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가장 이기기 힘든 상대는 내가 아니다

아이루다 2015. 10. 30. 08:27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가끔 힘든 역경을 이겨내야 할 때가 있다. 그 종류에 따라 해결책은 천차만별이지만, 아무튼 눈앞의 문제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훨씬 더 힘든 노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리는 이때 잘 새겨들으면 꽤나 설득력 있는 말들이 있다.
 
그것은 그 누구보다 이기기 힘든 상대는 바로 자신이라고 조언이다. 또 다른 표현으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는 말도 있다. 이런 말들은 표현은 다르지만, 사실 거의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실 요즘은 너무 자주 접하게 되는 말이 되기까지 해서 식상한 느낌까지도 주지만, 이 말이 가진 무게는 그리 가볍지 않다. 우리는 평생 동안 타인과의 경쟁에서 남을 이기려고 애쓰지만, 정말로 우리가 넘어야 할 대상은 남이 아닌 나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남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가 어려운데, 그것의 가장 큰 이유는 자신과 한 약속은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과의 약속을 깨려면 남과 타협을 하든지 아니면 어떤 비난이나 손해를 감수하고서 일방적으로 깨야 한다.
 
하지만 자신과의 약속에서는 이런 과정이 훨씬 더 느슨해진다. 일단 타협을 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우린 각자 자기 합리화라는 아주 좋은 심리 도구를 가지고 있다. 즉, 자신과의 약속을 깨는 순간은 타인과의 약속을 깨는 순간과 비슷하지만, 우리는 서서히 자신이 그 약속을 깰 수 밖에 없었다고 스스로를 이해시킨다.
 
덕분에 우리는 매일 결심을 하면서도 매일 결심을 깨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결심을 크게 써서 벽에 붙여 놓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서 자신과의 약속을 마치 남들과 한 약속처럼 꾸미기도 한다. 나름 효과가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니, 자신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끝없이 지고 있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세상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상대가 자신이란 말이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우리는 왜 자신과 싸워야 할까? 이 질문은 단순하지만, 사실 우리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을 일깨워 줄 수도 있다. 이것을 위해 예를 들어서 생각해보자.
 
우리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할 가장 흔한 상황은 바로 공부를 할 때일 것이다. 그래서 학창 시절에 많은 학생들은 끝없는 결심과 좌절을 반복한다. 공부 계획표를 세우지만, 대부분 그것을 제대로 지켜내질 못한다. 인간은 사실 평생 동안 놀고 싶어한다.
 
공부는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질 못한다. 또한 대학생이나 취업 준비생도 마찬가지다. 특히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루 하루는 피를 말리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매일매일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든 승부가 되고 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아니다. 이것은 이들이 자신과 싸우고 있는 진짜 이유를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물론 눈에 보이는 이유는 오늘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니, 놀고 싶어하는 자신과 싸우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밑에 깔린 좀 더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보면, 사람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는 바로 나중에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 시험은 당연히 다른 사람들과의 순위 경쟁이다. 즉, 사람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오직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란 뜻이다. 그리고 자신을 이기고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들은 나중에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겨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이렇듯 우리가 자신을 이겨야 하는 이유에는, 자신과 싸워서 이긴 후, 최종적으로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이란 진짜 이유가 파묻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권투를 하듯 직접적으로 싸우지 않느니, 남이 아닌 자신과 싸운다고 믿는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 바로 옆자리에서 같은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는 사람은 서로가 잠재적 경쟁자이다.
 
사실 좀 더 냉정히 말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자신을 이기는 것이 남을 이기는 것보다 더 쉽다. 정말로 이기기 힘든 것은 남이다. 우리는 남을 이기기가 힘들기 때문에 자신을 들볶는다. 실제로 남을 이기기가 엄청나게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이기고 나서야 겨우 남과의 승부를 낼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다.
 
올림픽 경기가 열릴 때, 그 자리에 선 세계 각국의 선수 중 과연 누가 자신과의 혹독한 싸움을 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들은 이미 자신의 나라에서 대표 선발 전을 통해 충분히 최선을 다해 노력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수 십, 수 백 명의 참가자 중 단 한 명만이 1등을 한다. 물론 금,은,동 세 메달을 다 포함하더라도 시상식에 서는 사람은 겨우 세 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거기에 서지 못한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자신과의 싸움에서 실패한 사람이란 뜻인가? 그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남을 이기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가 될 뿐이다.
 
차라리 자신은 이기기가 쉽다. 주어진 시간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면 된다. 물론 힘들 것이다. 놀고 싶고, 쉬고 싶고, 자고 싶고, 먹고 싶다. 하지만 목표가 있기에 매일매일 자신과 싸우면서 이겨낸다. 그것이 바로 '자신과의 싸움' 이니까 가능하다.
 
하지만 남과의 싸움은 다르다. 그것은 극복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가 더 많다. 설령 명백하게 타인을 이겼다고 해도 그 사람으로부터 제대로 된 승복을 받아내기 조차 힘든 경우도 많다.

 
사실 남을 이기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아무리 스스로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평생을 절제와 의무감으로 살아 온 사람이라고 해도 남도 아닌 자신의 자식을 이길 수 없다. 그 사람은 신념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자식을 이길 수는 없다. 그 두 사람은 결국 갈등이 심해져서 평생 안보고 살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식과의 싸움에서는 이겼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세상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것이 자신이라고 말할까?
 
사실 우리가 이렇게 말해야 하는 이유는,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대상이 자신 밖에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직 자기 자신과의 싸움만 할 수 있다. 즉, 다른 사람은 우리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것은 어떤 생각은 할 수 있지만,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신은 다르다. 우리는 자신을 이기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우리 자신을 스스로 설득하거나 어떤 행동을 하도록 할 수는 있다.

 

또한 남과의 승부에 집착하면 지속적으로 지거나 이기는 것을 반복하게 되고, 특히 졌을 때 받는 상처를 감당하기란 결코 쉽지 않게 된다. 즉, 우리는 남과의 싸움에 집착하다가 자신에 대한 깊은 상처를 받고 삶의 의욕을 잃거나 매우 불행한 상태에 놓이기가 쉽다.
 

남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에 대한 거대한 증거는 매일 수 많은 사람간의 갈등이 일어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면 된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매일 갈등을 일으키고, 주먹다짐을 하고, 상처를 주거나 받고, 말로 싸우고, 경찰서에 가고, 고소를 하고, 재판을 한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서로 싸우기 때문에 필요한 직업은 엄청나게 많다.

 

이 모든 것이 남을 이기기가 힘들어서 그렇다. 얼마나 힘들면 제도로 만들어서 그것을 판별해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과 싸움에서 생긴 갈등을 가지고 재판을 해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설령 그런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은 재판을 받기 보다는 치료를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앞에 나왔던 자기를 이기는 것이 가장 힘들다 라는 말은, 이렇게 다시 쓰여져야 한다.
 
우리가 싸울 수 있는 적은 자신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싸움에 신경을 끄고, 오직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라고 말이다.
 
물론 담배를 끊어야 하는 경우라면 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경쟁보다는 자신의 건강함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넓게 보면 마찬가지다. 우리는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판단 자체를 타인을 통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주변 사람들의 건강함을 기준으로 자신의 건강을 평가한다.
 
사실 이런 방법을 쓰지 않고서 자신이 도대체 얼마나 건강해야 할 지 알 방법이 없다. 그래서 과거 담배가 해롭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누구도 담배를 끊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가 담배를 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이미 담배로 인해 암에 걸리거나 일찍 죽는 다른 사람들의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타인의 존재는 경쟁의 대상은 아니지만, 자신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기준점이 되어 준다. 그래서 결국 이 역시도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사는지에 대한 일종의 비교를 의미한다. 그래서 적극적이고 명백한 경쟁은 아니지만, 소극적이고 은밀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 인간은 어차피 그럴 수 밖에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좀 과대 포장하는 일이 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도 그런 류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포기하면 편해진다는 말도 있다. 이때 포기는 자신과의 경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남에게 이기고, 무엇인가를 가지고 싶은 욕망에 대한 포기이다. 그것을 포기하면 당연히 자신과 싸울 필요도 없으니까 편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말들을 패배주의라고 부른다. 즉, 우리는 우리들이 끝없이 남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잘 포장해서,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남과의 경쟁을 하는 것은 경쟁주의라고 부르고, 그것을 비인간적인 것이라고 믿고 싶어하고, 반대로 자신과 싸우는 것은 극기나 의지라고 칭하고, 그것을 인간의 좋은 면으로 보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를 포장하길 원한다.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 남에게 호응을 받으면, 그것을 남을 위해서 한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자신과 싸우는 이유가 자신이 남을 이기기 위한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남을 이기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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