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인간의 기본 감정

아이루다 2015. 7. 12. 12:53

 
오랜 과거로부터 한문을 쓰는 문화권에서는 사람의 감정을 '희로애락' 네 가지로 구분해서 표현해왔었다. 그것은 각각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을 의미했는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오랫동안 기쁨과 즐거움이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지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를 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최근에 미국의 한 감정전문가가 인간의 감정을 여섯 가지로 나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감정은 각각 분노, 공포, 혐오, 슬픔, 기쁨, 놀람 이라고 한다.
 
물론 이 분류 역시도 확실한 정의가 아닌, 어떤 한 사람의 오랜 연구한 결과를 기반으로 한, 학술적 의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까지 인간의 감정의 종류를 분류하는데 흔히 참고되어 왔던, 희로애락 보다는 훨씬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이 분류엔 희로애락 중 '락'에 해당되는 즐거움이 빠져 있다. 이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즐거움은 원래 기쁨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희로애락은 긍정적 감정인 희,락 과 부정적 감정인 노,애가 반씩 차지하고 있는 반면, 이 여섯 개의 감정 분류는 한쪽에 편중된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부정적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 요소들이 더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 중에서 분노, 공포, 혐오, 슬픔은 딱히 설명할 필요가 없이 부정적인 감정이고, 놀람은 그 놀람의 주제가 무엇이냐에 따라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가 구분될 수 있으니, 그냥 중립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기쁨만이 유일하게 긍정적 감정이 된다. 비율로 보면, 5:1 이거나 4:2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감정들의 분류가 부정적인 성향에 치우쳐 있는 이상한 현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생각보다 쉽게 드러나긴 한다. 이것은 생각보다 매우 단순하게 증명 가능한데, 우리는 무엇이든 부족한 것을 원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우리는 물이 부족하면 목이 마르다. 우리는 먹을 것이 부족하면 배가 고프다. 그래서 각각 물과 먹을 것을 간절히 원한다. 반대로 풍족한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산다. 공기 중의 산소는 만약 그것이 부족할 경우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죽겠지만, 우린 평소에 공기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산다.
 
대부분의 풍족한 것들은 모두 그런 취급을 받는다. 심지어 누구나 바라는 돈마저도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은 돈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산다. 우리가 신경 쓰고 원하는 것들은 모두 자신들에게 부족한 것들뿐이다.
 
이 원리를 우리가 누구나 원하는 행복에도 적용시켜 보자. 우리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즉, 기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 중 하나가 바로 행복인데, 그 행복을 그리도 원한다. 그런에 우리는 왜 행복을 원할까?

 

이 질문를 위에 언급한 원리를 이용해 답을 내보자. 그러면 당연히 행복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다. 왜 행복이 부족할까? 이것의 답도 단순히 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근원들이 사실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분노, 공포, 혐오, 슬픔 등의 불행함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계산해서 우리가 여섯 개의 감정을 골고루 느낀다고 한다면, 우리는 60 ~ 80% 이상의 시간 동안 불행한 상태에 놓인다는 단순한 계산이 가능하다.
 
그러니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한 상태에서는 행복하기 보다는 불행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행복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늘 뭔가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무엇인가를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을 묶으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언급하는 '삶' 이란 것이 된다.
 
좀 더 냉정히 말하면, 우리의 삶은 불행함을 벗어나려는 그 모든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을 좋은 의미로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둘의 차이가 과연 얼마나 되며, 각 개인별로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지,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지를 판단하기도 결코 쉽지 않다.
 
아무튼 기본적으로 우리는 행복하고 싶어하지만, 불행하기 쉽다는 점은 변함없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과연 불행함은 정말로 나쁜 것일까? 즉, 우리가 주로 불행함에 관련된 감정을 더 많이 자주 느낀다는 사실은 완전히 잘못된 일일까?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 사실 우리가 불행하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되어준다는 점을 우리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실제로 우리의 모든 의지는 불행함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원래 행복한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들은 그냥 그 자리에 있어도 행복하기 때문에 움직일 필요가 없다.
 
육체적으로 가장 강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은 바로 마약류의 약품을 몸에 주사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쾌락은 모든 쾌락을 넘어선다. 그나마 그 정도의 쾌락을 자연스럽게 느끼려면, 일명 러너스 하이라고 불리는 엔돌핀 분비에 따른 황홀경이나 혹은 섹스의 오르가슴 정도나 가능할 것이다.
 
아무튼 마약은 대단한 쾌락이기 때문에 지극히 높은 수준의 행복이다. 사실 우리가 마약을 하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마약에 중독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사실 중독은 마약이 얼마나 강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지에 대한 단서가 될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할 수만 있다면, 행복에 중독되길 바란다.
 
단지, 마약은 매우 위험한 중독이고 너무 강한 행복이기에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행복에 중독되는 순간, 우리는 모든 의지를 잃고 만다. 우리는 그 마약만을 원하게 되며 일을 하려고도, 데이트를 하거나 아이를 키우려고 하지도 않게 된다. 그래서 결국 마약이 주는 행복만을 추구하기에 모든 일상적인 삶이 망가지고 만다.
 
우리는 흔히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의 모습을, 마르고 퀭한 모습으로 기억하겠지만, 사실 그것은 마약에 중독되어서 밥 먹는 것조차 귀찮아 하는 그들의 생활 습관으로 인해 나타난 결과이지, 마약 그 자체로 인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마약을 맞은 상태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일 것이다. 단지, 그것의 부작용이 너무 커서 우리는 그것을 경계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쇼크로 인해서 죽기도 하니까 말이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쉽게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상태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이다. 그래서 부정적 감정은 지속적으로 우리를 자극시키고 결국 어떤 일을 해내는 의지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배가 고프기에 힘들고 위험한 사냥터로 나간다.
 
사실 냉정히 말하면, 모든 긍정적 감정은 부정적 감정을 극복해낸 결과물에 불과하다.
 
이 말은 꽤나 잘 생각해봐야 하는 말인데, 쉽게 말해서 배가 고픈 고통을 해결하여 먹을 것을 먹게 되면, 우리는 행복해진다. 즉, 배고픔이 없다면 배부름의 즐거움도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예이지만, 사실 우리 인간이 느끼는 거의 모든 행복의 생성 원리가 된다. 하지만 사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행복은 너무도 복잡하게 분화되어서 도대체 그 근원이 불행함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 자체를 개인들이 스스로 인식하기는 매우 힘들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조차도, 그들 자신에 대한 존재적 증명, 즉 그 자신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두려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즉, 그렇게 강한 의지로 산에 오르는 이들이 만약 혼자만 살아남았다면 과연 산에 오를까를 생각해보면 단순히 답이 나온다. 그럼에도 그가 산에 오른다면, 그곳에 먹을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길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들 자신이 무엇인가 가치 있는 존재이기 바란다.
 
이것은 사실 생존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가 언제든 대체 가능한 존재이라고 느끼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존재 가치성을 증명하는데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한다. 하지만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금새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으로 빠져들고 만다.
 
그나마 우리가 세상에 유일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정확히 증명 받는 곳은 바로 가족 속이다. 하지만 그 가족 속에서도 형제가 많이 있다면, 이 가치는 급속히 떨어진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한 대안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도 한시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모든 종류의 관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변해가기 때문이다.
 
아마도 성인이 되어서 자신의 유일한 가치를 가장 강력하게 증명 받을 수 있는 경우는,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가 될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원인으로 사랑에 빠져들지만, 유일한 가치 증명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생각보다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바람 피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 우리는 누구나 상대가 우리 자신을 둘 중 선택 가능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에 공포와 분노를 느낄 수 밖에 없다.
 
이 가치 증명에 대한 욕구는 이미 말했듯 두려움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인간 세상에 나타나고 있는 그 많은 위대한 존재들 역시도 대부분이 이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에게 부정적 감정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면, 우리 인류는 거의 아무런 발전도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인간의 문명을 잘 살펴보면, 대부분이 우리를 얼마나 안전하게 해주느냐에 집중되어 있다. 그것은 현재의 안전함이냐 미래의 안전함이냐 따라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의학이나 식량 기술 등은 주로 현재에 관련된 기술이라면, 우주 탐사나 심해 탐사는 미래에 관련된 기술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 모든 이야기는 결과론적 분석이다. 우리는 이미 그런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냥 아는 것이지,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도는 것과 같다. 그냥 우리는 모르던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뿐이다.
 
우리에게 긍정적 감정이 부정적 감정보다 더 많이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들판에서 불을 피우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음, 침략, 약탈, 살인, 도둑질, 싸움, 배신, 따돌림, 병, 늙음, 사고와 같은 현대인들에게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고 알려진 문제들이 늘 발생해 왔고, 그것을 극복해 내야 했기에 우리가 이렇게 문명을 이루게 된 것이다.

 
흔한 예로, 인류의 기술 문명은 전쟁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우리는 부정적 상황을 극복하면서 미래로 향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물론 우리는 늘 음지를 거부하고 양지를 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원래 양지에 사는 존재라고 믿는 것은 곤란하다. 우리는 긍정적 감정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갈 필요는 있지만, 마치 원래 그것들이 우리들의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우기는 짓은 안 된다는 뜻이다.
 
이 전체적인 상황은 우리가 느끼는 기쁨과 행복을 어떤 시선을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힌트가 된다. 우리는 자신에게 찾아온 행복을 좀 더 감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원래 우리들 자신의 것이 아닌, 행운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수학적 계산으로 우리는 기껏해야 30% 정도의 행복 가능성을 지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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