되면 일은 훨씬 커진다. 여기에서 바로 후회와 아쉬움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등 공신이다.

 

바로 여기에서 집중이 필요해진다. 선택은 자유이지만, 선택을 한 후에는 반드시 집중이 필요하다. 집중되지 않는 선택은, 그 선택에 약간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지속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번진다. 이것은 지금 선택한 것들에 대한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심지어 후회스럽게 만들기도 하며, 결국엔 집중도를 완전히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 온다.

 

어떤 면에서 요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경험하는 많은 불행이 바로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왜냐하면 요즘 세상은 그 어떤 시대보다도 자유롭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 가능한 대상은 정말로 많다. 단 하나의 제품을 사는 것에도 수십 종의 제품이 즐비하다. 여행을 갈 곳도, 즐길 수 있는 영화도, 볼 수 있는 책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취미 생활도 그렇다.

 

너무 많아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사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땅과 돌멩이가 그들이 가진 전부였다. 그러니 같이 모여서 놀아야 재미있었다. 그리고 땅과 돌멩이를 가지고 놀았다. 그렇게 각종 놀이를 발명했다.

 

요즘 아이들은 놀 수 있는 선택이 많다. 사실 너무 많아서 다 하기가 힘들다. TV도 볼 수 있고, 자동차도 가지고 놀 수 있다. 인라인을 타기도 하고, 퀵 보드를 탈 수도 있다. 인형 놀이도 가능하고, 책을 읽을 수도 있으며, 스마트 폰으로 게임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꼭 같이 놀 필요가 없다. 혼자도 충분히 행복하게 놀 수 있다. 이로 인해서 아이는 관계로부터 오는 행복을 누릴 기회가 줄어 버렸다.

 

더 과거로 가면 어른들도 비슷하다. 자유로움이 부족하고, 선택 가능한 대상도 부족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것들은 사실상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그 필수적인 것들은 분명히 집중을 만들어내었고, 그로 인해서 얻어지는 행복은 매우 컸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적인 것을 좋아하는 만큼 필수적인 것을 꺼려한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설령 하고 싶다고 해도 자신이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것이 좋다고 느낀다.

 

학생들은 휴일 날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과 집에서 공부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날이 지나고 나면,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는 것과 집에서 공부하는 것은 완전히 차이가 난다.

 

분명히 집이 더 편하고 이동도 하지 않아서 시간도 절약됨에도 불구하고 공부 결과는 도서관이 훨씬 낫다. 그래서 돈을 지불하고라도 불편한 도서관에 가려고 한다.

 

그럼에도 집에서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 경우 말 그대로 집중력이 높은 것이다. 즉, 선택 후 집중이 가능한 경우이다.

 

도서관에 간 학생은 필수적인 상황이 놓인다. 다들 공부를 하는 공간에 가면, 자신이 선택 가능한 것은 없다. 기껏해야 엎드려 자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 공부를 한다. 집에서는 다르다. 계속 선택 가능하다. 스마트 폰도 보고, TV도 볼 수 있다. 언제든 간식도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공부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선택적인 상황보다 필수적인 상황이 더 낫다.

 

사실 여행 중에 느끼는 충만함도 바로 필수적이기에 발생한다. 여행을 떠난 우리들은 대부분 그 장소에서 어떤 다른 선택이 힘들다. 사실상 필수적이다. 그 장소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하고, 대부분의 여행은 이미 대부분 사전 계획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같이 간 사람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떠나면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같이 간 여행 동료뿐이다. 덕분에 사람에 대해서 필수적이게 된다. 즉, 집에 있었다면 선택적 관계이지만, 여행 중에는 필수적인 관계로 바뀐 것이다. 이것이 집중도를 높이고 그것으로 인해서 충만함을 가져온다.

 

이렇게 필수적인 것이 가진 장점은 집중이 쉽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선택은 최초에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좋지만, 그 후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리고 선택은 책임이라는 아주 힘든 존재가 뒤에 기다리고 있다.

 

즉, 우리는 선택을 한 후, 대부분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선택은 참 좋은 것이지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집중이 힘들고, 책임을 져야 한다. 반면에 필수적인 것은 자유는 없지만 집중이 쉽고, 책임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선택적인 상황과 필수적인 상황은 사실 무엇이 더 낫다라고 명백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없이 자유를 그리워한다. 즉, 선택을 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너무도 자유가 없던 시절에 자유에 대한 갈망이 이미 어떤 식으로든 관념화가 되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자신이 익숙하지 못하고, 잘하지 못하는 일을 할 때도 이것의 영향을 받는다. 이때는 필수적일수록 좀 더 과감하고 더 용감하게 할 수 있다. 비록 그것을 잘 못하더라도 말이다.

 

운전을 이제 갓 배워서 초보인 사람은 평소엔 덜덜 떨면서 운전을 하지만, 이이가 죽을 듯 아파서 아이를 태우고 병원으로 가야 할 상황에 놓이면, 이때는 그 누구보다도 과감하게 운전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때는 자신이 혹시나 낼 사고나, 실수를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욕 먹을 짓을 하는 것 따위는 머리 속에서 날라가 버린다. 즉,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때 진정한 의미의 몰입이 일어난다. 운전자의 머리 속에는 오직 병원에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그것 하나만 존재하게 된다.

 

아마도 이때 우리는 아주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단 하나의 의심도 없는 완전한 집중 상태에 놓일 때, 우리는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될 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경험 사례는 가끔 알려지고 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선택의 자유에 대한 끝없는 로망을 느껴왔다. 이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우리의 본성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래야 우리의 자유가 지켜질 것이다.

 

하지만 그 자유를 통해 얻는 선택의 순간들이 우리를 언제나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없이 모든 것을 선택 가능하게 놓길 바란다. 선택할 수 있을 때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품을 사러 가게를 가도 더 큰 가게를 가려고 한다. 더 많은 제품들 사이에서 선택하고 한다. 이것이 모든 것들을 더 크고 넓게 만들고 있다. 더 크고 넓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더 크고 넓어야 하기에 자꾸 멀리에 만들어 진다. 우리는 이제 쇼핑을 하기 위해서 한 시간 이상 차를 타고 다녀야 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더 나은 제품을 선택할 수 있으며, 더 만족스러울까?

 

우리는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선택적으로 즐기길 바란다. 그래서 주변에 끝없이 그것을 나열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에 꼭 무엇인가를 해야 할 필요가 없어서 결국엔 아무 것도 안 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냉장고 안에 과일이 열 가지 종류가 있으면 아무 것도 안 먹는 것이다. 하나만 있었다면 먹었을 지도 모를 상황인데 말이다.

 

관계를 맺는 사람에 대해서도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을 알려고 한다. 매 순간 선택 가능하도록 말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집중력을 잃는다. 관심이 분산되면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은 그렇지 않으려고 해도 상대가 분산되어 버리면 어쩔 수 없이 같이 분산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크게 상처를 입고 만다.

 

그 덕분에 많은 관계로부터 오는 즐거움은 얻지만, 깊은 관계가 주는 충만함은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스마트 폰의 채팅 창이 늘어날수록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이미 이것에 대한 임계지점을 넘었다. 이미 충분히 자유로워지고 선택이 대상이 많아져서 결국 선택의 자유가 가진 행복은 더 이상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우리는 필수가 가진 집중의 행복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더 많은 대상을 두고 더 자유롭게 선택하지만, 결국엔 집중을 하지 못해서 불행해지고 있다.

 

이것이 정말로 우리가 원한 결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