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관계 속의 영향력

아이루다 2016. 6. 6. 07:20

 

요즘 많은 사람들이 개를 키운다. 외로워서 그렇다고 하기도 하고, 개의 특유의 친화력과 충성심 때문에 좋아서 키운다고 하기도 한다. 사실 무슨 이유든, 본인이 행복하다면 좋은 것이다.

 

사람과 개는 기본적으로 종속 관계이다. 주종 관계라고 하기도 하는데, 아무튼 개는 인간에게 종속된다. 사람은 개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잘 곳을 제공하는 등의 선의를 베풀고, 개는 사람에게 충성을 다함으로써 자신이 받은 이득에 대해 충분히 돌려준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인간과 인간의 관계 중에도 '종속' 관계가 있다. 그것은 마치 사람과 개의 관계와 비슷하다.

 

물론 인간의 이런 관계는 인간과 개처럼 명시적인지는 않다. 그럼에도 사실상 거의 비슷하다. 먹을 것을 주기도 하고, 잘 곳을 제공하기도 한다. 죽,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개처럼 행동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다른 사람들과 종속적 관계를 맺을까? 혹은 왜 누군가와 종속 관계가 되는 것을 선호할까?  이때 주로 개의 입장이기 보다는 주인의 입장 이길 바라지만 말이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은 개의 입장을 선호하기도 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행복을 위해서 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편의성, 외로움 해결, 즐거움, 공감, 위로, 협력, 목표 추구 등등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엔 모두 우리들의 행복하고 관련이 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는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 관계를 맺는다는 말은 절대적 사실이다.

 

그러니 이런 관계에서 평등한 관계보다는 주종의 관계를 맺은 후, 주인의 입장이 되길 바라는 사람은 당연히 그것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다. 즉, 자신이 행복한 것을 계획 세우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따라올 때 행복한 사람이다. 반면에 종의 입장을 선호하는 사람은 책임지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의해 보살핌을 받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종의 입장을 선호하는 사람을 개와 같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주인에게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는 위험성만 빼고 나면, 종의 입장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종의 입장이었을 때가 있는데, 바로 어린 시절이 그렇다.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는 아주 행복했다. 우리는 부모의 제지로 인해서 원하는 것을 다 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하나의 독립된 존재가 된 우리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종속 관계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관계의 주인이 되고 싶어하지도, 종이 되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주인이 되면 좋긴 하지만 대신 책임을 져야 하고, 종이 되면 하기 싫은 일도 주인이 원하기에 해야 한다. 더군다나 언제고 버림받을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요즘 안락사 당하는 수 많은 유기 견들이 바로 그 증거이다.

 

우리는 그래서 기본적으로 가능하다면 평등하길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제대로 보면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주인이 되길 바란다. 우리는 사실 이런 얘기를 쉽게 하기도 한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한다.

 

이런 표현들이 바로 우리가 관계의 주인공이 되며,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반드시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주인공이 되면 다른 사람들은 조연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여러 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계에 있어서 주인공이 되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되고, 주체가 된 우리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여행을 좋아하면 여행을 가고, 노래를 좋아하면 노래방에 갈 수 있다. 반대로 조연이 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행복한 일을 같이 하는 수 밖에 없다. 종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주인이 행복한 곳을 같이 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주종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생겨나며, 이것을 우리는 '영향력' 이라고 부른다. 혹은 '지배력' 이나 '존재감' 등으로도 표현 가능하다.

 

물론 이 단어들은 모두 같은 뜻은 아니다. 이 단어들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리고 이 중에서는 영향력이 가장 어울릴 단어이다.

 

지배력은 좀 더 형식화 되어 있다. 즉, 다른 이들에게 그 권위를 인정 받을 때만 의미가 있다. 학교 선생님이나 혹은 조직의 높은 위치에 있을 때 발휘되는 것이 바로 지배력이다.

 

반면에 존재감은 이보다 훨씬 희미하다. 우리는 존재감을 별로도 수치화 시키거나 명확하게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냥 문득 문득 느껴지는 것이다.

 

영향력은 존재감보다는 뚜렷하고 지배력보다는 희미하다.

 

어떤 사람이 가진 인문학적 영향력이 강하면, 그 사람은 삶의 멘토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다. 어떤 학계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은, 후배들에게 있어서 연구 방향을 제시해주는 경우도 많다.

 

즉, 영향력은 기본적으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매우 부드럽게 인도한다. 그래서 영향력은 상대를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니 아주 좋은 장점 하나가 생긴다.

 

그것은 바로 주인의 역할이 되었을 때 단점인 종에 대한 책임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주인이 되어서 그 사람들을 이끈다면, 반드시 책임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한다. 리더가 되어서 사람들을 이끌거나, 강한 지배력을 발휘해서 사람들을 밀어 댄다면, 그것이 잘못되었을 경우에 책임을 져야 옳다.

 

하지만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상대가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비탈길에 쌓인 흙에 깊게 홈을 파 놓으면, 빗물을 그 홈을 따라 흐른다. 하지만 이때 흙이 물의 흐름에 대해서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그럴 의도긴 했지만, 빗물이 패인 길을 따라 흐른 것은 빗물의 책임이다.

 

처음에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인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가 바로 자신이 행복한 것을 하고 싶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럴 경우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한다.

 

해외 여행을 별로 가고 싶지 않는 친구를 부추겨서 같이 여행을 떠난다면, 여행 경비야 각자 책임을 진다고 해도, 예약과 여행 계획 등은 보통 추진하는 사람이 책임을 진다. 심지어 여행 중 일어난 문제가 있어도 그것을 해결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기본적으로 책임은 그리 달가운 것이 아니다. 책임감을 많이 느끼면, 여행을 가서도 그리 즐겁지 못하다. 어디에서나 신경이 서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긴장을 풀기가 힘들다. 그런데 영향력으로 사람을 이끈 경우엔,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

 

우리는 여행지에 대해서 소개만 할 뿐, 그것을 같이 가지고 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심지어 최초에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을 데리고 가려고 하기도 한다. 그것도 영광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우리가 인간 관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형태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책임지지 않으면서, 자신이 행복한 일만 골라서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누구나 이것을 좋아하기에 결국 경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경쟁이 일어나기에 당연히 승자와 패자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순위가 매겨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순위에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게 보통은 승자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된다. 패자들은 자신을 패자라고 느끼기 보다는, 그저 누군가를 배려하거나, 자신도 그리 싫어하지 않는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전체적인 과정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렇게 보니 영향력은 꽤나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향력이 좋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미 언급했듯이, 우리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하고 싶어 하기에, 과도하게 그것을 원하게 된다. 즉, 행복하고 싶다는 집착으로 인해서 자신이 갖지 못한 영향력을 무리해서 발휘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관계를 억지로 끌어 갈려고 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다가 결국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불행해지고 만다.

 

우리 모두가 다른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본능적 욕구이다. 이것은 가장 깊은 관계, 즉 연인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연인이 되었을 때나 부부가 되었을 때 상대에게 완벽한 독점을 요구한다.

 

즉,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사회적 허용이다. 사회는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하기에, 가정의 평화를 권장한다. 그래서 남녀가 서로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권리로 인정해줬다. 아니, 권장했다.

 

하지만 연인이나 부부 이외의 관계에서 억지로 이런 형태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가는 집착이 강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기 쉽다. 우리는 연인과 부부 이외에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자신의 아이에게 가능하긴 한데, 그것도 어린 시절에만 가능하다.

 

연인이 싸우고 부부가 사이가 나빠지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서로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려고 한다. 즉, 서로가 자신의 영향력을 좀 더 높이려고 하고, 서로가 주도권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싸움이 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평화로운 연인과 부부는 서로 이것이 적당히 맞춰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정해질 때 사이가 좋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지 못한 영향력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다.

 

이것은 상대를 부담스럽게 하고, 자신을 괴롭히기도 한다. 또한 불필요하게 자신이 가진 에너지와 시간 혹은 돈을 써야 할 상황이 된다. 개를 키우려면 사료값도 들고, 집안 청소를 아주 자주 해줘야 하는 것과 같다.

 

주종 관계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책임이 바로 이런 의미이다. 우리가 영향력을 부자연스럽게 행사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것에 대한 책임이 늘어난다. 즉, 영향력이 가진 장점 자체를 날려먹는 것이다.

 

상대는 부담스럽고 나는 책임이 늘어서 결국 두 모두 불행해지고 만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인간 관계를 망치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되고 만다.

 

사람들은 젊은 시절에 행복하고 싶은 욕구를 조절하지 못해서 자주 이런 실수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든다. 그러다가 싸움이 나고, 관계는 지속적으로 상처를 입는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혼자가 편하다고 말이다. 채임을 지는 것도 누군가가 부담스러운 것도 모두 싫기 때문에 그냥 혼자가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오직 자신만 책임지면 되고, 자신이 행복한 일을 언제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혼자서 행복할 수 있느냐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대부분 혼자 살지만, 가끔 사람들을 만나는, 아주 얇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게 된다. 그리고 없어진 깊이를 사람의 숫자로 채운다. 즉, 얇고 넓은 관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는데, 요즘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아주 쉬워졌다. 스마트 폰 하나만 있으면 다 된다.

 

그럼에도 문제가 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도 채워지지 않는 깊이가 있다. 이것이 우리를 외롭게 한다.

 

하지만 외롭지 않기 위해서 다시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하면, 결국 다시 원래 문제가 나타난다. 즉, 관계에 있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즉, 관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자신의 종속적 위치에 놓으려고 하지 말고, 나와 완전히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변화가 필요하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이해를 통해서이다. 나도 너도 우리들 모두가 각자 행복을 추구한다는 목표는 모두 같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의 그런 성향을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한 일을 한 번 하면, 네가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서로 양보해 줄 수 있다. 욕심쟁이처럼 자신이 행복한 일만 하려고 하지 말고, 서로가 행복한 일을 하고, 내가 행복한 일과 네가 행복한 일을 번갈아 가면서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상대가 행복한 일을 할 때도, 그것을 최대한 같이 공감해주려고 노력해주는 태도도 중요하다. 그래야 상대도 역시 내가 행복한 일을 할 때 공감해주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무의식 상태로만 바라보면, 해결할 수가 없다. 각자 서로가 행복한 일을 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충돌이 일어나고, 오해가 일어나고, 기분이 상하고, 불행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치는 주요 이유가 된다.

 

그래서 이것을 의식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사회 속에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법을 만들고 재판을 하는 것처럼, 개인간의 갈등에서도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글을 써서 규칙을 정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서로 이 부분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고 서로 합의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대가 나를 배려해주길 바라거나, 자신이 상대를 배려해주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서로 잘되는 관계에서나 맞는 방법이다. 이미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관계는 의식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끝없는 영향력에 대한 욕구를 감지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그것을 가지고 있다. 나도, 너도 모두 말이다.

 

그래서 그것을 부풀리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늘 최소화 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부풀려지기 시작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상처를 입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자신이 행복한 것만 하려고 하고 있지 않는가에 대한 깊은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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