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어떤 실험

아이루다 2015. 5. 4. 09:34

 
실험 #1
 
일주일간 굶은 사자와 사람을 폐쇄된 공간에 두었다. 사자는 정확히 2시간 후 인간을 죽였고, 그 시체를 먹었다. 
 
결론 : 사자는 흉포한 동물이며, 인간을 먹을 수 있는 식인 습성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자는 악한 존재이다.
 
실험 #2
 
일주일 굶은 고양이와 사람을 폐쇄된 공간에 두었다. 고양이는 먹을 것을 찾아서 헤매었지만,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 고양이는 서서히 말라갔으며, 실험 시작 후, 10일이 지나자 죽고 말았다. 
 
결론 : 고양이는 끝까지 사람을 공격하지 않았으므로, 선함이 증명되었다.
 
실험 #3
 
한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를 폐쇄된 공간에 가두어 두었다. 그리고 먹을 것을 극히 소량만 지급했다. 그러자 엄마는 자신은 거의 먹질 않고 아이에게 그것을 모두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자 엄마는 점점 더 말라갔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아이는 조금씩이라도 먹을 수 있어서 버텨내었다. 결국 엄마는 죽었지만 아이는 살았다.
 
결론 : 인간은 다른 존재를 위해서 자신의 삶까지도 포기할 수 있는 선한 존재이다.
 
실험 #4
 
하루에 백만 원을 주는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그것은 2주간 감옥 체험을 하는 것인데, 지원자들은 상담 후 간수가 되거나 죄수의 역할이 주어졌다. 간수와 죄수 사이엔 몇 가지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고 어떤 폭력도 용납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켜야 할 규칙이 지켜지지 않거나, 폭력이 발생하면 즉시 실험은 중단되고, 돈 또한 지급되지 않는 조건이었다.
 
이 실험 아르바이트에 지원자는 임의로 이뤄졌으나, 상담 후 적절하게 사람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40살이 먹도록 부모와 함께 살면서 자존감이 거의 없는 사람이 간수가 되고, 나름대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죄수가 되도록 정해졌다.
 
실험이 시작되자, 처음엔 서로가 조심하고 규칙만을 지키려고 하지만, 죄인들 역할을 맡은 사람들의 불만은 높아졌다. 특히 먹을 것에 대한 부분은 조금 지키기 힘든 규칙이었는데, 먹을 것을 남기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실험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고 해도 먹기 힘든 것을 억지로 먹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식당에서 최초의 충돌이 일어났다.
 
그 후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갔다. 특히 간수 역을 맡은 사람 중에서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사람은 권력을 얻게 되자 폭군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는 그런 부당한 권위에 끝없이 반항했다. 실험 교소도에서는 직접적인 폭력은 일어나지 않지만, 한 개인에게 가해지는 굴욕감과 비이성적인 행동은 실험 교도소를 실제 교도소보다 더욱 더 파괴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결론 : 인간의 폭력성은 타고난 것이며, 언제든 발현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악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총 네 개의 실험 중에서 네 번째만 실제로 행해졌던 실험이었다. 그리고 이 내용은 그것을 영화로 각색한 작품의 줄거리이다. 그리고 원래 이 실험은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한 사건이기도 하다. 

네 개의 실험은 각각의 결론을 내고 있다. 그래서 고양이와 엄마는 선한 존재로 결론이 났고, 사자와 감옥 안의 인간은 악한 존재로 결론이 났다. 정말로 단순하고 명쾌한 해석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또한 이렇게 쉽게 결론을 낼 수도 있을만큼 단순한가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특히나 의심스러운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네 번째 실험에 관한 것인데, 누구나 그 결론에 동의할 수 있는가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 영화의 줄거리의 모티브가 된 사건의 결론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제 실험의 결과는, 인간의 폭력성은 가지고 있는 본성이라기 보다는, 그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즉 어떤 시스템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는 것을 증명한 실험이었다. 즉, 배고픈 사자를 사슴 농장에 풀어 놓으면 사슴을 잡아 먹겠지만, 인간과 같이 가둬 놓으면 인간을 잡아 먹는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단순한 관점에서 그것을 바라보면, 그것은 마치 모든 존재들의 본질적 성향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자의 이빨과 발톱이 날카로운 것은, 원래 사자들이 육식을 하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람을 잡아 먹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설령 개라도 배가 고프면 사람을 잡아 먹을 수 있다.

 

*** 선과 악은 우리가 믿는만큼 명백한 개념일까? ***


우리 인간은 선과 악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매우 다양한 판단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는 그것을 다른 이들과 이야기하면서 공유하기도 하고, 서로 맞질 않아서 싸우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인간 세상에 일어나는 수 많은 일들의 기준점을 만든다.

그래서 배고픈 사자가 인간을 먹는 것은 악으로 규정한다. 그럼 배고픈 것이 악인가, 아니면 먹는 것이 악인가, 아니면 사람을 먹는 것이 악인가? 사자는 사람 고기와 사슴을 구별할 수 있을까?

사람을 먹는 사자가 악하다는 것은 사람의 기준이다. 사실 뭔가를 먹는 것이 악하다고 규정하게 되면, 우리는 매일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우리는 돼지를 먹고 소를 먹고 닭을 먹는다. 더군다나 우리가 먹는 이유는 배고파서이기도 하지만, 맛있는 것을 먹는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즉, 많은 경우에 먹지 않아도 될 것들을 먹기도 한다. 단지 즐거움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는 과도한 칼로리 섭취로 인해 살이 쪄서 고민을 한다.
 
그런데 그런 존재들이 선과 악을 나눈다. 그리고 더해서 그 선과 악에 절대성까지 부여한다. 그래서 인간을 해치는 것은 그 어떤 상황이라고 해도 절대적으로 악한 것이 된다. 반면에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선한 것이 된다.
 
하지만 그 기준이 인간이란 점은 변하지 않는 본질이다. 자연엔 선과 악이 없다. 선과 악은 오직 인간 사회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린 선과 악의 판단이 필요하다. 우리가 만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모든 선과 악은 절대선과 절대악이 아닌 필요선과 필요악이어야 한다.
 
우리는 선과 악의 개념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이 있어야만 사회를 유지시킬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선과 악을 절대화 시켜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을 자연에 요구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가끔 특정 조건을 만들어 놓고, 그 조건 하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심리를 관찰하곤 한다. 또한 우리는 그렇게나 다양한 인간의 성향을 모두 늘어 놓고는, 그것이 모두 같은 존재의 공통적 특성이라고 믿기도 한다. 즉, 누군가 지극히 선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우리 인간 모두에게 가능한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반대로 누군가 지독히도 악한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인간 모두에게 가능한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배가 고프다고 해서 다른 인간을 잡아 먹지는 않는다. 또한 우리가 모두 배가 고플 때, 다른 인간을 잡아 먹지 않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문명에 의해 교육을 받았으며,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기준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것을 모두 제거하고 나면, 우리의 맨 얼굴이 나온다. 우리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먹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먹을 수 없는 것은 먹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자를 만나면 도망칠 것이고, 고양이를 만나면 잡아 먹으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폭력성을 알아내든, 지극한 희생정신을 알아내든 그것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원래 우리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우리의 거대하고 오래된 착각일 뿐이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의 가치가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거기에 여러 가지 다른 가치라는 것을 더했다. 즉, 우리는 자신의 삶이 단지 생존만 가능하길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가 어떤 가치 있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다양한 결정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존 이외에 지킬 가치가 없는 상황이 될 경우, 우리는 생존만을 위해 살아간다.
 
인간이 원래 선하다는 성선설이나, 인간이 원래 악하다는 성악설 모두 근본적으로 인간을 잘못 이해한 말이다. 우리는 배가 부르면 선해지고, 배가 고프면 악해진다. 우리는 욕망을 이루면 행복해지고 온순해진다. 우리는 욕망을 이루지 못하면 불행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우리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선과 악은 자연스러운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 낸 개념이다. 그래서 그것을 우리 인간에게 적용시키면 뭔가 어긋나게 된다. 결국 판단이 애매한 상황이 너무 많이 벌어진다. 그래서 인간 사이의 의견도 몹시 다양하게 나타나게 된다. 만약 절대선이 존재한다면, 그런 판단의 다양함은 애초에 불가능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악마와 천사를 만들었고 천국과 지옥 또한 만들었다. 우리는 절대적인 선함과 절대적인 악함을 만들었지만, 그럼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착각만 더욱 크게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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