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지금을 인식해보기

아이루다 2015. 8. 28. 07:55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하나로 '지금' 이란 말이 있다. 그런데 사실 지금이 시간상으로 정확히 언제까지를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예전에 어디선가 현재로부터 앞뒤로 3초간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니, 그 기억도 자신이 없다.
 
아무튼 지금이 정확히 언제인지를 고민하기 보다는, 그냥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지금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우리는 지금이란 단어를 쓰는데 아주 익숙하지만, 사실 정말로 우리가 지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을 인식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보통 대부분의 인간들의 머리 속에는 끝없는 생각이 이어진다. 그것은 모기에 물려서 가려운 자리를 찾는 생각이기도 하고, 어제 밤에 모임에서 만났던 친구들 중 돈을 전혀 쓰지 않았던 친구에 대한 생각일 수도 있고, 다음달에 떠나게 될 휴가를 도대체 어디로 갈지를 고민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을 모두 합치고 보면, 사실 우리가 하는 생각의 많은 부분이 잡생각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 즉, 우리는 보통의 시간을 온갖 잡생각을 하면서 산다.
 
그나마 우리가 잡생각이 아닌 생각을 하는 때는 무엇인가에 집중할 때인데, 공부를 하거나, 재미난 영화를 보거나, 일을 열심히 할 때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이때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것이 잡생각이란 점은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물론 경제적인 면이나 혹은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자된 시간이니까 잡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 즉, 뭔가 진취적으로 자신에게 이로운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점심을 뭘 먹을까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덜 잡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개인별로 판단 기준이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열심히 일을 하는 시간보다 점심을 뭘 먹을지를 고민하는 생각이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모든 생각은 사실상 잡생각이다. 공기 좋은 산속에 놀러 가서 회사 일을 생각하는 것도 잡생각이고, 회사에 앉아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할 시간에 주말에 다녀온 산행을 생각하는 것도 잡생각이다.
 
그런데 왜 '지금'을 인식할 때, 생각에 대한 설명을 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지금을 인식할 때 매우 중요하게 이해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의 종류는 과거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 미래에 기대되거나 일어날 것 같은 여러 가지 일, 현재 해야 할 일, 이뤄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공상, 다른 사람에 대한 다양한 평가 등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우리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생각에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평생 동안 지금을 살고 있지만, 우리의 머리 속은 늘 과거나 미래나 혹은 공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것은 마치 거울을 볼 때와 비슷하다. 사람들이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에도 이빨에 낀 고추 가루가 없는지, 화장이 뜨지 않았는지, 머리 모양이 이상하지 않는지를 본다. 이때 누구도 그 모습이 거울에 반사된 자신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지금은 과거로 변해가고, 미래는 계속 지금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변하고 있는 지금은 우리들에게 전혀 인식되지 못한다. 모든 순간에 우리의 머리 속엔 온갖 생각들이 가득하고, 우리의 오감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들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상태로 무의식적으로 기록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구나 지금을 경험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머리 속에 기록해놨기 때문이다.
 
아주 재미난 영화를 볼 때, 자신이 영화를 보고 있다고 느끼긴 힘들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뭔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떠올릴 때도,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상할 때도, 잘된 친구에 대한 질투심에 빠져있을 때도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란 무척 힘들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거를 떠올리면서 과거의 지금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즉, 어제 영화를 볼 때의 감정이나 영화 속 장면들은 기억이 나기 때문에 분명히 그때의 지금을 경험한 것이 된다. '지금'은 당시엔 전혀 인식되지 못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과거가 되면 지나간 '지금'은 머리 속에 기록된 정보를 통해 생각된다.
 
물론 지금을 각 순간마다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딱히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인식이다. 지금을 인식할 수 없다면, 우리는 사실 그 어떤 것도 인식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은 그저 끝없이 흘러가는 생각의 연속일 뿐인 것이 된다. 즉, 미래를 계획하고 현재가 되었다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끝난다.
 
그리고 지금을 인식해야 하는 의미 있는 이유는 바로 그것을 통해 우리가 끝없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들 대부분의 머리 속엔 걱정이 가득하다. 그것은 과거에 저지른 일에 대한 후회나 혹은 미래에 닥칠 여러 가지 좋지 않는 일에 대한 걱정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머리가 복잡해지면 어떤 행동들을 하면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물론 그래서 걱정거리들에 대한 생각은 덜하게 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잠자리에 눕거나 새벽에 잠을 깨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새 다시 걱정거리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 그런 걱정거리들은 사실 모두 비현실이다. 물론 과거에 있었던 일이니 지울 수도 없고,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눈 감고 없는 셈 칠 수도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이 아닌, 과거나 미래에 있었거나 있을 일로 인해서 지금이 영향을 받는 것은 그리 좋지 않다.
 
잠자리에 누워 있다면, 그냥 그 순간의 안락함을 느끼면 되는데, 머리 속엔 온갖 생각으로 포근하고 따뜻한 잠자리가 주는 행복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즉, 지금을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우리는 지금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버리고 있는 셈이다.
 
사실 이런 말은 매우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 있다. 머리 속에 걱정이 가득한데,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하라고 한다고 해서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실제로도 거의 불가능한 주문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과연 우리는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현재를 살아 본적이 있을까? 우리는 늘 기억을 통해 삶을 이해한다. 그리고 평가한다. 지금 이순간은 단 한번도 인식하지 못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쌓인 기억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것도 많은 조작된 정보를 가지고 말이다.
 
이것은 맛난 음식을 입 속에 넣고 씹고 있는 순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똥을 싸고 나온 후, 그 똥을 보고 자신이 먹은 음식이 얼마나 맛있었는지를 평가하는 것과 비슷하다.
 
왜 우리는 지금 이순간은 인식하지 못한 채, 늘 과거의 기억을 통해서만 지나간 지금을 인식하게 될까?
 
도심을 떠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이 분다. 이때 우리는 그 순간을 인식하고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코끝에 느껴지는 상쾌한 기분과 폐를 가득 채운 맑은 공기를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피부를 스치는 시원한 바람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그 순간 그 장소에 서 있는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하지만 머리 속엔 금새 이제 다음엔 어디로 갈지, 가고자 하는 목표지점은 얼마나 남아을지,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그리고 이런 곳에 올 수 있는 자신의 행복한 삶에 대해 감사함을 생각한다. 종류만 다를 뿐 사람마다 생각은 단 한차례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인식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실 지금을 인식하려면 생각 자체가 멈춰야 한다.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한, 지금을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이 생각을 하고 있다는 단 한번이라도 인식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생각을 하는 것을 매우 의식적인 일로 생각하지만, 사실 생각은 무의식의 일종일 뿐이다.
 
우리는 인간이 생각을 할 수 있으며 생각하고 산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전혀 그 생각을 통제하지 못한다. 생각은 끝없이 모양을 바꾸면서 흘러갈 뿐이다. 그래서 지나던 길에서 전봇대를 보면 금새 머리 속엔 3년 전 헤어진 전 여자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으로 바뀐다. 혹은 콩나물 가격이 얼마 인지로 바뀐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생각을 당한다. 생각은 전혀 통제되지 않으며 시작도 끝도 없다. 우리는 대부분 어떤 자극에 의해서 생각이 시작되고 그렇게 시작된 생각은 하루 종일 끝없이 그 대상만을 바꾸면서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것이 다 합쳐지면 인생이 된다.
 
이것을 과연 의식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래서 사실 우리의 삶에서 무의식적일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 의식적이라고 믿으면서, 인간과 동물을 분리하려고 애쓰지만, 현실적으로 인간의 삶이 동물의 삶과 다를 것이 별로 없다. 우리는 동물들보다 좀 더 잘 계산하며 좀 더 많은 다양한 주제를 생각 당할 뿐이다.
 
이 흐름을 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인식, 즉 의식적 행동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지금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순간에,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는 인식을 해보도록 하자. 지금 글을 읽고 있다. 지금 한글로 된 문자를 보고 있다. 그러면 금새 세종대왕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면 금새 뿌리깊은 나무라는 드라마가 생각나며 한석규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면 금새 그가 말한 '지랄하고 자빠졌네' 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물론 드라마를 보지 않는 사람은 다른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잠시라도 지금을 인식하려고 하면, 생각은 금새 그것으로부터 시작해 끝없이 뻗어간다. 다시 지금을 인식하려고 해도 이것은 반복된다. 사실 지금을 10초라도 연속으로 인식하는 것도 무척 힘들다.
 
그러다가도 잠시라도 지금을 인식하게 되면, 갑자기 익숙해졌던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도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친한 친구의 얼굴도, 매일 자는 잠자리도 그럴 수 있다. 우리는 평소에 그 어떤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기에, 인식을 하는 순간 그것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런 경험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크다. 아무튼 중요한 점은, 우리들 대부분은 삶을 살아오면서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고 살아왔지만, 정작 자신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적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인, 지금 이 순간을 인식하지 못하고, 따라서 자신이 현재 어떤 생각을 하거나 행동을 하고 있는 중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모두 시간이 지나서 과거가 되어 기억이 되어야만 인식이 된다. 비록 그것이 10초의 차이가 되더라도 말이다.
 
무의식은 늘 의식을 지배한다. 우리 인간의 머리 속에서 진행되는 거의 대부분의 정보 처리는 무의식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의식 중 아주 일부만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그것을 생각이라고 칭한다.
 
이 흐름을 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자발적 인식이다. 물론 이런 글을 읽으면서 일어난 현상 역시도 무의식적인 반응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지속적으로 지금을 인식하려고 노력한다면, 끝없이 흘러가는 생각의 아주 작은 틈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즉, 생각의 흐름을 잠시라도 중단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은 무의식에 사로잡혀 살던 삶을 아주 잠깐이라도 의식적으로 살 수 있게 해준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 마크 트웨인은 인간을 자극에 반응하는 기계라고 정의했다. 사실 그의 말을 들으면 반발심이 생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결국 오감으로 느껴진 여러 가지 자극으로 인해 생각이 시작되고, 그것을 통해 일어나는 끝없는 연상 작용을 경험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다행이 자극은 끝없이 도착하기 때문에, 우리가 작동이 정지될 일은 없다.
 
만약 오감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사람을 생각해본다면 그의 말이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고, 냄새를 맡지 못하면 과연 그 존재는 살아 있는 것일까? 아니 도대체 어떤 상태일까? 분명히 심장이 뛰고는 있는데 말이다.
 
마크 트웨인의 기분 나쁜 인간의 정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 일어나는 자발적 인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에서부터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대한 기대치로 인해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쉬우면서도 매우 어렵다. 특히나 짧은 시간은 가능하지만, 지속적으로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 평생 동안 단 한번도 '지금'을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인식을 했다고 해도 그것을 일정 시간 동안 유지시킬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물론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래도 살면서 한번쯤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인식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 당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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