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호의와 권리

아이루다 2016. 2. 28. 07:38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이 말은 인터넷 상에서 꽤나 자주 회자되는 표현 중 하나이다. 그리고 요즘 세상 사람들의 실태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말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많은 호의가 권리가 된지가 꽤나 되었기 때문이다.

 

일명 '서비스' 라는 말이 있다. 직종도 서비스 직종이 있다. 보통 3차 산업에 분류되는 직종들이 여기에 속하는데, 1차 산업처럼 직접 농산물을 재배하거나 광물을 캐는 일도 아니고, 2차 산업처럼 1차 산업으로부터 생산된 기초 자원을 가지고 우리가 먹고, 쓰는 것들을 만들어 내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들이 포함된다. 병원, 미장원, 음식점, 노래방, PC 방 등등의 것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그 중 많은 종류가 바로 '자영업' 형태로 이뤄진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자영업은 일종의 무덤으로 여겨지고 있는 분위기이다. 왜냐하면 너무 경쟁이 치열하고 또한 그래서 피 터지는 경쟁에서 성공은 고사하고 살아남기도 어려운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딱히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끝없이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실패를 하고 끝난다. 처음부터 무리한 시도였고, 할 수 없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정과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 이유일 것이다.

 

아무튼 자영업은 끝없는 경쟁의 연속이다. 그러다가 보니, 정말로 서비스가 중요해지긴 했다. 음식점이 맛도 좋아야 하지만, 손님에 대한 서비스도 좋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서비스는 중요한 것이긴 하다. 어떤 음식점이 참 맛은 있는데, 종업원이나 주인이 너무 불친절 하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자영업자들은 '손님은 왕이다' 라는 말을 새기면서 장사를 한다. 그리고 가격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들을 일종의 ‘서비스’로 제공한다.

 

그것은 바로 손님을 위해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고깃집에서 음료수를 준다든지, 중국집에서 군만두를 준다든지, 커피 집에서 커피를 리필 해준다든지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한번 호의를 받은 사람은 이젠 그것을 받지 못하면 억울해지는 상황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즉, 권리가 된 것이다.

 

그리고 권리가 된 호의는 더 이상 호의가 아닌 것이 된다.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된다. 그래서 서비스 업을 하는 분들은 손님을 위해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당연히 찾아야 할 권리를 위해 자신이 손해를 봐야 할 상황으로 바뀐다.

 

이것은 자영업을 하는 분들을 많이 힘들게 한다.

 

여기까지 대략 호의와 권리에 대해 얽힌 이야기를 살펴봤다. 그런데 호의는 사실 '배려' 라는 단어와 비슷한 느낌을 가진 단어이다.

 

조금 다르긴 한데, 호의는 배려보다는 좀 더 목적 중심적이다. 즉, 호의는 어떤 목적을 가지는 경우가 많고, 배려는 상대적으로 그냥 하는 경우가 많다.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호의가 아니다. 배려이다.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배려가 아니다. 호의이다. 이런 식으로 뭔가 다음에 기대하는 것이 있을 때 배려가 아닌, 호의가 된다.

 

이런 식으로 호의와 배려는 조금 다르지만, 누군가에게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행동하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그런데 상대가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실 배려는 거의 목적이 없기 때문에, 보통 순수하게 기분이 좋기 위해서 한다. 물론 형식은 상대를 위해서 하지만 결국 자신의 기분이 좋기 위해서 하는, 단순한 입장에서만 보면 선의의 이타적인 행동이다.

 

그런데 상대가 그것을 권리로 받아들이면, 더 이상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래서 배려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사실 이런 현상 때문에 배려가 자신이 기분이 좋기 위해서 한다는 점이 명확해지긴 한다. 우리의 주장처럼 누군가를 위해서 배려를 한다면, 그 사람이 그 배려를 고맙게 받아들이든,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든 전혀 상관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의 반응에 매우 민감하다.

 

호의는 조금 다르다. 호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상대가 의도치 않게 권리로 받아들여도 멈출 수가 없다. 멈추는 순간 자신이 공들였던 노력들이 다 허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생일 선물로 고가의 가방을 사줬는데, 여자가 당연하다는 듯 받는다고 해서 화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진행된다.

 

아무튼 그것이 배려이든 호의이든 간에 상관없이 결국 권리로 인식된 것들은 당사자를 지치게 만들고, 큰 스트레스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결국엔 멈추게 된다.

 

이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호의와 배려 등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베푸는 참 좋은 것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호의나 배려를 권리로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은 어떨까? 하는 사람은 지치고, 스트레스 받아서, 결국 사람에게 큰 실망을 느끼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데, 이제는 그 반대편에서 그들을 지치게 만들고, 스트레스 받게 만들어서 결국 큰 실망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변화를 겪을까?

 

호의나 배려를 권리로 여기는 이들은 보통 그것들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때는 이득을 얻는 편이다. 왜냐하면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중국집에 가서 한번 군만두를 얻어먹었다면, 다음엔 늘 군만두를 달라고 한다. 자신이 시킨 음식값에 상관없이 달라고 하게 된다.

 

왜냐하면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주인이 서비스로 줬었고, 그래서 그 가게를 다시 찾았는데 군만두를 주지 먹지 못하면, 그 가게를 다시 찾은 이유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즉, 이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이 꽤나 합리적이고 떳떳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는 좀 더 많이 군만두를 먹을 기회가 생겼을 것이다. 즉 이득을 본 것이다. 하지만 결국 중국집 주인은 군만두 서비스를 멈추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 같은 사람들이 자꾸 늘어서 그들만 다시 재방문을 하게 된다면, 당연히 견딜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서비스 군만두를 주다가 망하게 생겼는데, 어찌 멈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무튼 군만두 서비스가 멈추게 되면, 군만두 때문에 그 가게를 찾은 사람들은 이제 발길을 끊을 것이다. 즉, 그들은 이제 군만두를 주는 다른 중국집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가게들을 찾기는 조금 힘들지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람은 군만두를 시켜서 먹을 때마다, 그 돈이 무척 아깝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군만두가 권리가 아니었던 시기엔 군만두는 그냥 맛있는 음식이었는데, 군만두를 공짜로 먹어 버릇하다 보니, 돈 내고 먹으면 그냥 아까운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군만두를 이제 잘 안 먹든지, 먹더라도 늘 돈을 아까워하면서 먹게 된다.

 

이 사람은 행복해졌을까? 아니다. 사실 불행해지고 말았다. 자신에게 베풀어지는 호의나, 자신을 배려해주는 사람들의 선함을 다 권리로 인식하고 나면 그런 것을 통해서 얻어지는 행복은 모두 사라지고 없어진다. 그리고 그것을 받지 못했을 때, 자신의 권리가 뺏긴 것으로 인식되어서 기분만 나빠지게 된다.

 

원래 없던 것인데, 없어서 기분이 나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호의나 배려가 권리가 되면, 그것을 베푸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불행해지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점점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즉, 우리는 점점 더 불행해지고 있다.

 

그래서 사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스트레스가 바로 이런 권리의식으로 가득 찬 손님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일부는 '진상'이란 말로 표현이 된다.

 

그런데 그들은 왜 호의나 배려를 권리로 인식할까? 도대체 자신도 불행해지고, 상대도 불행해짐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형태의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정말로 이해가 안가는 것이긴 하지만, 사실 그럴만한 이유는 있다.

 

첫 번째 문제는 바로 피해의식이다. 살아오면서 자주 손해를 많이 봤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피해의식은 자신이 원래 가질 수 없던 것들을 가질 수 있었다고 믿으면서 만들어 지는 것이다.

 

즉, 자신은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는데, 주변의 환경이 도움이 안되거나, 누군가 자신을 방해하거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그것을 얻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하다. 그래서 작은 손해도 결코 쉽게 못 참고 넘어가는 것이다.

 

어떤 중국집에 갔을 때, 군만두 서비스가 나왔다면,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기대를 조금씩 하고 그 가게를 다시 찾게 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군만두 서비스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보통 사람이라면 군만두를 주지 않아도 속으로만 작은 불만을 가질 뿐, 그냥 먹고 나온다. 그나마 왜 안 주는지 물어 보는 사람 정도나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피해의식이 가득 찬 사람은, 그것을 작은 불만 수준이 아닌, 큰 손해를 봤다고 느낀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군만두를 왜 주지 않냐고 따지게 된다. 자신의 권리이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그것이 틀렸든 옳았든 간에 본인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당당하다고 느낀다.

 

두 번째 문제는 자기 위주의 사고 방식이다. 세상의 모든 일을 자기 중심으로만 바라본다. 그러니 상대가 어떤 의도로 배려를 하고, 호의를 베푸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주면 받는다. 그리고 안주면 이상하다고 따진다.

 

이것은 사실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실상 사회성 부족 현상 중 하나이다. 우리는 공감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이성적 판단을 통해 상대의 입장을 짐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런 능력이 심각히 저하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즉, 사람 자체가 나쁜 것보다 그냥 원래 그런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남들이 자신을 욕하거나 차별적으로 대해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은 자신의 판단을 기반으로 해서 제대로 했는데, 남들이 그것을 싫어하거나 혐오스럽게 보는 태도를 보이면, 그들 역시도 다른 사람들이 이해 안 가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세 번째는 우월의식이다. 사실 이 세 번째는 첫 번째 원인의 확장이다. 보통 피해의식은 못 살 때 나타나는 형태를 보인다. 즉, 자주 실패를 해서 어쩔 수 없이 피해의식을 갖게 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잘살게 되었어도 유지되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

 

즉, 군만두 가격쯤은 아무것도 아닌데, 그것을 먹지 못하면 가게 주인을 마구 혼내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갑질이 일어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름대로 잘 사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에게 우월적 지위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결코 그냥 넘기지 않는다. 어떻게든 그것을 행사하려고 한다.

 

네 번째는 끝없는 욕심이다. 이것은 사실 한도 끝도 없는 욕심이다. 왜 그렇게 욕심을 내야 하는지 스스로 답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그렇게 살아간다. 마치 돈을 모으는 것이 삶의 모든 목적인 냥 그렇게 산다. 좀 멈추고 행복한 삶을 살 법도 한데, 그냥 돈이 최고이고, 돈을 모으는 것만이 행복의 모든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그래서 행복하다면 그것도 괜찮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은 주변을 매우 심하게 왜곡시킨다. 돈에 대한 믿음을 전파하고, 돈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홍보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통한다. 사실 이 문제가 너무 커서, 그냥 봐줄 수 만은 없게 된다.

 

다섯 번째는 그냥 못된 사람이다. 사실 못된 사람은 어떤 이유도 없다. 그냥 사람이 못된 것이다. 이것은 선천적인 것이다. 피해의식, 욕심, 우월의식, 자기 위주 사고 방식 등은 모두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성격이다. 그에 반해서 못된 사람은 그냥 원래 그렇게 타고난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전체가 못될 가능성이 높다. 그냥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마치 키가 큰 집안과 같다. 어떻게 하겠는가? 그렇게 태어났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들은 해결할 방법도 없다. 그냥 최대한 적게 태어나길 바라는 수 밖에 없다.

 

우리 인간은 이타적인 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 함께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갈 수 있다. 큰 손해를 보지는 못해도 작은 손해쯤은 감수하면서 상대를 돕는다. 특히 자신의 작은 손해가 상대에게 큰 이득이 될 경도 많기 때문에 노력대비 얻는 효과는 매우 클 수 있다.

 

이것은 꽤나 괜찮은 구조이다. 누군가는 한 시간 정도 힘을 써줬는데, 그 도움을 받는 사람은 혼자서는 평생을 해도 안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작은 도움이 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배려와 호의도 그런 면에서 매우 좋은 역할을 하는 것들이다. 그것이 어떤 목적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우리 사회가 좀 더 따뜻하고 살만한 곳이 되는 것에 많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권리가 되면, 그 좋은 효과는 모두 사라지고 만다. 또한 그것은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소멸시키고 만다. 그래서 사회는 점점 더 메말라 가게 된다.

 

어쩔 수 없는 면은 있다. 피해의식이 쩌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우월감에 젖어 갑질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욕심은 끝이 없고, 타인과 어울려서 살아갈 기회가 점점 줄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엔 점점 더 불행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 존재하고 있다. 즉, 그들 역시도 우리 전체가 만들어 낸 결과란 뜻이다. 사람은 행복할수록 여유롭다. 행복할수록 남을 더 잘 돕는다. 호의를 권리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은, 결국 사회 전체 행복지수가 하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은 각자 자신을 바라 봐야 할 시기이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고, 자신이 맞다고 우길 때가 아니다. 조용히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문제는 정작 그것을 봐야 할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글을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그것이 늘 문제이고, 이런 글의 가진 가장 근본적인 한계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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