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원인과 증상

아이루다 2015. 11. 5. 09:24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앓는 병 중에 하나가 바로 감기이다. 심한 경우엔, 한 달에 한 번 꼴로 감기를 앓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몇 년에 한 번이나 앓기도 한다. 그리고 보통 이 차이는 각 개인이 가진 면역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감기의 증상으로 유명한 것은, 발열, 기침, 오한, 콧물, 목아픔 등이 있으며 우리는 이 증상에 따라서 몸살 감기, 코감기, 목감기, 기침감기, 이런 증상이 모두 합쳐진 복합감기 등으로 구분해서 분류한다. 그리고 모두 감기이긴 하지만, 종류에 따라 괴롭기는 차이가 난다.

 

이 감기의 원인은 바이러스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 많은 감기를 반복적으로 걸리는 이유는 바로 감기 바이러스의 유전자 변형이 매우 흔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 몸은 자주 새로운 바이러스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또하나의 원인으로 꼽자면, 바로 면역력 저하이다. 물론 이것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중요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아무리 적이 쳐들어와도 방어를 잘해내면 결국 나라를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감기 바이러스를 모두 없앨 수도 없고, 그들이 변형되지 않게 막을 수도 없다. 또한 우리가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할 수도 없다.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 뿐이다.

 

이런 감기처럼 세상의 모든 문제에는 원인이 있고 증상이 존재한다. 또한 원인은 바이러스의 활동과 같은 직접적 원인과 면역력이라는 간접적 원인으로도 나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결국 원인을 해결해 내야 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감기에 걸린 후 하는 것은 사실 전혀 원인에 대한 해결이 아니다. 우리는 열과 같은 증상을 완화 시키는 약을 먹는다.

 

콧물이 너무 나지 않도록 해주고, 기침이 덜 나게 해주며, 목을 덜 아프게 해준다. 물론 이런 것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증상이 너무 심하면, 괴롭기 때문이다.

 

원래 감기는 치료가 되지 않는 병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감기에는 약을 처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쉬는게 답이라고 알려져 있는 병이다. 몸이 무리를 해서 면역력이 저하되고, 그로 인해서 감기에 걸리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란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감기에 걸리면 병원을 찾거나 혹은 약을 사서 먹는다. 그리고 그 약들은 보통 해열제, 수면제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땀을 흘리면서 푹 잠을 자고, 그 결과로 몸이 좀 나아지기도 한다.

 

이것은 증상을 덜 느끼게 해서 원인을 해결시키는 방법인 셈이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감기를 낳게 한 가장 큰 역할은 충분한 잠이 한 것이다. 즉,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약이다.

 

그나마 감기는 그렇다고 치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문제들은 어떨까? 우리는 과연 원인과 증상 중에서 원인를 치료하고 있을까? 아니면 증상을 완화시키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어떤 문제는 원인을 해결하고, 어떤 문제는 증상을 완화시킴으로서 감기처럼 간접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알고도 해결 못하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우리는 정말로 원인을 해결하고 있을까? 혹은 증상을 완화시켜서 원인을 간접 해결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자. 과거 우리 인간들은 감기가 바이러스에 의한 것임을 알지 못했다. 또한 감기에 잘 걸리지 않으려면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우리는 아마도 아이는 좀 더 열병에 잘 걸리고, 약한 사람도 그렇고, 환절기가 되면 더 자주 그런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 정도만 경험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에 잘 듣는다는 약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약을 먹으면 나름대로 도움도 되었을 것이다.

 

이 상황을 유추해보면, 우리는 전혀 원인을 알지 못해도 증상만으로도 그것을 해결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 상황은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원인을 제대로 아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할 때, 우리의 마음 속에는 그 문제의 제대로 된 원인을 찾아서 확실하게 해결했다고 믿고 싶을 것이지만, 사실 우리는 그 원인 자체도 제대로 모를 경우가 많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과연 무엇인가를 해결했다고 했을 때, 그것을 제대로 해결했는지를 되집어 봐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그 문제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감기에 걸려서 며칠 앓아 누었더니, 감기가 나았다면, 그것은 감기의 해결책은 되지만, 그것이 감기의 원인을 해결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결국 감기의 최종 해결책은 평소에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서 잘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주변에 뭔가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자. 누군가 아프다든지, 사기를 당해서 큰 돈을 날렸다든지, 직장에서 짤렸다든지, 누군가와 심각한 불화를 겪는다든지 하는 것 등이다.

 

아마도 이 각각의 문제는 각자만의 원인과 증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원인은 다양하지만, 결국 불행하다는 것 하나로 귀결이 된다. 즉, 우리는 불운한 일을 겪음으로써 불행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불행을 어떤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그것을 원인으로 볼까? 아니면 증상으로 볼까?

 

우리가 불행함을 느끼면 하는 것은 바로 행복해지려고 노력한다. 특히 그 불행함의 원인이 해결이 힘든 것일수록 더욱 더 그렇다. 어차피 어떤 노력을 해도 해결이 힘든 원인이라면, 그냥 증상만을 완화시키길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감기와 완전히 동일하다. 우리는 바이러스를 해결하기 못하기에 증상만을 완화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장시간 반복되면, 우리는 불행함을 증상이 아닌, 원인으로 여기게 되는 상황으로 변한다. 즉, 우리는 불행함을 하나의 원인으로보고 불행함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 불행함의 원인이 너무도 뿌리가 깊거나, 도저히 해결할 엄두가 나질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것은 10살때 겪은 일일수도 있고, 20살때 좌절한 경험일 수도 있다. 살아온 삶 속에서 언제 경험을 했든간에 상관없이 우리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게 되면, 좌절하고 그것을 한쪽 구석에 쌓아둔다.

 

하지만 그 원인들은 결국 모이고 모여서 어떤 사람에게 불행함이라는 원인과도 같은 증상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행함을 원인으로 보고, 우리는 어떤 해결책을 찾을까? 사실 이것은 매우 많다. 게임과 같이 재미있는 것도 그런 것이고, 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사람들을 만나 신나게 떠들거나, 등산을 하거나, 운동을 한다.

 

이런 행동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것이 불행함을 치료하는 치료법이기도 하다. 말장난 같지만, 불행함을 치료하면 결국 행복해지게 되는 것이니까 당연하다.

 

어떤 사람이 앞에 나열한 행동들을 열심히 해서 행복해졌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 사람은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 된 것일까? 이 부분을 좀 더 유심히 바라봐야 한다. 왜냐하면 결국 감기와 동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물론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원인을 치료한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은 결국 증상만을 완화시켜서 마치 그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믿고 있는 것 뿐이다. 즉, 이 사람에게는 지금 현재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조건들만 유지된다면, 행복하게 살 수는 있다.

 

여행을 좋아한다면 여행을 갈 돈과 시간이 충분하면 되고, 게임을 좋아한다면 재미있는 게임과 그것을 즐길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재미난 영화가 계속 개봉되어야 하고 그것을 볼 시간과 돈도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런 조건들은 갖추기가 어렵지 않아서 그나마 어렵지 않게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 우리의 몸에 어떤 문제가 발생해서 밖을 나가기가 쉽지 않거나, 늘 그런 것을 함께했던 사람과 헤어지기라도 하면, 그때 그 조건들은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 사회에는 그나마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런 행운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불행함이란 원인을 해결하지 못해서 결국 삶을 불행하게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행복한 사람이나 불행한 사람이나 결국 모두 불행함이란 증상만을 해결하려고 했을 뿐, 그것들의 진짜 원인들은 모두 기억 저편에 묻어두고 살아가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 중 행복한 사람은 증상을 완화시키는데 성공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원인들은 무엇일까? 과연 무엇이 우리를 불행함의 원인일까?

 

그것의 원인은 자신의 우울한 외모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부족한 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갖고 싶으나 갖지 못한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좀 덜 똑똑한 머리에 대한 불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귀고 싶었으나 거절당한 사람에 대한 열정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건강, 직장, 연봉, 사는 집, 키우는 아이, 부모의 재산 등등이 될 것이다. 사실 이것은 너무도 많고, 사람마다 달라서 대충 적기에도 감당이 안될 지경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다 해결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외모가 좋아지고, 돈이 더 많아지고, 더 똑똑해지고, 첫눈에 반한 사람과 결혼을 하고, 좋은 직장을 잡고, 건강하게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과연 이런 조건을 모두 다 갖추야만 행복할까? 아니면 이 중 일부만 충족되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아마도 삶의 미래를 결정하는 건강이란 조건은 다른 여타 조건들과 비교 불가능 할 것이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차이가 날 것이다. 누군가는 돈만 충분하면 행복하게 살 것이고, 누군가는 행복한 가정만 있어도 행복할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취미생활만 확실히 있어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도 든다. 이 조건을 결정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이것은 마치 공기중에 수 많은 감기 바이러스가 돌아다니는데, 그 중에서 감기에 걸리는 사람과 걸리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과 같다.

 

수 많은 불행함의 원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올 수 있는데, 누군가는 그것을 불행함으로 여기고, 누군가는 그것을 그다지 개의치 않고 살아간다. 이 차이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올까?

 

이것은 감기로 따지면, 개인적 면연력이라고 할 수 있고, 실제로 사람에게 적용해보면, 그것은 바로 개인별로 세상을 이해하는 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즉, 인식에 대한 문제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인식은 감기에서 면역력의 역할과 같다. 즉, 우리는 어떤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세상으로부터 감염당하는 불행함을 다르게 다루게 된다. 만약 이 인식이 강한 면역력처럼 스스로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당연히 주변의 영향이 최소화 될 것이고, 반대로 약하다면 언제든 그것의 영향력 하에 놓여서 불행함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우리는 건강하다는 표현을 쓰지만, 사실 건강하다는 표현은 태생부터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실 많이 아프거나 좀 덜 적게 아프거나 하는 상태만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딱히 어딘가 아픈 상태가 아닐 때, 그것을 건강하다고 표현한다.

 

우리의 몸에서는 병이 더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큰 병에 걸려 있거나 작은 병에 걸려 있거나만 할 수 있다. 우리는 결코 병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질 수가 없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늙고 병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죽는다.

 

불행함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불행함이 적을 때 행복하다. 아무리 행복해도 암에 걸리는 순간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갑자기 망해서 돈이 없어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행복한 집안도 돈 문제가 생기면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서로 원수 사이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아픈 것은 순식간에 일어나고 치료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수단은 오직 자기 인식력 밖에 없다. 이것은 언제 걸릴지 모를 감기에 대비하는 수단이 면역력 밖에 없다는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남들이 모두 돈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면서 살 때, 표면적 해결책은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지만, 이 문제를 영구히 해결하는 방법은 돈의 가치를 다른 사람과 같은 수준에 놓지 않는 방법이다. 즉, 남들처럼 많은 돈이 드는 삶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도둑을 예방하는 법은 높은 울타리와 강력한 열쇠, CCTV, 경비원과 경비견 등이 있지만, 사실 도둑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진 것이 없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런 해법들은 어처구니가 없으며 또한 비현실적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말도 맞다. 그렇데 그렇다면 남들처럼 돈을 많이 벌든지, 벌지 못하고 불행하고 살든지 해야 한다.

 

이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감기와 같다. 증상을 완화시키면 그때는 넘기지만, 결국 다음 환절기에 또다시 콧물이 나고 기침이 날 것이다. 면역력을 높이지 않는한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불행은 감기 바이러스와 같다. 그것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불행은 언제 어디서나 찾아오게 되어 있다. 무척 운이 좋은 사람은 가는 장소마다 감기 바이러스가 별로 없어서 평생 동안 단 한 번의 불행함도 겪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상대적으로 수 많은 불운을 겪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둘 중에서 자신이 어느 쪽에 속했는지를 생각해보려면, 현재 자신을 보면 된다. 지금 자신이 불행하다면, 불운한 쪽에 속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시간에 따라 장소에 따라 바뀐다. 10년 전 행복했던 사람이 지금은 이미 무덤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10년 전 자살을 생각할만큼 불행한 사람이 지금은 너무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자신이 행복하다고 해서 자신이 평생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증상을 해결하는 삶을 살아왔다. 감기 바이러스나 면역력을 높이는 것은 해낼 수 없는 것이라고 한쪽 구석에 묻어 두고, 표면적인 해결책만으로 버텨왔다. 그래서 운이 좋은 이들은 지금 행복하고, 반대로 운이 나쁜 이들은 불행하다.

 

지금 불행하다면, 그래서 정말로 행복하길 바란다면 이제 원인을 보려는 용기를 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언제 숨겨둔지도 기억나지 않는 문제들을 꺼내어 바라보도록 해야 한다. 물론 그것을 꺼내어서 더 상처입고 더 불행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스스로의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의 불행을 벗어날 수가 없다. 또한 운 좋게 행복해졌다고 해도, 언제든 찾아 올 불행함에 대한 그 어떤 대비도 되어 있지 않는 것이다.

 

왜 지금 돈에 대해서, 직장에 대해서, 결혼한 배우자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친구에 대해서 그런 기대와 판단을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자기 위주의 사고방식이었는지, 또한 얼마나 다른 이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세상은 오직 스스로 이해하는데로만 정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상투적인 말 같지만,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생겨난다. 그것은 감기 바이러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면역력의 문제이다. 감기는 바이러스이지만, 나쁜 존재가 아니다. 그들도 생명체이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그들이 우리 몸에서 증식한 불운함이 일어났을 때만 발생한다.

 

이때 누구의 잘못일까? 감기 바이러스일까? 아니면 그것을 막지 못한 우리의 면역력일까?

 

 

'인간과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장 이타적인 행위  (0) 2015.11.20
논리의 문제점  (2) 2015.11.09
어느날 갑자기  (0) 2015.10.26
욕망의 그릇  (0) 2015.10.25
행복의 속성  (0) 2015.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